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조풍연(언론인), 윤석중(아동문학가) 등이 함께 출판업을 권했으나 썩 내키질 않았다. 먼 친척 할아버지뻘 되던 위당(정인보)이 찾으시더니 '민족혼을 되살리는 유일한 문화적 사업이야말로 출판인데 왜 그걸 안 하겠다는 거야'고 불호령을 내리셨다."
국내 출판계의 산 역사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95)이 1945년 을유문화사를 세우고 평생을 출판 일에 바치게 된 계기를 회고했다. 최근 펴낸 자서전 '출판인 정진숙'에서다. 그는 2005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성재 일지사 대표와 함께 우리 말글에 관해 남다른 애착을 보인 출판인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내키질 않았다'란 표현이다. '그는 그 일이 내키지 않았다'처럼 쓰이는 자동사 '내키다'는 종종 '그는 그 일을 내켜하지 않았다' 식으로 타동사로 변신해 쓰이기도 한다. '내키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내켜하다'는 물론 일반적인 국어 문법 체계에서 인정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쓰임새의 빈도나 범위 등으로 볼 때 결코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틀린 말'로 처리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꺼려하다'도 마찬가지.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렸다'라고 해야 할 것을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다'라고 하기 십상이다.
'내켜하다'나 '꺼려하다'를 단순히 문법적인 잣대로만 판단하면 답은 명쾌하다. 기본형 '내키다''꺼리다'가 그 자체로 동사이므로 굳이 접미사 '-하다'란 말을 붙여 새로운 말을 파생시켜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아)하다'는 전통적으로 형용사를 동사처럼 써야 할 때 붙이는 방식이다. '아프다'를 '아파하다'로, '무섭다'를 '무서워하다'로 바꿔 동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떨 때 형용사를 동사로 바꿔 써야 할까. 가령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다. '나는 장미꽃이 좋다''나는 죽는 게 두렵다'란 표현도 있다. 이때 '아프다, 좋다, 두렵다'는 사람의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로서 그 자체로 서술어 기능을 한다. 이것을 동사처럼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동작성을 준다는 뜻이다. '그가 배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사촌이 땅을 산 게 틀림없어.''그는 꽃 중에서도 장미꽃을 좋아한다.''나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이처럼 목적어를 수반하면서 동작의 개념이 들어가는 뜻으로 쓸 때 '-어하다'를 붙여 형용사를 동사로 만든다.
하지만 동사에서는 이미 자체로 그런 기능을 갖고 있으니 따로 '-어하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품사란 두부모 자르듯 일도양단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어서 동사 가운데 일부(형용사와 경계선 상에 있는 말들)는 '-어하다' 꼴의 변형이 자주 등장한다. '내켜하다'나 '꺼려하다' 같은 변형된 말이 쓰이는 까닭은 우선 심리적인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키다'와 '꺼리다'가 동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동작성이 강한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사람이 '동작성'을 분명히 하려고 무의식 중에 '-하다'를 붙일 수 있다. 특히 '내키다' 같은 경우 자동사이다 보니 뜻을 강하게 하려고 타동 용법으로 해 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어하다'를 붙여 쓰게 되는 것 같다.
