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는 석유 값에 세계인의 근심이 가득하다. 올 들어 서부텍사스 중질유(WTI),브렌트유,두바이유 등 세계 3대 국제 원유 가격이 모두 작년 여름 기록했던 사상 최고치(종가 기준)를 갈아치웠다.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에서 거래되는 WTI 가격은 지난달 31일 배럴당 78.21달러로 마감됐다. 종가 기준으로 사상 최고치이며 연초 대비 50% 이상 급등한 것이다. 브렌트유도 80달러에 육박했고,두바이유 역시 70달러를 넘어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조만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는 이 같은 우울한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지배적이라는 것. 이미 컴퓨터 칩에서 건설,농업까지 석유 없이는 세계 경제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고유가는 업계에 큰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물가를 높여 소비자까지 고생시킨다. 기름값 파동이 세계 경제의 성장 능력을 깎아먹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에 도는 이유다.
◆석유 공급 왜 모자라나
몇 달 잠잠하던 유가가 최근 치솟는 데에는 우선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최근 외신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여유 생산능력(excess capacity)'이 감소했다는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산유국의 최대 석유 생산능력에서 실제 생산량을 뺀 '여유 생산능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여유분을 뜻한다. OPEC의 여유 생산능력은 2002년대 초반까지 하루 평균 500만배럴 정도였지만 2003년 이후 100만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 테러나 자연재해 등에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럼 석유 생산량은 왜 부족한 것일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엿보면 이해가 된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했을 때 산유국들은 앞다퉈 석유 관련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석유 생산량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석유 소비량은 오히려 줄었다. 공급은 충분한데 수요가 줄어드니 유가는 떨어졌다.
이때부터 10여년간 세계는 저유가 시대를 누렸지만 산유국은 울상이었다. 오르는 석유값만 믿고 설비 투자에 큰 돈을 썼는데 석유값은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못 버는데 석유 인프라 투자에 다시 나설 까닭이 없었다. 이 같은 투자 부진은 21세기 들어서야 큰 문제로 불거졌다. 낙후된 시설로는 경제가 급성장하는 개도국들의 폭발적인 석유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급은 달리는데 수요는 폭발적
석유 증산에는 '자원민족주의'라는 정치적 걸림돌도 있다.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은 자국의 원유 생산시설을 하나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추세다. 정부가 나서서 원유 시설을 국유화하고 다국적 정유회사들의 신규 투자를 제한하다 보니 석유가 원활히 공급되기 어렵다.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이 전쟁과 내전,정치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구체적인 석유 매장량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점도 석유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매년 석유 매장량을 추정하는 보고서가 일부 기관에서 나오고 있지만 추정에 불과하다. 에너지산업 전문 투자은행인 '사이먼스앤드컴퍼니'의 매튜 사이먼스 회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 '석유의 비밀'에서 "유전별 매장량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보는 모든 나라에서 국가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며 "석유 매장량이 충분하다는 산유국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석유 가운데 90%는 채굴을 시작한 지 수십 년씩 된 낡은 유전에서 뽑아내고 있다"며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은 가까운 미래에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공급이 부족한 마당에 수요는 오히려 치솟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작년 세계 경제는 5.4% 성장했다. 올해도 5.2% 성장이 점쳐진다. 높은 성장세에 따라 석유 소비량은 매년 증가해 2010년까지 연 평균 1.9% 늘어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다보고 있다. 특히 급격한 경제 성장을 누리고 있는 중국은 석유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중국의 2003년과 2004년 석유 소비 증가율은 각각 12%와 16%에 달했다.
◆대체연료에 희망 걸어보지만
하지만 고유가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석유 소비 증가세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전 세계 석유 소비 증가율은 2004년에 3.9%을 기록한 이후 2005년 1.5%,2006년 0.9%로 점점 낮아졌다. 석유가 비싸지자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휘발유 사용량이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가 줄어들고,전기를 일부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이 그 예다. 닛산과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주도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미국의 포드,GM 등도 새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하이브리드 차는 점점 더 인기를 끌 전망이다.
석유와 경쟁하는 대체 연료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옥수수 등 농산물로 정제하는 에탄올 연료가 특히 유망주다. 자동차와 각종 산업 분야에 에탄올을 이용할 경우 석유로 인한 공해를 줄일 뿐 아니라 가격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이미 브라질과 미국 등이 에탄올 연료 등 청정에너지 투자를 늘리기로 하는 등 석유의 독점적 입지는 서서히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청정 에너지 개발과 석유 소비량 절제는 고유가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충분할까? 아쉽게도 전문가들 중에는 회의론자가 많은 것 같다.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기에는 시장에 불안 요소가 워낙 많다는 분석이다. 석유값을 지키려는 OPEC의 결속력이 여전히 강한 데다 석유 최대 소비국인 미국 경제도 성장을 계속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유가가 단기간 하락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석유 인프라 투자도 다시 줄어 수급 상황이 더욱 꼬일 수 있다. 고유가에 대처하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조만간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것이라고 예측했다. 문제는 이 같은 우울한 전망이 전문가들 사이에서 이미 지배적이라는 것. 이미 컴퓨터 칩에서 건설,농업까지 석유 없이는 세계 경제가 돌아갈 수 없는 상황. 고유가는 업계에 큰 비용 부담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물가를 높여 소비자까지 고생시킨다. 기름값 파동이 세계 경제의 성장 능력을 깎아먹을 것이라는 불안감이 시장에 도는 이유다.
