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로 시작해 열국지 읽고 대망까지 탐독하라"
"선승(禪僧)은 화두를 던질 뿐 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60)은 좋은 리더의 자질에 대해 '짧고 굵은' 정의를 내렸다. 좋은 리더란 "꿈을 꾸되 꿈을 현실화시키는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꾸되 백일몽에 그치지 않도록 혜안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제일제당을 첫 직장으로 시작해 인사담당 이사와 삼성전자 인사담당 상무,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인사팀장을 거친 '인사통(人事通)'. 삼성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었던 그는 매서울 정도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 그런 그가 좋은 리더의 자질로 꼽는 마지막 필수요건은 무엇일까. 이 사장은 "꿈을 실현하는 일을 부하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예부터 뛰어난 선승은 화두를 던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 뭐꼬(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선승은 화두만을 던질 뿐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화두를 푸는 방법까지 말해준다면 자신만의 수행과 정진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뛰어난 제자를 배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리더는 꿈을 자기가 나서서 이루기보다 부하직원들을 움직여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는 얼핏 무뚝뚝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로맨티스트'. 백호 임제의 시조를 읊고 한밤중 들려오는 '로망스'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가슴이 따뜻한 최고경영자(CEO)다.
이 사장의 어릴적 꿈은 화가였다. 학교 선생님이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할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뛰어났다(그의 소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은 미대에 진학해 '조소'를 공부하고 있다).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6남매 장남이 동생을 거둬야 하는데 환쟁이 해서 돈을 어떻게 버느냐"고 그를 말렸다. 가세가 기울어 '술지게미'를 사다 끓여먹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꿈을 접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웃으며 "이후로는 고고학자가 되기를 꿈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밥벌이 하는 데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법대를 선택해 고시에 뛰어들었다. 부산대 법학과에 들어가 3학년이 되던 해까지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공부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위해 양산 통도사에 들어갔던 시절의 일이다. 한 번은 밤중에 들려오는 '로망스' 기타 연주 소리가 들려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이 사장은 "로맨티스트 기질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힘들었을 유년시절과 대학시절을 웃으며 돌아보는 그에게서 진한 '낙관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물었다. 이 사장은 "스트레스와 친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피할 수 없다면 친구처럼 다독이고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어려움을 피하기보다 맞서기를 즐기는 그는 '역사서'에서 인생의 교훈을 찾는다. 그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담은 '대망'. "삼국지로 시작해 열국지를 읽고 대망까지 탐독하라"고 아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는 역사 서적의 매력에 빠져있다. 역사 논쟁을 벌이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역사에 해박하다. 그는 해외출장길에도 서너권의 책을 들고갈 정도로 소문난 독서광이다.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그는 7년째 에스원을 이끌고 있다). "굳이 들자면 딱 하나 있습니다. 상사에게 반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부하고 맹종하라는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죠."
'반할 만한 상사를 만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상사에게 반하기보다 약점을 찾아 비판하죠. 그러면 일을 해도 신이 안 납니다. 상사에게 반하지 않으면 1차적으로는 그 사람이 손해인 거죠. 이어서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 손해를 보는 것이고요."
성공하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을까. 삼성에서 오랫동안 '사람을 들여다 쓰는 일'을 맡아왔던 그에게 물었다. 이 사장은 "신입사원 100명 중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특출난 인재는 20%가 채 안 된다"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 10년 후 모습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진솔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면접이야기를 들려줬다.
"삼성이 1957년에 첫 공채를 시작한 이래 매년 입사경쟁률이 10 대 1이 넘습니다. 면접에서의 당락은 면접장에 들어온 뒤 30초 내에 80%가 결정납니다. 그 사람이 풍기는 보디랭귀지를 보는 거죠. 면접에서는 진솔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삼성이 5만여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하던 1998년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본부의 인사팀장을 맡아 능력과 성과를 중심으로 한 '신(新)인사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지금까지도 삼성 인사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자 그가 '시(詩)' 한 수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어듸두고 백골만 무쳤난이…." 백호 임제가 평안감사로 발령받아 평양으로 가던 길에 황진이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로 가는 건데 명색이 사대부가 기생 무덤 앞에서 시를 지어 부르니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짤렸지요. 이거 말고도 조선시대 재미있는 연애시 몇 개를 아직도 외워요."
어린 시절 꿈을 '취미'로 삼아 짬이 날 때마다 그림을 감상하러 다니는 그는 미술 공부에 대한 열의를 내비쳤다. 이 사장은 "은퇴하면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워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뭔가 몰두할 만한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DNA로 은근과 끈기를 꼽지만 이것은 1970년대나 80년대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템포가 빠른 21세기에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유목민(노마드)의 DNA가 필요하죠." 그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말을 꺼내며 '인사통'으로서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는 기업으로 보내고 그 다음 인재는 학교로 보내고 세번째 인재는 공무원으로 보내라고 한 말이 있잖습니까.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기업에 가장 우수한 인재를 보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친구들이 좀 새겨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기자 yeah@hankyung.com
"선승(禪僧)은 화두를 던질 뿐 길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이우희 에스원 사장(60)은 좋은 리더의 자질에 대해 '짧고 굵은' 정의를 내렸다. 좋은 리더란 "꿈을 꾸되 꿈을 현실화시키는 실천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 현재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며 꿈을 꾸되 백일몽에 그치지 않도록 혜안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사장은 제일제당을 첫 직장으로 시작해 인사담당 이사와 삼성전자 인사담당 상무,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인사팀장을 거친 '인사통(人事通)'. 삼성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쥐었던 그는 매서울 정도로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다. 그런 그가 좋은 리더의 자질로 꼽는 마지막 필수요건은 무엇일까. 이 사장은 "꿈을 실현하는 일을 부하들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예부터 뛰어난 선승은 화두를 던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이 뭐꼬(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선승은 화두만을 던질 뿐 제자들에게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화두를 푸는 방법까지 말해준다면 자신만의 수행과 정진을 통해 길을 찾아가는 뛰어난 제자를 배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좋은 리더는 꿈을 자기가 나서서 이루기보다 부하직원들을 움직여 이룰 수 있어야 합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그는 얼핏 무뚝뚝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로맨티스트'. 백호 임제의 시조를 읊고 한밤중 들려오는 '로망스'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가슴이 따뜻한 최고경영자(CEO)다.