사전 편찬 전문가인 안상순 금성출판사 부장은 '내켜하다'나 '꺼려하다'를 두고 "문법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심리 동사에 '-하다'를 붙임으로써 얻는 '주관적 심리의 객관화 기능'으로 볼 수 있다"며 일부 단어들에 한해 이 같은 특수 용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그는 거짓말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나)'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가)는 비교적 단정적인 표현인 데 비해 (나)는 '그'의 심리 상태를 보다 객관화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두 문장에서 앞의 것이 비록 바른 표현이긴 하지만 뒤의 것을 굳이 잘못된 말로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내키다, 꺼리다'가 그 자체로 각각 자동사와 타동사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하므로 불필요하게 '-어하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게 현행 문법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국내 출판계의 산 역사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회장(95)이 1945년 을유문화사를 세우고 평생을 출판 일에 바치게 된 계기를 회고했다. 최근 펴낸 자서전 '출판인 정진숙'에서다. 그는 2005년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김성재 일지사 대표와 함께 우리 말글에 관해 남다른 애착을 보인 출판인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우리가 관심을 두고 있는 부분은 '내키질 않았다'란 표현이다. '그는 그 일이 내키지 않았다'처럼 쓰이는 자동사 '내키다'는 종종 '그는 그 일을 내켜하지 않았다' 식으로 타동사로 변신해 쓰이기도 한다. '내키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내켜하다'는 물론 일반적인 국어 문법 체계에서 인정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 쓰임새의 빈도나 범위 등으로 볼 때 결코 만만치 않은 세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틀린 말'로 처리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꺼려하다'도 마찬가지.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렸다'라고 해야 할 것을 '그는 사람 만나기를 꺼려했다'라고 하기 십상이다.
'내켜하다'나 '꺼려하다'를 단순히 문법적인 잣대로만 판단하면 답은 명쾌하다. 기본형 '내키다''꺼리다'가 그 자체로 동사이므로 굳이 접미사 '-하다'란 말을 붙여 새로운 말을 파생시켜 쓸 이유가 없을 것이다.
'-어(아)하다'는 전통적으로 형용사를 동사처럼 써야 할 때 붙이는 방식이다. '아프다'를 '아파하다'로, '무섭다'를 '무서워하다'로 바꿔 동사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어떨 때 형용사를 동사로 바꿔 써야 할까. 가령 우리 속담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란 말이 있다. '나는 장미꽃이 좋다''나는 죽는 게 두렵다'란 표현도 있다. 이때 '아프다, 좋다, 두렵다'는 사람의 어떤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로서 그 자체로 서술어 기능을 한다. 이것을 동사처럼 쓴다는 것은 말 그대로 동작성을 준다는 뜻이다. '그가 배 아파하는 모습을 보니 사촌이 땅을 산 게 틀림없어.''그는 꽃 중에서도 장미꽃을 좋아한다.''나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이처럼 목적어를 수반하면서 동작의 개념이 들어가는 뜻으로 쓸 때 '-어하다'를 붙여 형용사를 동사로 만든다.
하지만 동사에서는 이미 자체로 그런 기능을 갖고 있으니 따로 '-어하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단어의 품사란 두부모 자르듯 일도양단으로 나눠지는 게 아니어서 동사 가운데 일부(형용사와 경계선 상에 있는 말들)는 '-어하다' 꼴의 변형이 자주 등장한다. '내켜하다'나 '꺼려하다' 같은 변형된 말이 쓰이는 까닭은 우선 심리적인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키다'와 '꺼리다'가 동사임에는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동작성이 강한 말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말하는 사람이 '동작성'을 분명히 하려고 무의식 중에 '-하다'를 붙일 수 있다. 특히 '내키다' 같은 경우 자동사이다 보니 뜻을 강하게 하려고 타동 용법으로 해 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어하다'를 붙여 쓰게 되는 것 같다.
사전 편찬 전문가인 안상순 금성출판사 부장은 '내켜하다'나 '꺼려하다'를 두고 "문법적으로 정립된 것은 아니지만, 이는 심리 동사에 '-하다'를 붙임으로써 얻는 '주관적 심리의 객관화 기능'으로 볼 수 있다"며 일부 단어들에 한해 이 같은 특수 용법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가)'그는 거짓말하는 게 내키지 않았다.'
(나)'그는 거짓말하는 것을 내켜하지 않았다.'
(가)는 비교적 단정적인 표현인 데 비해 (나)는 '그'의 심리 상태를 보다 객관화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두 문장에서 앞의 것이 비록 바른 표현이긴 하지만 뒤의 것을 굳이 잘못된 말로 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어쨌든 아직까지는 '내키다, 꺼리다'가 그 자체로 각각 자동사와 타동사로서의 구실을 충분히 하므로 불필요하게 '-어하다'를 덧붙일 필요가 없다고 보는 게 현행 문법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