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에 국민들로부터 세금을 얼마나 또 어떻게 걷을지 대강의 얼개를 보여주는 '세제개편안(稅制改編案)'이 지난달 22일 발표됐다.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과세표준(課稅標準) 구간 조정,출산ㆍ입양 등에 대한 소득공제 신설 및 확대,비과세 감면혜택 추가 등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減稅) 관련 내용이 대폭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올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국가의 재정 부담을 고려치 않고 내놓은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을 갖고 나라 살림을 꾸리는 것은 결국 차기 정부이기 때문에 현 정권이 임기 말에 통크게 세금을 깎아주면서 생색을 낼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11년 만에 과표 구간 손질
우선 정부는 소득세를 매길 때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11년 만에 상향 조정했다.
과세표준은 납세자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에서 각종 공제를 뺀 나머지 금액을 뜻하는 말이다.
줄여서 과표라고도 한다.
여기에 과표금액의 구간별 세율을 곱한 뒤 모두 더하면 최종적으로 국가에 내야 하는 소득세가 결정된다.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1996년 이래 △과표 1000만원 이하 8% △1000만원 초과~4000만원 이하 17% △4000만원 초과~8000만원 이하 26% △8000만원 초과 35% 등 4구간으로 고정돼 있었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선 △1200만원 이하 8%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17%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6% △8800만원 초과 35% 등으로 10~20% 각각 올렸다.
소득세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공제,과표,세율이 있다.
이중에서도 정부가 과표구간에 손을 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소득세를 걷을 때 낮은 과표구간부터 차례차례 정해진 세율을 곱해 올라오는 '다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세율이 얼마냐도 중요하지만 얼마의 과표 구간에 그같은 세율을 매기느냐가 세금 액수를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따라서 과표 구간을 일제히 올려버리면 자신의 과표 중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구간이 넓어져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 일부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저소득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가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된다.
정부는 이번 과표구간 조정으로 2008~2013년 1조1000억원의 세금을 깎아주게 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출산 또는 입양을 한 가정에는 일률적으로 200만원을 소득에서 공제해주고 급식비 방과후학교 수업료 교재비 등을 추가로 공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공제 혜택도 늘렸다.
공제 금액이 많아지면 과표가 줄어 세금도 자연히 줄어든다.
여기에 '국가균형발전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지방에 창업·이전하는 기업에 최고 70%까지 법인세를 감면해 주거나 각종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취득·등록세를 감면하는 내용 등이 수두룩하다.
◆왜 하필 지금?
정부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싫다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임기 말에 쏟아져 나온 '감세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 다른 데서 세금을 확충할 방안을 마련해두지 않고 무작정 세금을 깎아주기 시작하면 재정적자(財政赤字)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5년간의 임기 동안 각종 복지 혜택을 확충하고 공무원 수를 대폭 늘렸다.
그로 인해 2004년부터 4년간 매년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올 상반기 재정 적자 규모는 무려 22조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감세안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다음 정권에 넘겨 줄 나라 곳간이니 텅텅 비든 말든 생색부터 내고 보자는 식이다.
세금을 덜 걷는 대신 지출을 줄이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복지 혜택은 정부가 한번 주기 시작하면 여간해선 없애거나 줄이기 어렵다.
공무원 역시 한번 자리를 늘려 놓으면 잘라내기는 쉽지 않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정부는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나랏일에 쓸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국채(國債)'다.
국채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발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대선을 의식해 내놓은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나라 살림 거덜나는 것만은 막아야
세제개편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는 곳은 국회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내놓은 안을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메스를 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간 큰' 정치인은 없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는 각 정당 대선 주자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를 매일 지켜보고 있다.
그게 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싸움이다.
앞으로 각 당 후보들이 결정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 정치가들은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식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정부가 세금을 대폭 깎아줬는데 다음 대통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내놓은 공약을 실천한다며 나랏돈을 더 많이 끌어다 쓴다면 국가 재정은 멍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근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로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능력이 뛰어난 후보가 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지켜봤다.
플라톤은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의 가장 큰 결함으로 지적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눈앞의 이익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성숙한 유권자가 많지 않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나라살림을 거덜 내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
이번 세제개편안에는 과세표준(課稅標準) 구간 조정,출산ㆍ입양 등에 대한 소득공제 신설 및 확대,비과세 감면혜택 추가 등 세금을 깎아주는 감세(減稅) 관련 내용이 대폭 포함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올해 연말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의식해 국가의 재정 부담을 고려치 않고 내놓은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이번 세제개편안을 갖고 나라 살림을 꾸리는 것은 결국 차기 정부이기 때문에 현 정권이 임기 말에 통크게 세금을 깎아주면서 생색을 낼 일이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11년 만에 과표 구간 손질
우선 정부는 소득세를 매길 때 적용되는 과세표준 구간을 11년 만에 상향 조정했다.