이 사장의 어릴적 꿈은 화가였다. 학교 선생님이 미술반에 들어오라고 할 정도로 그림에 소질이 뛰어났다(그의 소질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은 미대에 진학해 '조소'를 공부하고 있다). 3남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알게 된 아버지는 "6남매 장남이 동생을 거둬야 하는데 환쟁이 해서 돈을 어떻게 버느냐"고 그를 말렸다. 가세가 기울어 '술지게미'를 사다 끓여먹을 정도로 힘든 시절이었다.
어린 시절 꿈을 접는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 그는 웃으며 "이후로는 고고학자가 되기를 꿈꿨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밥벌이 하는 데 도움이 안 됐기 때문"이었다. 그는 결국 법대를 선택해 고시에 뛰어들었다. 부산대 법학과에 들어가 3학년이 되던 해까지 사법시험 준비를 했다. 공부하는 길은 쉽지 않았다.
시험공부를 위해 양산 통도사에 들어갔던 시절의 일이다. 한 번은 밤중에 들려오는 '로망스' 기타 연주 소리가 들려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고. 이 사장은 "로맨티스트 기질은 어릴 때부터 있었던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힘들었을 유년시절과 대학시절을 웃으며 돌아보는 그에게서 진한 '낙관자'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만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을 물었다. 이 사장은 "스트레스와 친해지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피할 수 없다면 친구처럼 다독이고 친해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의 그의 지론이다.
어려움을 피하기보다 맞서기를 즐기는 그는 '역사서'에서 인생의 교훈을 찾는다. 그가 '내 인생의 책'으로 꼽은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담은 '대망'. "삼국지로 시작해 열국지를 읽고 대망까지 탐독하라"고 아들에게 권할 정도로 그는 역사 서적의 매력에 빠져있다. 역사 논쟁을 벌이면 '지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정도로 역사에 해박하다. 그는 해외출장길에도 서너권의 책을 들고갈 정도로 소문난 독서광이다.
성공의 비결을 물었다(그는 7년째 에스원을 이끌고 있다). "굳이 들자면 딱 하나 있습니다. 상사에게 반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부하고 맹종하라는 게 아닙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좋은 실적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란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일하는 자세가 달라지죠."
'반할 만한 상사를 만나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이라면서도 그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상사에게 반하기보다 약점을 찾아 비판하죠. 그러면 일을 해도 신이 안 납니다. 상사에게 반하지 않으면 1차적으로는 그 사람이 손해인 거죠. 이어서는 그 사람이 속한 집단이 손해를 보는 것이고요."
성공하는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있을까. 삼성에서 오랫동안 '사람을 들여다 쓰는 일'을 맡아왔던 그에게 물었다. 이 사장은 "신입사원 100명 중 '낭중지추(囊中之錐)' 같은 특출난 인재는 20%가 채 안 된다"며 "어떤 자세를 가지고 일을 하느냐에 따라 10년 후 모습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그는 "진솔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면접이야기를 들려줬다.
"삼성이 1957년에 첫 공채를 시작한 이래 매년 입사경쟁률이 10 대 1이 넘습니다. 면접에서의 당락은 면접장에 들어온 뒤 30초 내에 80%가 결정납니다. 그 사람이 풍기는 보디랭귀지를 보는 거죠. 면접에서는 진솔한 자세와 긍정적인 사고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삼성이 5만여명의 직원을 구조조정하던 1998년 외환위기 시절 구조조정본부의 인사팀장을 맡아 능력과 성과를 중심으로 한 '신(新)인사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제도는 지금까지도 삼성 인사의 기본 틀로 유지되고 있다.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자 그가 '시(詩)' 한 수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 홍안을 어듸두고 백골만 무쳤난이…." 백호 임제가 평안감사로 발령받아 평양으로 가던 길에 황진이 무덤 앞에서 읊은 시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도지사로 가는 건데 명색이 사대부가 기생 무덤 앞에서 시를 지어 부르니 평양에 도착하기도 전에 짤렸지요. 이거 말고도 조선시대 재미있는 연애시 몇 개를 아직도 외워요."
어린 시절 꿈을 '취미'로 삼아 짬이 날 때마다 그림을 감상하러 다니는 그는 미술 공부에 대한 열의를 내비쳤다. 이 사장은 "은퇴하면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워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나이 들어서 뭔가 몰두할 만한 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DNA로 은근과 끈기를 꼽지만 이것은 1970년대나 80년대에 어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변화의 템포가 빠른 21세기에는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유목민(노마드)의 DNA가 필요하죠." 그는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말을 꺼내며 '인사통'으로서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한 나라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는 기업으로 보내고 그 다음 인재는 학교로 보내고 세번째 인재는 공무원으로 보내라고 한 말이 있잖습니까. 세계를 상대로 경쟁하는 기업에 가장 우수한 인재를 보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미래의 한국을 이끌어갈 젊은 친구들이 좀 새겨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현예 한국경제신문 기자 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