◆석유 공급 왜 모자라나
몇 달 잠잠하던 유가가 최근 치솟는 데에는 우선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최근 외신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여유 생산능력(excess capacity)'이 감소했다는 소식을 잇따라 전했다. 산유국의 최대 석유 생산능력에서 실제 생산량을 뺀 '여유 생산능력'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여유분을 뜻한다. OPEC의 여유 생산능력은 2002년대 초반까지 하루 평균 500만배럴 정도였지만 2003년 이후 100만배럴 수준으로 떨어졌다. 테러나 자연재해 등에 충분히 대비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그럼 석유 생산량은 왜 부족한 것일까? 세계 경제의 흐름을 엿보면 이해가 된다. 1970년대 두 번의 오일쇼크로 유가가 급등했을 때 산유국들은 앞다퉈 석유 관련 시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고 석유 생산량은 크게 늘었다. 하지만 1980년대 세계 경제가 위축되면서 석유 소비량은 오히려 줄었다. 공급은 충분한데 수요가 줄어드니 유가는 떨어졌다.
이때부터 10여년간 세계는 저유가 시대를 누렸지만 산유국은 울상이었다. 오르는 석유값만 믿고 설비 투자에 큰 돈을 썼는데 석유값은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돈을 못 버는데 석유 인프라 투자에 다시 나설 까닭이 없었다. 이 같은 투자 부진은 21세기 들어서야 큰 문제로 불거졌다. 낙후된 시설로는 경제가 급성장하는 개도국들의 폭발적인 석유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공급은 달리는데 수요는 폭발적
석유 증산에는 '자원민족주의'라는 정치적 걸림돌도 있다. 베네수엘라 이란 이라크 등은 자국의 원유 생산시설을 하나의 정치적 무기로 활용하는 추세다. 정부가 나서서 원유 시설을 국유화하고 다국적 정유회사들의 신규 투자를 제한하다 보니 석유가 원활히 공급되기 어렵다. 이란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이 전쟁과 내전,정치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도 문제다.
구체적인 석유 매장량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는 점도 석유시장의 불안 요인이다. 매년 석유 매장량을 추정하는 보고서가 일부 기관에서 나오고 있지만 추정에 불과하다. 에너지산업 전문 투자은행인 '사이먼스앤드컴퍼니'의 매튜 사이먼스 회장은 최근 출간한 저서 '석유의 비밀'에서 "유전별 매장량이 얼마인지에 대한 정보는 모든 나라에서 국가 비밀로 취급되고 있다"며 "석유 매장량이 충분하다는 산유국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의 석유 가운데 90%는 채굴을 시작한 지 수십 년씩 된 낡은 유전에서 뽑아내고 있다"며 "사우디의 석유 생산량은 가까운 미래에 감소세로 돌아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게 공급이 부족한 마당에 수요는 오히려 치솟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작년 세계 경제는 5.4% 성장했다. 올해도 5.2% 성장이 점쳐진다. 높은 성장세에 따라 석유 소비량은 매년 증가해 2010년까지 연 평균 1.9% 늘어날 것으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다보고 있다. 특히 급격한 경제 성장을 누리고 있는 중국은 석유의 블랙홀이 되고 있다. 중국의 2003년과 2004년 석유 소비 증가율은 각각 12%와 16%에 달했다.
◆대체연료에 희망 걸어보지만
하지만 고유가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는 분석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석유 소비 증가세가 갈수록 둔화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실제로 전 세계 석유 소비 증가율은 2004년에 3.9%을 기록한 이후 2005년 1.5%,2006년 0.9%로 점점 낮아졌다. 석유가 비싸지자 선진국에서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휘발유 사용량이 많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판매가 줄어들고,전기를 일부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의 소비자가 늘어나는 것이 그 예다. 닛산과 도요타 등 일본 자동차업체들이 주도하는 하이브리드 자동차 개발에 미국의 포드,GM 등도 새로 의욕을 보이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 하이브리드 차는 점점 더 인기를 끌 전망이다.
석유와 경쟁하는 대체 연료들의 활약도 만만치 않다. 옥수수 등 농산물로 정제하는 에탄올 연료가 특히 유망주다. 자동차와 각종 산업 분야에 에탄올을 이용할 경우 석유로 인한 공해를 줄일 뿐 아니라 가격 측면에서도 유리할 것이란 기대가 높다. 이미 브라질과 미국 등이 에탄올 연료 등 청정에너지 투자를 늘리기로 하는 등 석유의 독점적 입지는 서서히 위협받고 있다.
이처럼 청정 에너지 개발과 석유 소비량 절제는 고유가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기 충분할까? 아쉽게도 전문가들 중에는 회의론자가 많은 것 같다.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따라잡기에는 시장에 불안 요소가 워낙 많다는 분석이다. 석유값을 지키려는 OPEC의 결속력이 여전히 강한 데다 석유 최대 소비국인 미국 경제도 성장을 계속할 것이란 예측이 많다. 유가가 단기간 하락할 수도 있지만 이럴 경우 석유 인프라 투자도 다시 줄어 수급 상황이 더욱 꼬일 수 있다. 고유가에 대처하는 국가적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김유미 한국경제신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