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병사들은 하루 종일 눈을 치워야 할까

한겨울에 웃통을 벗어 던지고 동료들과 어울려 눈을 치우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군생활의 추억이다.

병영의 눈을 치우는 행위는 독특하다.

널빤지를 각목에 이어 붙인 초보적인 도구를 사용한다.

예를 들어 눈삽(snow shovel)을 장착한 트랙터 같은 중장비를 별로 활용하지 않는다.

대다수 부대는 조금만 개량하면 눈을 치우는 데 동원할 수 있는 중장비를 넘치도록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중장비를 하나 투입하면 병사 수십 명이 하루 종일 할 일을 한두 시간 만에 끝낼 수도 있다.

지휘관들은 병사들의 체력단련이나 전우애 같은 무형의 효과를 강조하곤 한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는 걸 경제학자들은 알고 있다.

병사들에게 하루 종일 눈을 치우게 하면 밥을 두 배로 먹어치운다고 해보자.병사 50명이 밥을 두 배로 먹는 것보다는 중장비 한 대를 더 동원하는 게 저렴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회 전체적인 계산이다.

의사 결정을 하는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다를 수 있다.

군대에 쌀이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정부에서 무조건 책임진다.

그러나 중장비에 넣어야 할 연료는 공급이 제한되어 있다.

추가로 얻어내기 위해서는 복잡한 서류작업을 거쳐야 한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밥을 더 먹고 쌀이 떨어지는 일은 지휘관에게 어떤 부담도 주지 않지만 연료는 제한된 자원인 셈이다.

의사결정을 하는 지휘관 입장에서는 연료 1ℓ가 쌀 열 가마니보다 더 비쌀 수 있다.

◆주식회사의 기원

한 사업의 위험을 여러 투자자들이 함께 나누는 주식회사는 시장경제 발달에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기원은 상선(商船)에 대한 공동투자로 시작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초기 해상무역은 위험이 지나치게 컸다.

16세기 어떤 선장이 네덜란드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인도네시아까지 갔다가 돌아왔는데,떠날 때 249명이었던 선원이 돌아올 때는 고작 89명뿐이었다.

그래도 이 여행은 성공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배가 무사히 돌아오기만 하면 이익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니콜라우스 피퍼,'청소년을 위한 경제의 역사')

한번의 실수로 재산은 물론 가족과 목숨을 잃지 않아도 되는 주식회사는 모험정신을 고취했다.

예나 지금이나 시장개척이나 기술개발은 실패 위험이 높지만 성공하면 큰 이익을 낼 수 있다.

여럿이 제한된 책임만을 나눠지는 주식회사는 시장경제에 모험과 혁신이라는 특성을 부여했다.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주식회사는 태동과 동시에 지금까지도 말끔하게 해결하지 못한 숙제 하나를 만들었다.

◆주인-대리인 문제

투자자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먼 항해를 떠나는 선장이 여행의 성공을 위해 언제나 최선을 다한다는 보장은 없다.

기분 내키는 대로 선원들을 때리고 항해에 필요한 물건을 어부들에게 팔아치울 수도 있다.

이렇게 명백한 부정행위는 발각되면 고발이라도 할 수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다.

회사를 위해 더 비싸게 팔 수 있는데도 본국에 빨리 돌아가고 싶어서 적당한 값만 받고 팔아 치웠다는 의심이 가도 증명할 방법이 없다.

대리인은 주인보다 정보가 많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숨길 수 있다.

이를 '감추어진 행동(hidden action)'이라고 부른다.

감추어진 행동은 밝히기도 힘들고 밝혀도 법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명백한 배임행위와는 구별된다.

선장도 주주의 일부가 되는 방법이 있고 또 많은 경우 그랬지만 이마저도 완전한 해결책이라고 하기 어렵다.

선장이 수고를 아껴서 얻는 이익은 오롯이 자신의 것이지만 추가된 회사의 이익 중 자신의 몫은 다른 주주들과 나누어야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규모가 크고 주주가 많은 오늘날의 주식회사에서 이 문제는 보다 뚜렷하다.

경영자가 회사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한다는 성과급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미가 그다지 크지 않다.

평균적으로 회사에 1000달러의 이익을 남기면 경영자에게 돌아오는 몫은 고작 3달러가 조금 넘는다고 한다.(스티븐 랜즈버그,'안락의자의 경제학자') 회사가 1000달러의 이익을 추가로 얻도록 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경영자의 수고가 4달러를 넘어서면서부터 성과급은 주인-대리인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뜻이다.

