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번뇌가 사라지고 근심 걱정이 풀린다는 곳이 있다. 그곳에선 조용히 삼라만상을 관조해 볼 수도 있다. 다만 그러기 위해 몇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우선 절대 머리를 숙여 아래를 보는 만용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경건한 곳이기에 당연히 침 따위를 뱉어서도 안 된다. 또 힘 쓰는 소리를 내 정적을 깨뜨려서도 안 된다. 일을 마친 뒤에는 반드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해야 하며 나와서는 손을 씻기 전에 다른 물건을 만지는 것도 금지된다. 그곳은 해우소(解憂所)다. 글자 그대로 근심을 푸는 곳인데,절간에서 쓰는 말이다. 많이 알려져 있지만 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은 이 말이 가리키는 곳을 옛날에 민가에선 뒷간이라 불렀다.
뒷간은 변소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측간도 변소와 같은 한자어다. 측간이나 변소가 세력을 얻기 전엔 다 뒷간이라 불렀다. 하지만 요즘 뒷간이란 말은 거의 들어보기 힘들게 됐다. 측간이나 변소 역시 지금은 화장실이란 말로 바뀐 지 오래다.
이처럼 사회가 발달하고 변해감에 따라 잊혀져가는 말이 있고 새로 세력을 얻는 말이 있다. 사회상을 나타내는 이런 말들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어 차원도 아니고 우리 생활 속에 오래 깊숙이 들어와 있던 정식 단어들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돌아보면 어느새 우리 언어생활에서 낯선 단어가 돼버린 것이다. 아직 사어(死語)라고 할 순 없지만 이미 언어 세력이 미미해져 사라져 가는 단어들이다.
"아들 내외는 대처에 나가 살고 우리 두 노인만 이곳에 살고 있다. " 예전엔 시골에서 '대처'란 말을 많이 썼다. 지금 이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뜻은 대략 세 가지다. 우선 '어떤 정세나 사건에 대해 알맞은 조치를 취함'이다. 한자로는 對處인데 가장 흔히 쓰인다. 둘째는 '帶妻'가 있다. 이는 아내를 둔다는 뜻인데 보통 불교에서 대처승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셋째는 大處. 이는 도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처'라는 말의 쓰임은 對處의 개념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대처승으로서의 개념은 살아있지만 일반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도회지란 뜻으로의 '대처'는 요즘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도회지'는 사전적으로 '사람이 많이 살고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말 자체도 개념적으론 이미 낯선 단어가 돼 가고 있다. 그 대신 '도시'나 '대도시'가 주로 쓰인다.
대처나 도회지는 1960,70년대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 떠오르던 말이다. 그때는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씩 또는 몇 시간씩 나가야 큰 도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도 도시는 적었고 시골이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시골다운 시골을 찾으려면 몇 시간씩 차를 달려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 어딜 가도 지역적으로 도시화가 이뤄져 번화한 모습이 많다.
산업화와 더불어 삶의 질이 나아지고 의식 수준도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단어에 과거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힌다. 그래서 같은 말이면서도 단어들이 풍기는 말맛은 사뭇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언중이 단어들에 대해 구별 짓고 새로운 이미지를 투영한 결과다.
대처나 도회지가 지난 시절의 개념으로 가물가물해져 가는 사이 '연담화(連擔化)'란 말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도시는 도시로 연결돼 행정구역을 가른 표지판만이 경계를 알려줄 정도로 건물들이 잇대어 있다. 도시와 도시가 연결돼 발달하는 현상을 가리켜 연담화라고 한다.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이 말은 지리용어로는 쓰인 지 오래 됐지만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는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전부 다 맡는다는 '전담(全擔)'이나,특정한 것을 전문적으로 맡는 '전담(專擔)',나누어 맡는다는 '분담(分擔)'과는 달리 '연담'은 공동으로 나눠 맡는다는 개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들고 나오면서 부각된 말로,영어로는 'conurbation'이다. 수도권에서는 서울-부천-인천을 잇는 경인축,서울-안양-군포-의왕-수원 등의 경수축을 따라 형성된 도시군이 연담도시의 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삶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말도 그에 맞춰 진화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뒷간은 변소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다. 측간도 변소와 같은 한자어다. 측간이나 변소가 세력을 얻기 전엔 다 뒷간이라 불렀다. 하지만 요즘 뒷간이란 말은 거의 들어보기 힘들게 됐다. 측간이나 변소 역시 지금은 화장실이란 말로 바뀐 지 오래다.
