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奎載 < 논설위원ㆍ생글생글 편집인 >

☞한국경제신문 8월14일자 A39면

세계의 중앙은행들이 바빠지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금융 위기의 해결사가 아닌 원인 제공자라는 비난을 들어 마땅한 상황이다. 버냉키가 아닌 그린스펀의 잘못이 컸을 테다. 일부에서는 버냉키의 동작이 굼떴다고 비난하지만 통화량을 급격하게 늘렸던 사람은 그린스펀이다. 1990년 후반 연 8.5%의 통화 증가율을 방임했고 금리를 연 1% 수준으로 내리면서 그 속도를 15%대로 다시 끌어올렸었다. 금리를 내린 만큼 통화는 말 그대로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1998년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 부도 사건이 터졌을 때만 해도 불과 38억달러의 구제 금융으로 해결되었지만 지금은 통화 단위부터가 달라졌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주 이틀 동안 620억달러를 풀었고 유럽중앙은행(ECB)은 2136억달러를 풀었다. 일본이 84억달러,호주가 42억달러를 풀었다. 300조원에 이르는 돈이다. 구제 금융과 시장 개입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지만 중앙은행들은 이번 주에도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풀어야 할 상황이다. 협조 융자나 구제 금융의 역사도 그리 짧은 것은 아니다. 금 본위제가 위협받던 시기에 JP모건이 미 연방 정부에 구제 금융을 주었던-그 반대가 결코 아니다-것은 1895년이었다. 그 때만 해도 규모는 기껏해야 1000만달러 단위였다. JP모건이 1907년 뉴욕시의 부도를 막아 주었던 금액도 3000만달러였다. 지금은 1000억달러 단위를 넘겼다. 물론 인플레의 탓이 클 것이다. 모건이 떠맡아 왔던 중앙은행 역할은 FRB가 설립된 1913년에야 끝이 났다. 같은 해에 운명적이게도 모건 소유주이며 금융가의 황제였던 피어폰트 모건이 사망했다. 뉴욕증권거래소는 그의 장례식날 반나절을 휴장했다. 이후로 금융 시장의 딜러요 최종 대부자는 중앙은행으로 바뀌었다. 구제 금융의 책임이 국가로 넘어왔지만 원리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금융은 위험을 먹고 사는 것이고 따라서 심리적인 것이다. 이 심리는 때로 광기의 군중 심리가 되기도 한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버블에 대한 위험 인식도 점차 무장 해제된 것이 작금의 사태다. 정치든 경제든 위장된 평화는 언제나 파국의 예비 음모에 불과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또한 언제나 잊고 있다. 자금의 밀물기에는 모든 것이 수면 아래 잠겨 있지만 물이 빠지면 비로소 바윗돌과 웅덩이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린스펀에 대한 칭송이 높아갔던 만큼 시장의 위험 인식은 비례적으로 둔감해졌다. 버냉키가 3%대였던 금리를 5.25%로 끌어올리고서야 수면 아래 잠겼던 것이 드러났다. 때늦은 깨달음이라는 말이 있듯이 위험을 알아챘을 때는 언제나 이미 늦은 때이기 십상이다.

이 세계적인 금융 소용돌이의 와중에 지난주 한국은행은 금리를 또 올렸다. 물론 금리를 올릴 당위성은 상존해 왔다. 그러나 문제는 타이밍이다. 그것이 아닐 바에야 한은 집행부에 수백명의 고연봉 전문가를 제쳐놓고 별도의 금융통화위원회를 둘 이유가 없다. 타이밍에 맞게 금리를 조정하는 것이 금통위가 할 일의 전부다. 결국 지난주의 금통위는 세계 금융 정세에 무지하거나 고집 불통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 바로 그날 밤 세계의 중앙은행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수백억달러씩 보따리를 풀어헤쳐야만 했다. 한은 집행부의 정보 부족이거나 금통위의 판단력 부재,아니면 둘 다일 것이다.

물론 다른 나라들이 법석을 떤다고 따라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나홀로 딴 동네에서 놀아도 좋을 만큼 한국 금융시장이 폐쇄적(?)이지는 않다. 외국인 투자 비중이 세계 최고인 과잉 개방 시장이며 투자자 또한 어느 나라보다 죽 끓듯하고 위험 지향적이다. 금리를 올리면서 내놓은 '통화정책 방향'이라는 보도자료는 더욱 짜증스럽다. 금리를 동결할 때나 올릴 때나 발표문이 별로 다르지도 않다. 눈을 씻고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어렵다. '경제는 잘 돌아가고 물가는 안정되어 있으며,부동산 가격 상승은 제한적이고 금융회사 여신도 원활하다'는 판박이다. 실물 경제에 대한 약간의 유보적 태도만이 달랐다. 나중에 이 발표문을 보면 어느 시기에 나왔던 것인지 알 수조차 없을 것이다. 전문적 식견이 필요할 때 이를 증명하지 못하면 최종 대부자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무너지게 마련이다.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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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국제 금융시장 동향 예의 주시해야

금융시장의 동조화(同調化)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외환위기 이후 문을 활짝 열어젖힌 우리 금융시장은 미국 시장이 감기에 걸리면 독감을 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해외 동향에 민감하게 움직인다. 이자율 환율 등이 적정 수준보다 조금이라도 높거나 낮아지면 외국 자금이 봇물처럼 밀려 들어오고 밀려 나간다. 그래서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의 자금 담당자들은 사무실에 유명 금융 뉴스 채널을 켜 놓은 채 뉴욕 도쿄 등 해외 시장 동향을 실시간으로 관찰하고 있다. 해외 동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자칫 자금 조달 운영에 큰 차질을 빚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 금융시장이 불안하게 움직이는 것은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의 저금리 정책이 큰 원인이다. 세계의 경제대통령으로 불렸던 그린스펀은 2001년 9·11사태가 발생한 이후 과도한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왔다. 9·11 사태로 미국 경제가 침체 조짐을 보이자 4%대의 기준금리를 1%로 끌어 내려 2003년까지 지속시켰다. 이로 인해 미국 경제는 순항할 수 있었으나 지나치게 풀려나간 자금이 주택시장으로 흘러들어 거품을 형성했다. 최근 미국 유럽의 대규모 금융기관들이 투자 손실을 입고 있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도 이렇게 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금융시장은 이처럼 정책 당국의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기를 살리기 위한 통화 팽창 정책이 자산 시장의 거품을 낳기도 하고 반대로 자산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통화 긴축 정책이 경기를 위축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정책 당국은 정책 수위를 조절하기 위해 시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금융 정책이 그만큼 어렵다는 설명이기도 하다.

정규재 논설위원 겸 생글생글 편집인은 최근 불안한 해외 금융 시장에 비춰볼 때 우리 금융통화운영위원회가 외국 동향을 너무 가볍게 보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을 하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 국내 금융 시장은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융 시장의 동조화 특성을 감안하면 어떤 변수에 의해 상황이 변할지 알 수 없다. 미국 유럽이 신용경색 타개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는 두 달 연속 금리를 인상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나 엔캐리 트레이드 자금은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확한 시장 상황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정책은 자칫 큰 부작용을 몰고 올 수 있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