◆어디에나 있는 문제

주인-대리인 문제는 주주와 경영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결정이나 행위를 하는 주체와 의사결정의 비용을 지불하거나 이익을 얻는 사람이 다를 경우를 모두 주인-대리인 문제라 할 수 있다.

식당 종업원은 식당 주인에 대해서도 대리인이지만 고객에 대해서도 그렇다.

자신의 서비스에 대해서 주인이나 고객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수고나 게으름 무엇이 되었건 숨길 여지가 조금은 있기 마련이다.

부동산중개사,변호사,심지어는 교수나 학원 강사도 자신을 이용하는 고객보다 정보가 많아 행위를 감추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공무원은 대표적인 대리인이다.

자신이 맡은 업무에 대해서는 국민과 국회의원,대통령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업무상 최선과 자신을 위한 최선이 대립하고 있고,대통령과 국회의원, 국민은 이를 알 수 없을 때 공무원으로 하여금 업무상 최선을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택권의 의미

주인으로서는 대리인들이 알고 있는 정보를 다 알기 전까지는 대리인이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해도 주인이 대리인의 정보를 다 아는 것이 반드시 좋은 일도 아니다.

대리인을 계속 감시하는 데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이 비용은 감시로부터 얻을 이익보다 일반적으로 크다.

대리인 스스로 자신을 감시하고 독려하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대리인이 스스로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은 누구도 제시하지 못한다.

그러나 대리인이 최선을 다하도록 하는 환경의 기본적인 특성에 대해서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주인에게 대리인을 교체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어야 한다.

고객은 명백한 잘못을 증명하지 않고도 식당을 바꿀 수 있다.

선장의 인격을 믿을 수 없던 투자자는 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자신의 주식을 팔아 치워 버렸다.

변명을 늘어놓는 경영자를 감사하기 싫으면 주식을 팔고 보다 정직한 경영자를 고용한 회사의 주식을 사면 된다.

공무원이 예산을 지속적으로 낭비하는 것 같으면 국민은 공무원을 따라다니지 않고도 선거를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압박할 수 있다.

숨겨진 행위가 누적되면 어떤 형태로건 결과가 나타난다.

숨겨둔 수고의 낱낱을 대리인 스스로 찾아내게 하는 방법은 없지만 대리인이 숨겨둔 수고를 활용하고 싶은 환경을 조성할 수는 있다.

선택권이 주인에게 있고 그 주인은 결과를 중시한다는 것을 아는 대리인의 양팔저울과 그렇지 않은 대리인의 저울은 중심추의 위치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민주주의와 투표율

학교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민주주의 이상적인 모델이라고 가르친다.

대의제 민주주의는 차선책일 뿐이다.

따라서 대의제 선거에서 투표율은 매우 중요하다.

투표율이 높은 것이 낮은 것보다 직접민주주의에 보다 가깝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보다 깊은 성찰을 요한다.

실제로 정치·경제적으로 안정된 사회일수록 투표율은 낮아진다.

매 선거마다 구체적으로 선택권을 발휘해 정부를 바꾸지 않아도 선거는 의미가 있다.

선거를 통해 대리인을 교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그 자체만으로도 민주주의는 이미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 낮은 투표율을 다르게 평가할 수도 있다.


▶학생글:박재원(숭의여고 2학년)

투표율이 높을수록 민주적이란 말은 타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원인과 결과,선후가 바뀐 상태가 아닌가 싶다.

민주적일수록 투표율은 낮을 확률이 크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성숙된 사회일수록 투표 말고도 시민의 의견을 표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 해결과정도 유연해져서 선거일까지 기다려야 할 필요도 사라졌다.

반대로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있고 성숙한 시민의식이 갖추어졌는데 사회가 비민주적이면 투표율이 아주 높다.

(…)

또한 GDP가 높아지면 투표율은 낮아진다.

그 이유는 개개인의 생활에 지장이 없고 욕구가 충족되었기 때문에 굳이 투표를 통해서 사회구조를 바꿀 필요성을 못 느끼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투표율이 낮을수록 국민들은 살기 좋은 사회라고 느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현대사회에서는 직접민주주의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필요성이 떨어져서 안 한다는 말이 맞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