[Global Issue] 미얀마 시위 왜 일어났나
풍부한 자원 매장량에도 에너지값 폭등이 촉발…군사정권의 비민주·비효율적 장기독재 때문

동남아시아의 빈곤국 미얀마(옛 버마)에 최근 세계인의 눈길이 집중됐다.

군사정권의 오랜 독재에 저항하는 미얀마인들이 수도 양곤의 거리를 가득 메웠기 때문이다.

1988년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20년 가까이 집권해 온 군사정권의 철권 통치아래서 가장 긴 시위였다.

2만여명의 승려와 시민들이 시위 행진을 벌인 지 9일째인 지난달 26일, 미얀마 군사정권은 마침내 총을 앞세운 강경진압에 나섰다.

시위대에 소총으로 무장한 군경을 투입한 데 이어 불교사원을 급습해 승려들을 무더기로 체포했다.

그럼에도 시위가 가라앉지 않자 군사정부는 양곤과 제2도시인 만달레이에 야간 통행금지 조치를 발령했다.

시위가 소강 상태에 접어든 이달 초까지 미얀마 군정이 밝힌 공식 사망자 수는 13명.

하지만 해외 인권단체들은 100명 이상이 유혈 사태로 사망했다고 추정하기도 했다.

◎ 시위의 시작은 연료값 폭등

미얀마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달러 정도에 불과하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174위로, 대표적인 빈곤국가로 꼽히는 방글라데시나 내전으로 골병이 든 르완다보다도 못한 수준이다.

연간 30~40%의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고 있는 데다 실업률은 공식 통계보다 두 배 이상 높은 30%에 이른다.

미얀마 시민들의 시위도 이 같은 민생고에서 시작됐다.

미얀마 군부가 두달 전 예고 없이 천연가스와 디젤과 휘발유 값을 최고 5배까지 인상한 것이다.

시민들은 더 이상 못살겠다며 뛰쳐나왔고 군사정부를 타도하자는 민주화 시위로 격화했다.

연료값이 도화선이었다지만 사실 미얀마는 에너지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다. 마르타반만과 벵갈해안에 매장된 엄청난 양의 천연가스는 앞으로 40년간 매년 20억달러의 수입을 가져다줄 전망이다.

재정적자를 메우고 인플레이션을 낮출 뿐 아니라 기반 시설 투자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는 이미 한국과 중국, 인도 등이 적극 나서고 있다.

풍부한 에너지를 자산으로 마침내 살림이 피는 듯 했던 미얀마 사람들이 왜 거리로 나서야만 했을까.

◎ 경제 살리기에는 관심 없는 군부

문제는 미얀마 군부가 막대한 자원 수입을 엉뚱하게 쓰고 있는 점이다.

군부는 기존 수도 양곤을 대체할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는 등 허황된 대규모 프로젝트에 돈을 쏟아붓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핵심인 국가평화발전위원회는 최근 러시아로부터 원자로를 구입하는데 2억5000만달러를 쓰기로 했다.

군부는 의학적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의료 서비스에 국민 1인당 연간 1달러도 안 쓰는 미얀마에서는 막대한 돈이다. 원자로가 미얀마 군정의 군사적 우위를 위해 쓰일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풍부한 자원이 미얀마 경제에 독(毒)이 됐다는 평가도 많다.

큰 노력없이 벌어들이는 돈이 늘어나면서 경제 혁신에 대한 욕구가 줄어드는 이른바 '네덜란드병(Dutch disease:풍부한 천연자원의 부정적인 효과)'이 미얀마에 확산됐다는 것.

군부는 비효율과 불투명성, 독점 등 경제의 구조적 문제들을 개선하기보다는 당장의 수입을 써버리기에 바빴다.

이 때문에 미얀마의 재정 상태는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지난 상반기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중앙은행에서의 차입을 20% 늘렸다.

외환보유액도 줄고 있다. 연료 정제를 위한 기반 시설이 워낙 낙후돼 있어 쓸만한 연료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얀마의 버스와 자동차 60%를 움직이는 등 경제를 떠받치는 디젤 연료도 미얀마 내에서는 정제 인프라가 부족하다.

미얀마 군부는 결국 연료값을 대폭 인상하는 방안을 택했다.

◎ 오랜 고립과 부패가 성장 좀먹어

미얀마의 최근 모습은 이웃 베트남이 떠오르는 시장으로 꼽히며 성장 가도를 달리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미얀마 성장을 가로막는 근본적인 문제는 장기간에 걸친 군사 독재정권이다.

네윈이 1988년 민주봉기 이후 물러난 뒤에도 군부는 정권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연합야당인 민주국민동맹의 지도자 아웅산 수치 여사를 감금하는 등 탄압의 강도를 더 높였다.

지금도 정부를 비판했다가 사복 비밀경찰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는 곳이 미얀마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의 특급 호텔에서도 외국 신문을 찾아볼 수 없다.

군정이 작년 5월께부터 외국 신문의 반입을 금지한 탓이다.

일본의 한 신문이 미얀마 군정을 비판한 기사를 실었던 게 원인이 됐다.

군정의 오랜 독재는 극심한 부패로 이어졌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지난 달 미얀마의 투명성 지수가 1.4점으로 소말리아와 함께 조사대상 180개국 가운데 꼴찌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얼마 안되는 국부까지 부패한 관료들이 탕진하고 있다.

서민들의 살림은 쪼들리는데 공무원과 군인의 임금은 올 들어서만 곱절로 올랐다.

군정이 경제를 좌지우지하다 보니 국익이나 효율성과는 동떨어진 정책들이 이어지고 있다.

심지어 군정은 수도 이전이나 화폐 개혁 등 중요 결정마다 국민들의 이익보다는 점술가의 의견을 따랐다.

미얀마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도 입찰가격과 상관없이 중국이 입찰을 따낼 가능성이 높다.

군정은 미얀마 독재 체제를 제재하려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중국이 방어막이 되줄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사회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고립정책도 미얀마 경제를 허약체질로 만들었다.

1962년 쿠데타로 집권한 네윈 장군은 폐쇄적 경제정책을 고집했다.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끊고 자주와 자립만 외쳤다.이로 인해 수출의 70%를 차지하던 쌀 수출은 한 해 200만t에서 50만t으로 급감했다.

멀쩡하던 민간기업은 모두 군정이 운영하는 국유기업으로 바꿨다.

이제 미얀마의 최대 교역국인 태국의 투바나부미 국제공항에서도 미얀마의 통화인 짜트를 환전하기 어렵다.

고정 환율에 묶여있는 공식 환전소가 재래시장의 암달러상에 비해 두세 배 비싼 값에 짜트화를 교환하고 있어 대부분의 여행객은 환전을 위해 시장을 찾는다.

군사독재와 고립, 부패의 고리 속에서 글로벌 시장의 효율성이 뿌리를 내리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1960년대만 해도 한국보다 낫다던 미얀마가 어떻게 몰락해왔는지, 개도국들엔 철저한 반면교사로 각인될 전망이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