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짬뽕이야."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공격이닷!"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말을 할 때나 글을 읽을 때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장들이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A는 B이다' 꼴이다. 이들을 명사문이라 한다. 우리말에서 서술어를 쓰는 방식에 따라 문장 틀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첫째 '무엇이 어찌하다' 꼴로,동사문이라 한다. 둘째는 '무엇이 어떠하다' 꼴인데 이를 형용사문이라 한다. 셋째 '무엇이 무엇이다'란 형태가 있다. '명사+이다' 형식으로 서술어를 만드는 이런 문장을 가리켜 명사문이라 부른다.
명사문에서 '-이다'와 결합하는 서술부는 주어와 일정한 의미적 관계를 갖는다. 국어학자인 서정수 교수는 이 관계를 7개의 유형으로 나눠 제시했다. ①주어와 동일한 범주('금성이 샛별이다') ②주어보다 윗 범주('금강산이 명산이다') ③주어의 비유적 표상('침묵은 금이다') ④주어와 관련된 개념('이 앞쪽이 바다다') ⑤주어의 동작 표시('그 사람이 또 큰소리다') ⑥주어의 속성 표시('방안이 엉망이다') ⑦주어의 속성 한정('그는 양심적이다')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이런 일곱 가지 범주에 들지 않는 다양한 유형의 명사문을 일상에서 자주 말하고 쓴다. 위의 예문도 모두 명사문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각각이 차이를 보인다. 우선 '나는 짬뽕이야'. 이 문장을 듣거나 읽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할까. 우선 상황에 따라 '나는 짬뽕이 먹고 싶어'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짬뽕이야'라는 문장이 축약·변형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가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이라면 '내 별명은 짬뽕이야' '나는 짬뽕이라고 해' 정도의 말이 기저문형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모두 주어와 일정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명사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공격이다.' 이 문장은 어떨까. 이 역시 본래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공격한다'라는 동사문이 변형된 것으로서,주어의 동작 표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허용 범위 안에 있는 명사문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문장은 위의 두 개와 매우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주어는 '정치인들'이지만 이는 '치중하다'란 내포된 술어와 어울릴 뿐 문장 전체의 서술어인 '생각이다'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 '생각이다'의 주어는 무엇일까. 발화 상황에 따라 '나'일 수도 있고 '국민'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 단체'일 수도 있다. 최근 많이 쓰이는 이런 문장 양식은 주어를 감추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전형적인 기법이다. 주어와 서술어가 전혀 호응하지 않는,또는 주어가 숨어버리는 이런 문장은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자칫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적 명사문'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때론 의도적으로 이런 문장이 사용되기도 한다. 가령 어떤 주장이나 판단이 개입되는 상황에서 문장의 원형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장은 매우 단정적이다. 이를 좀더 완곡하게,유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단계적으로 보면,우선 서술어를 하나 더 첨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장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로 바뀐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 없을 경우 피동형 문장이 나온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되는' 것으로 변형된다. 여기서부터는 '어색한 피동형 문장'이라고 해서 피해야 할 '좋지 않은 표현 방식'으로 이미 많이 지적된 터이다.
이를 한 번 더 모호하게 만드는 게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단계에서는 발화 주체가 거의 완전히 감춰지고 오히려 제3자(대개 여론이나 국민,불특정 다수 세력 등 막연한 주체)로 전이된다. 그래서 이런 유의 비정상적 명사문은 글의 내용에 자신이 없는 상태일 때 기대기 쉬운 방법이다. 'A는 B라는 생각이다(지적이다,전망이다,설명이다,시각이다,입장이다 등)' 꼴은 이처럼 '의미의 모호함'과 '다중적 해석'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문장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
말을 할 때나 글을 읽을 때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장들이다.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A는 B이다' 꼴이다. 이들을 명사문이라 한다. 우리말에서 서술어를 쓰는 방식에 따라 문장 틀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는데,첫째 '무엇이 어찌하다' 꼴로,동사문이라 한다. 둘째는 '무엇이 어떠하다' 꼴인데 이를 형용사문이라 한다. 셋째 '무엇이 무엇이다'란 형태가 있다. '명사+이다' 형식으로 서술어를 만드는 이런 문장을 가리켜 명사문이라 부른다.