이처럼 사회가 발달하고 변해감에 따라 잊혀져가는 말이 있고 새로 세력을 얻는 말이 있다. 사회상을 나타내는 이런 말들은 단순히 한 시대를 풍미한 유행어 차원도 아니고 우리 생활 속에 오래 깊숙이 들어와 있던 정식 단어들이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 불현듯 돌아보면 어느새 우리 언어생활에서 낯선 단어가 돼버린 것이다. 아직 사어(死語)라고 할 순 없지만 이미 언어 세력이 미미해져 사라져 가는 단어들이다.
"아들 내외는 대처에 나가 살고 우리 두 노인만 이곳에 살고 있다. " 예전엔 시골에서 '대처'란 말을 많이 썼다. 지금 이 말을 들었을 때 생각할 수 있는 뜻은 대략 세 가지다. 우선 '어떤 정세나 사건에 대해 알맞은 조치를 취함'이다. 한자로는 對處인데 가장 흔히 쓰인다. 둘째는 '帶妻'가 있다. 이는 아내를 둔다는 뜻인데 보통 불교에서 대처승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셋째는 大處. 이는 도회지를 가리키는 말이다.
'대처'라는 말의 쓰임은 對處의 개념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 대처승으로서의 개념은 살아있지만 일반인들의 언어생활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는 아니다. 도회지란 뜻으로의 '대처'는 요즘 거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도회지'는 사전적으로 '사람이 많이 살고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을 가리킨다. 이 말 자체도 개념적으론 이미 낯선 단어가 돼 가고 있다. 그 대신 '도시'나 '대도시'가 주로 쓰인다.
대처나 도회지는 1960,70년대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던 때 떠오르던 말이다. 그때는 시골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씩 또는 몇 시간씩 나가야 큰 도시에 다다를 수 있었다. 전국적으로도 도시는 적었고 시골이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시골다운 시골을 찾으려면 몇 시간씩 차를 달려 도시에서 멀리 벗어나야 한다. 어딜 가도 지역적으로 도시화가 이뤄져 번화한 모습이 많다.
산업화와 더불어 삶의 질이 나아지고 의식 수준도 높아짐에 따라 사람들은 단어에 과거의 이미지를 버리고 새로운 이미지를 덧입힌다. 그래서 같은 말이면서도 단어들이 풍기는 말맛은 사뭇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언중이 단어들에 대해 구별 짓고 새로운 이미지를 투영한 결과다.
대처나 도회지가 지난 시절의 개념으로 가물가물해져 가는 사이 '연담화(連擔化)'란 말이 우리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특히 수도권에서 도시는 도시로 연결돼 행정구역을 가른 표지판만이 경계를 알려줄 정도로 건물들이 잇대어 있다. 도시와 도시가 연결돼 발달하는 현상을 가리켜 연담화라고 한다.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이 말은 지리용어로는 쓰인 지 오래 됐지만 언론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는 불과 몇 년 되지 않는다. 전부 다 맡는다는 '전담(全擔)'이나,특정한 것을 전문적으로 맡는 '전담(專擔)',나누어 맡는다는 '분담(分擔)'과는 달리 '연담'은 공동으로 나눠 맡는다는 개념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신행정수도 건설을 들고 나오면서 부각된 말로,영어로는 'conurbation'이다. 수도권에서는 서울-부천-인천을 잇는 경인축,서울-안양-군포-의왕-수원 등의 경수축을 따라 형성된 도시군이 연담도시의 예다. 우리 사회의 경제적 발전과 함께 삶과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말도 그에 맞춰 진화한다.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