과세표준은 납세자가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소득에서 각종 공제를 뺀 나머지 금액을 뜻하는 말이다.
줄여서 과표라고도 한다.
여기에 과표금액의 구간별 세율을 곱한 뒤 모두 더하면 최종적으로 국가에 내야 하는 소득세가 결정된다.
올해 말까지 적용되는 과표구간은 1996년 이래 △과표 1000만원 이하 8% △1000만원 초과~4000만원 이하 17% △4000만원 초과~8000만원 이하 26% △8000만원 초과 35% 등 4구간으로 고정돼 있었다.
이번 세제개편안에선 △1200만원 이하 8% △1200만원 초과~4600만원 이하 17% △4600만원 초과~8800만원 이하 26% △8800만원 초과 35% 등으로 10~20% 각각 올렸다.
소득세를 결정하는 요인으로는 공제,과표,세율이 있다.
이중에서도 정부가 과표구간에 손을 댄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국은 소득세를 걷을 때 낮은 과표구간부터 차례차례 정해진 세율을 곱해 올라오는 '다단계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세율이 얼마냐도 중요하지만 얼마의 과표 구간에 그같은 세율을 매기느냐가 세금 액수를 결정하는 데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따라서 과표 구간을 일제히 올려버리면 자신의 과표 중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구간이 넓어져 소득세를 아예 내지 않는 일부 면세점(免稅點) 이하의 저소득층을 제외한 대부분의 경제활동인구가 세금 감면 혜택을 받게 된다.
정부는 이번 과표구간 조정으로 2008~2013년 1조1000억원의 세금을 깎아주게 된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출산 또는 입양을 한 가정에는 일률적으로 200만원을 소득에서 공제해주고 급식비 방과후학교 수업료 교재비 등을 추가로 공제 대상에 포함시키는 등 공제 혜택도 늘렸다.
공제 금액이 많아지면 과표가 줄어 세금도 자연히 줄어든다.
여기에 '국가균형발전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지방에 창업·이전하는 기업에 최고 70%까지 법인세를 감면해 주거나 각종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취득·등록세를 감면하는 내용 등이 수두룩하다.
◆왜 하필 지금?
정부가 자발적으로 세금을 깎아준다는데 싫다고 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의 임기 말에 쏟아져 나온 '감세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우선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 다른 데서 세금을 확충할 방안을 마련해두지 않고 무작정 세금을 깎아주기 시작하면 재정적자(財政赤字)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현 정부는 5년간의 임기 동안 각종 복지 혜택을 확충하고 공무원 수를 대폭 늘렸다.
그로 인해 2004년부터 4년간 매년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은 돈을 썼다.
올 상반기 재정 적자 규모는 무려 22조원에 이른다.
그런데도 현 정부는 감세안을 꺼내 들었다.
어차피 다음 정권에 넘겨 줄 나라 곳간이니 텅텅 비든 말든 생색부터 내고 보자는 식이다.
세금을 덜 걷는 대신 지출을 줄이는 것도 힘들어 보인다.
복지 혜택은 정부가 한번 주기 시작하면 여간해선 없애거나 줄이기 어렵다.
공무원 역시 한번 자리를 늘려 놓으면 잘라내기는 쉽지 않다.
재정 적자가 누적되면 정부는 민간으로부터 돈을 빌려다가 나랏일에 쓸 수밖에 없다.
이게 바로 '국채(國債)'다.
국채는 다음 세대의 부담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발행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게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이번 세제개편안이 대선을 의식해 내놓은 무책임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나라 살림 거덜나는 것만은 막아야
세제개편안을 최종적으로 통과시키는 곳은 국회다.
하지만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내놓은 안을 대선을 코앞에 둔 정치인들이 과감하게 메스를 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간 큰' 정치인은 없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번 세제개편안은 원안대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우리는 각 정당 대선 주자들이 벌이는 이전투구를 매일 지켜보고 있다.
그게 다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싸움이다.
앞으로 각 당 후보들이 결정되고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되면 정치가들은 '일단 선거에서 이기고 보자'는 식의 선심성 공약을 남발할 가능성이 높다.
임기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정부가 세금을 대폭 깎아줬는데 다음 대통령은 선거에 이기기 위해 내놓은 공약을 실천한다며 나랏돈을 더 많이 끌어다 쓴다면 국가 재정은 멍들 수밖에 없다.
우리는 최근 몇 번의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로지 대중의 지지를 얻는 능력이 뛰어난 후보가 지도자로 선출되는 것을 지켜봤다.
플라톤은 이런 현상을 민주주의의 가장 큰 결함으로 지적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눈앞의 이익보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생각하는 성숙한 유권자가 많지 않다면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나라살림을 거덜 내는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