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금융허브'내걸었던 한국은 어디로 갔나?

상하이, 홍콩, 싱가포르 금융센터 경쟁 치열

아시아 '금융센터' 간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도쿄나 홍콩,싱가포르 같은 전통적인 금융센터 외에 현지 정부가 맘먹고 키운 두바이,폭발하는 중국 증시를 기반으로 한 상하이 등이 새로운 주자로 나서고 있다.

세계적 경제주간지인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9월13일자)에서 싱가포르의 성공 사례를 두바이가 따라하고 있다며 이런 벤치마킹을 통해서도 국제적인 금융센터를 조성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세계 금융센터를 심층 분석한 특집 기사에서 한국에 관한 언급은 단 한 줄도 나오지 않았다. '서울'이라는 단어가 한 번 나왔을 뿐이다. 호주 시드니와 함께 군소 금융센터의 하나로 분류됐다. 참여정부가 집권 초기에 내건 '아시아 금융허브(hub)' 구상은 해외에서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이 금융센터 경쟁에서 하루빨리 전열을 정비하지 않으면 아시아 금융센터의 주변부에 머물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아시아의 맹주는 공석 중

아시아 금융센터는 주식 거래량 기준으로 도쿄,홍콩,상하이,싱가포르 순이다. 이코노미스트는 그러나 미국,유럽과 달리 아직 아시아에선 최고의 금융허브가 출현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도쿄는 자국 금융시장 중심이어서 홍콩,싱가포르에 이어 떠오르는 상하이가 군웅할거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아시아의 자금 흐름이 뉴욕이나 런던에 본부를 둔 대형 투자은행을 통하는 경우가 많다. 홍콩 증시의 폴 초우는 "아시아 증시들은 발전 단계가 제각기 달라서 풀어야 할 숙제 또한 다르다"며 "20년쯤 지나면 서구 증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활한 홍콩,인도의 관문 싱가포르

홍콩은 요즘 부활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한때 홍콩의 왕관을 상하이가 빼앗아갈 것이란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중국 본토와 대만을 국제 금융시장과 연결하는 허브로 완전 자리잡았다. 증시 시가총액(상장기업의 주가를 주식 수로 곱한 값의 합계)의 절반을 중국 본토 기업이 점하고 있다. 작년 중국 최대 은행인 공상은행(ICBC)의 상장이 대변해주듯 중국 기업의 신규 상장 물량도 홍콩으로 몰리고 있으며 인수·합병(M&A) 협상도 활발해지고 있다.

중국 시장이 중요한 기업들에는 홍콩이 절대적이다. 홍콩의 상장 기준이 까다롭기 때문에 홍콩 증시에 상장하기만 하면 외국 투자자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게 된다. 그래서 홍콩 증시에 올라있는 기업 주가는 상하이 증시에 있을 경우에 비해 50% 정도 프리미엄을 받는다고 한다. 홍콩 증시 관계자들은 "(홍콩 증시가) 중국의 월스트리트가 되길 원한다"며 "상하이는 그냥 경쟁자일 뿐"이라고 자신있게 말한다.

싱가포르 증시는 정교하게 조율되는 관리체제의 경제와 신속한 의사결정·집행,경제와 정치의 안정,각종 금융 인센티브 정책 등이 장점이다. 최근 들어서는 '인도의 관문'이란 점을 부각시키며 글로벌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증시 시가총액의 40%가량을 외국 기업들이 차지한다. 특징적으로는 선박 건조나 부동산 자산 같은 분야의 투자 대상을 유동화하는 식으로 전문화에도 힘쓴다. 개인 자산 관리와 소형 헤지펀드들의 천국으로 통한다. 부자들의 돈을 굴려주는 프라이빗뱅킹 시장은 적어도 2000억~3000억달러로 추산된다.

◎시들한 도쿄,활황세의 상하이

도쿄는 지금도 규모면에선 아시아 최대이자,미국 뉴욕에 이어 세계 2위 금융센터다. 그러나 세금이 많고 규제도 비효율적이며 외국 투자자들을 달가워하지 않는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회계 기준도 국제 수준과는 많이 다르다. 요즘 정치인들까지 나서 도쿄를 매력적인 금융센터로 만들기 위해 개혁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그 효과는 미지수다.

상하이 증시 주가지수는 지난 1년 반 동안 300% 상승했다. 매일 증권계좌를 개설하는 사람만도 30만명에 달한다. 총 5000만개의 계좌가 개설돼 있다. 중국 정부는 아시아 중심지 상하이의 영화를 되찾기 위해 금융센터 육성 계획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주식을 더 사들이려고 안달이지만 중국 당국은 자본이득이 해외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계속 통제하고 있어 문제다. 그래도 시장 개방의 물결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보험업이 부분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외국 은행에 대한 규제도 점차 완화되고 있다. 중국 정부가 미국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 지분을 사들였을 정도니 반대로 자국 시장 개방도 불가피한 상황이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danielc@hankyung.com

----------------------------------------------------------

금융센터, 전문성으로 승부해야

금융센터 또는 금융허브(hub)는 국내외 유수 금융회사들이 한 도시에 집결해 자금의 조달과 거래·운용 등 각종 금융 거래를 행하는 지역을 말한다. 금융 거래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원스톱으로 해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법률회사,회계법인 등 부대 비즈니스도 함께 모여 있어야 한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이런 금융센터 앞에 '글로벌'이란 수식어를 붙일 만한 곳은 현재로선 뉴욕과 런던뿐이라고 보도했다. 글로벌화가 계속되면서 뉴욕과 런던은 세계 금융자본의 블랙홀로 더욱 많은 자금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금융센터들은 생존할 수 없을까. 이코노미스트는 다른 금융센터들도 나름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다고 전했다. 두바이는 중동지역으로 향하는 자본 투자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프라이빗뱅킹에선 스위스 제네바,보험과 재보험 분야에선 스위스 취리히와 버뮤다,선물과 옵션시장에선 시카고,인프라투자 분야에선 카타르,이슬람 금융에선 바레인의 예를 들었다.

시카고는 시카고상업거래소(CME)와 시카고상품거래소(CBOT)가 올초 합병,세계 최대 파생상품시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에너지 대기업이 몰려 있는 휴스턴에는 원유,가스 같은 에너지 거래인들과 헤지펀드들의 본산이 되고 있다. 부자들이 많이 사는 보스턴은 자산관리와 사모펀드의 본고장으로 경쟁력을 쌓아가고 있다.

한 때 쇠락하던 프랑크푸르트는 유렉스라는 거래소를 통해 파생상품 거래시장으로 입지를 굳혔다. 금융 비용도 런던보다 훨씬 저렴하다. 한마디로 대형화할 수 없다면 전문화에서 길을 찾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다. 아시아의 금융허브를 지향해온 '서울'이 새겨들어야 할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