명사문에서 '-이다'와 결합하는 서술부는 주어와 일정한 의미적 관계를 갖는다. 국어학자인 서정수 교수는 이 관계를 7개의 유형으로 나눠 제시했다. ①주어와 동일한 범주('금성이 샛별이다') ②주어보다 윗 범주('금강산이 명산이다') ③주어의 비유적 표상('침묵은 금이다') ④주어와 관련된 개념('이 앞쪽이 바다다') ⑤주어의 동작 표시('그 사람이 또 큰소리다') ⑥주어의 속성 표시('방안이 엉망이다') ⑦주어의 속성 한정('그는 양심적이다')이 그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우리는 이런 일곱 가지 범주에 들지 않는 다양한 유형의 명사문을 일상에서 자주 말하고 쓴다. 위의 예문도 모두 명사문의 형태를 취하고는 있지만 엄밀하게 보면 각각이 차이를 보인다. 우선 '나는 짬뽕이야'. 이 문장을 듣거나 읽는 사람은 어떻게 해석할까. 우선 상황에 따라 '나는 짬뽕이 먹고 싶어' '내가 먹고 싶은 것은 짬뽕이야'라는 문장이 축약·변형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고 가정할 수 있다. 또 다른 상황이라면 '내 별명은 짬뽕이야' '나는 짬뽕이라고 해' 정도의 말이 기저문형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모두 주어와 일정한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명사문이다.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공격이다.' 이 문장은 어떨까. 이 역시 본래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공격한다'라는 동사문이 변형된 것으로서,주어의 동작 표시 관계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허용 범위 안에 있는 명사문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문장은 위의 두 개와 매우 다르다. 겉으로 드러난 주어는 '정치인들'이지만 이는 '치중하다'란 내포된 술어와 어울릴 뿐 문장 전체의 서술어인 '생각이다'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럼 '생각이다'의 주어는 무엇일까. 발화 상황에 따라 '나'일 수도 있고 '국민'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 단체'일 수도 있다. 최근 많이 쓰이는 이런 문장 양식은 주어를 감추는 효과를 가져오게 하는 전형적인 기법이다. 주어와 서술어가 전혀 호응하지 않는,또는 주어가 숨어버리는 이런 문장은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자칫 자신도 모르게 '비정상적 명사문'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데,때론 의도적으로 이런 문장이 사용되기도 한다. 가령 어떤 주장이나 판단이 개입되는 상황에서 문장의 원형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장은 매우 단정적이다. 이를 좀더 완곡하게,유보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을 단계적으로 보면,우선 서술어를 하나 더 첨가하는 것이다. 그러면 문장은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로 바뀐다.
그래도 여전히 자신 없을 경우 피동형 문장이 나온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자신이 '생각하는' 게 아니라 '생각되는' 것으로 변형된다. 여기서부터는 '어색한 피동형 문장'이라고 해서 피해야 할 '좋지 않은 표현 방식'으로 이미 많이 지적된 터이다.
이를 한 번 더 모호하게 만드는 게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 단계에서는 발화 주체가 거의 완전히 감춰지고 오히려 제3자(대개 여론이나 국민,불특정 다수 세력 등 막연한 주체)로 전이된다. 그래서 이런 유의 비정상적 명사문은 글의 내용에 자신이 없는 상태일 때 기대기 쉬운 방법이다. 'A는 B라는 생각이다(지적이다,전망이다,설명이다,시각이다,입장이다 등)' 꼴은 이처럼 '의미의 모호함'과 '다중적 해석'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피해야 할 문장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