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ㆍ공급의 법칙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8. 피서철 바가지 요금은 왜 생길까
대천해수욕장의 상권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그리 크지 못했다.

거기까지 찾아가기가 이만저만 어려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버스나 기차로 몇 번씩 갈아타야 하고,승용차로 가더라도 서울에서 줄잡아 4~5시간 이상 걸렸다.

그러나 2001년 서해안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대천해수욕장은 서울에서 불과 1~2시간이면 닿을 수 있게 됐다.

접근성,편리성에다 보령 머드축제 등 다양한 이벤트 등에 힘입어 대천해수욕장은 중부권 최대 휴양지로 확장됐다.

과거 해변 일부에만 있던 음식점,숙박업소들이 이제는 대천항까지 종횡으로 빼곡히 들어섰다.

하지만 매년 휴가철마다 대천해수욕장은 '바가지 요금'으로 방송 등에서 맹비난을 받는다.

숙박업소들이 평소의 4배에 달하는 숙박요금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숙박업주들은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짓을 한 것인가.

수요·공급 원리를 통해 냉정하게 살펴보자.

◆ 왜 바가지요금을 받을까

대천해수욕장 일대의 수백개에 달하는 펜션,민박,모텔 등 숙박업소들은 대개 1년을 성수기,준성수기,비수기로 구분하고 주중과 주말요금도 달리 매긴다.

평소 5만~6만원인 숙박지 방값이 성수기엔 1박에 20만~30만원 이상으로 치솟는다.

게다가 성수기(대개 7월 하순~8월 중순) 숙박요금을 인터넷 등에 미리 공지하지 않고 전화로 문의해달라고 한다.

성수기에 평소의 4배가 넘는 숙박요금은 왜 생길까.

공급(빈 방)보다 엄청나게 큰 수요(피서객)가 일시에 몰려오기 때문이다.

숙박업주 입장이라면 이럴 때 가장 비싼 가격을 지불할 손님만 골라 방을 줄 것이다.

그동안 비수기 때 빈 방으로 손해본 것을 이참에 벌려고….

비슷한 사례가 입시철 학원비다.

이른바 '파이널반'은 평소의 2~3배에 달하는 학원비를 부른다.

이 역시 바가지 요금 아닌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수험생과 학부모로선 울며겨자먹기로 학원에 등록하기도 한다.

◆ 수요·공급에 대한 대중의 착각

대천해수욕장 숙박업주들과 입시학원장들은 무슨 배짱으로 이렇게 비싼 가격을 부를까.

언론을 비롯 많은 사람들이 비분강개한다.

학교 수업시간에 배운대로 수요가 늘면 가격이 상승,공급이 늘면 가격이 하락한다는 수요·공급 법칙을 머릿속으론 이해하지만 가슴 속으론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이를 수요·공급에 대한 '대중적 시각'(popular perspective)이라고 부른다.

대중들은 숙박업주나 학원장이 바가지 요금을 못받게 가격을 통제하면 별다른 문제없이 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할 것이란 믿음에 충실하다는 것이다.

이는 억제된 가격에도 공급자(숙박업주,학원장)들이 계속해서 공급할 것이란 착각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숙박요금이나 학원비를 올린 것은 공급자일까? 오히려 수요자(피서객,수험생)의 초과수요가 언제든 가격을 끌어올린다.

생산자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며,수요자도 선량한 피해자가 아니다.

다양한 대체재(다른 피서지,EBS·인터넷 강의 등)도 갖고 있다.

사실 바가지 요금을 욕하면서도 이를 수용하는 사람들은 그만큼의 '지불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다.

◆ 경쟁시장의 적들

정부는 들끓는 대중 여론에 약하다.

그래서 국민들이 불만을 가진 사안이면 수시로 단속에 나선다.

학원비에도 명목상 상한선이 있고,휴가철 바가지 요금은 매년 단속을 되풀이 한다.

그럼에도 '바가지 요금'은 사라지지 않는다.

바가지 요금을 수용하고도 남을 만큼 강한 초과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정부는 강력한 가격단속에 나설지,경쟁을 시켜 자연적으로 내려가게 놔둘지 고민에 빠진다.

대개 정부 당국자들은 전자를 택한다.

당장 효과가 나는 듯하고,대중들에게 일 열심히 하는 것으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공급 감소로 귀결된다.

임대료를 규제하면 임대주택이 줄거나 품질이 떨어진다.

학원비를 규제하면 학원이 문을 닫거나 강의 수준이 떨어지고,숙박요금을 규제하면 숙박업소 공급이 역시 줄어든다.

다음 단계는 돈이 있어도 이용할 수 없는 수요자들의 아우성과 규제 빈틈이나 음성적인 수법으로 요금을 더 올리는 공급자가 나타나게 된다.

더 강력히 단속하면 되지 않느냐고? 수요자가 피해를 보든 말든 임대도,학원도,피서도 필요없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반대로 경쟁을 시켜 가격 하락을 유도하면 어떻게 될까? 어떤 사업이든 엄청난 초과이윤을 올릴 수 있다면 너도나도 진입할 것이다.

공급은 늘 것이고,수요가 변동없다면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심지어 바가지를 씌우는 수준도.박사학위를 가진 정부 당국자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이 훨씬 더 국민에게 도움이 된다.

이것이 경쟁시장의 효율성이다.

구 소련의 견고한 중앙계획경제 체제를 무너뜨린….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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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표상 Scalper, 머리가죽 벗기는 사람?

'scalp'는 본래 '머리가죽''머리가죽을 벗기다'라는 뜻이다.

여기에서 파생된 경제적인 의미로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소폭의 시세변동을 노리는)적은 이윤'이고 다른 하나는 '(표를)웃돈 얹어 팔다'이다.

그래서 'scalper'는 증권용어로 일일거래자(day-trader)보다 더 짧게 사고 팔면서 수익을 얻는 초단기 매매자를 뜻하고,일반적인 의미로는 암표상을 가리킨다.

암표상은 인기가 있는 공연,영화,스포츠경기 등의 초과 입장수요가 있는 곳의 티켓을 미리 사모았다가 웃돈을 붙여 팔아 이익을 챙기는 사람이다.

실제로 2002년 월드컵 때 한국-독일의 4강전 티켓값이 무려 200만원을 호가했다.

응시접수 자체가 어려운 토플 iBT 응시권을 웃돈 얹어 되파는 사람도 암표상 범주에 들어간다.

scalper는 선진국에서도 흔하다.

런던 웨스트엔드,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되는 '오페라의 유령''레미제라블' 등 인기 뮤지컬은 어김없이 scalper들이 달라붙는다.

미국 메이저리그,NFL(프로풋볼),NBA(프로농구)의 라이벌전이나 플레이오프도 마찬가지다.

스캘퍼는 어원이 머리가죽을 벗긴다는 데서 알 수 있듯 악의가 담겨 있다.

누군가 정상가격에 살 티켓을 미리 확보해 웃돈을 붙였으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만도 하다.

그런데 경제원리로 비춰보면 공연 등에서 얻는 편익이 커 비싼 값을 주고도 살 사람이 티겟을 확보할 수 있게 해주는 기능도 있다.

티켓값에다 일정 이윤을 보장해주면 티켓을 사기 위한 정보,시간,비용 등을 대신 부담해주고,미리 확보한 티켓을 다 못 팔았을 때의 위험도 자신이 진다.

증시에서 스캘퍼는 상대적으로 많은 주식을 거래해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며,다른 시장참가자들의 매매를 용이하게 해준다.

따라서 암표상은 증시 투기꾼처럼 시장을 흥청거리게 만드는 치어리더 역할도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