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정부가 남아도는 외화로 투자자금 운용
공격투자로 유명한 싱가포르투자청이 대표적 기관
각국 정부가 남아도는 외화자금으로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이른바 '국부(國富)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세계 금융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부펀드란 적정한 보유 수준을 넘어선 외환을 따로 떼내 투자용으로 모아 놓은 자금을 말한다.중동 국가들의 경우 석유를 수출해 벌어 들인 '오일 머니'가 주요 자금원이고,보통의 경우 무역수지 흑자로 발생한 외환보유액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한다.일반적으로 전문 투자 인력으로 구성된 국가 기관이 국부펀드의 자금 운용을 담당한다.공격적인 투자로 이름이 높은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대표적인 국부펀드 운용 기관이다.
◆국제 금융시장을 흔드는 국부펀드
국부펀드는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손'으로 부상했다.특히 중국,일본 등 외환보유액 1,2위 국가들까지 돈다발을 들고 나서면서 판이 커지고 있다.고유가로 떼돈을 번 중동 국가들도 소매를 걷어붙였다.수익만 나면 어디든 투자하겠다는 국부펀드의 적극적인 투자 마인드가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부펀드는 사실 최근에 생겨난 게 아니다.쿠웨이트는 1950년대부터 일찌감치 '쿠웨이트투자공사(KIA)'라는 기구를 통해 보유 외환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고,싱가포르도 GIC와 테마섹이라는 양대 축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지 20여 년이 지났다.지금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고 투자 대상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엄청난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고 있던 '공룡'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특히 중국의 가세가 결정타였다.중국은 1조30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에서 2000억~3000억달러를 떼내 오는 9월께 중국투자공사(CIC)를 설립하기로 했다.한 나라의 현금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원조 계획인 '마셜플랜'도 그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1000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외환보유액이 많은 일본도 꿈틀대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이 싱가포르 테마섹을 모델로 한 국영투자기관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이 밖에 세계 5위 외환보유국인 한국도 2005년 7월 한국투자공사(KIC)를 세우고 200억달러의 실탄을 마련했고,대만도 '대만판 테마섹' 설립을 검토 중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의 규모는 아직 구체적인 설립 방안이 나오지 않은 일본과 대만 등을 빼더라도 2조5000억달러(약 23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모건스탠리는 추정하고 있다.작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인 약 850조원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고,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헤지펀드(약 2조달러)보다도 많은 액수다.
◆국부펀드가 늘어나는 이유
이처럼 각국이 국부펀드 설립에 앞다퉈 나서는 것은 외환보유액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다우존스에 따르면 아시아 12개국의 외환보유액은 6월 말 기준으로 3조5200억원에 달했다.1년 전(2조9200억달러)에 비해 20% 이상 불어난 것이다.여기엔 중국이 큰 몫을 했다.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3300억원에 달하고 있으며,올 상반기 동안 늘어난 외환보유액만도 2663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증가분보다도 많다.
또한 지나치게 비대해진 외환보유액은 국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국부펀드의 활용을 선호하고 있다.보통 무역수지 흑자나 원자재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쏟아지면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대거 사들여 외환보유액으로 쌓게 된다.자국 화폐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려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데 국부펀드가 효과적이란 얘기다.
또 외환보유액을 몇 푼 안 남는 미 국채에나 투자하면서 묵혀 두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도 국부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대표적인 국부펀드인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설립 이후 연평균 18%의 수익을 올렸고,노르웨이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운용그룹(NBIM)'은 지난해 1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부펀드가 초래하는 문제점
국부펀드는 대부분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원조 국부펀드의 하나인 아부다비투자공사는 설립 후 30여년 동안 운용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한 번도 없다.8750억달러라는 운용 규모도 추정치에 불과하다.가장 비밀스런 투자를 한다는 헤지펀드보다 투자 내용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도 나온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부펀드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이 어느 날 느닷없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또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투자 전략에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자산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게다가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루머가 횡행할 수밖에 없고 그럴싸한 소문이 불거질 때마다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은 극대화된다.
금융시장에서 민간자본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아무리 큰 민간자본도 한 나라의 국부펀드를 당해내긴 어렵다.이로 인해 자산가격이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원자재나 원유 가격이 떨어질 경우 산유국 등 해당 국가가 국부펀드를 이용해 가격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논리 대신 정치논리가 개입될 우려도 높다.외교와 안보 분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부펀드를 무기로 활용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국부펀드가 자산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경쟁적으로 국부펀드를 굴리는 과정에서 자산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치솟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우려는 상당 부분 가정에 기반한 시나리오다.국부펀드의 등장으로 국채 시장에 타격을 입게 된 미국이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확대해 퍼뜨리고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있다.미 재무부의 한 전직 관료는 "국부펀드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며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금융 위기를 막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기자 jran@hankyung.com
공격투자로 유명한 싱가포르투자청이 대표적 기관
각국 정부가 남아도는 외화자금으로 고수익 상품에 투자하는 이른바 '국부(國富)펀드'(sovereign wealth fund)가 세계 금융시장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국부펀드란 적정한 보유 수준을 넘어선 외환을 따로 떼내 투자용으로 모아 놓은 자금을 말한다.중동 국가들의 경우 석유를 수출해 벌어 들인 '오일 머니'가 주요 자금원이고,보통의 경우 무역수지 흑자로 발생한 외환보유액으로 국부펀드를 조성한다.일반적으로 전문 투자 인력으로 구성된 국가 기관이 국부펀드의 자금 운용을 담당한다.공격적인 투자로 이름이 높은 싱가포르투자청(GIC)이 대표적인 국부펀드 운용 기관이다.
◆국제 금융시장을 흔드는 국부펀드
국부펀드는 최근 국제 금융시장에서 비교 대상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큰손'으로 부상했다.특히 중국,일본 등 외환보유액 1,2위 국가들까지 돈다발을 들고 나서면서 판이 커지고 있다.고유가로 떼돈을 번 중동 국가들도 소매를 걷어붙였다.수익만 나면 어디든 투자하겠다는 국부펀드의 적극적인 투자 마인드가 금융시장을 긴장시키고 있는 것이다.
국부펀드는 사실 최근에 생겨난 게 아니다.쿠웨이트는 1950년대부터 일찌감치 '쿠웨이트투자공사(KIA)'라는 기구를 통해 보유 외환의 수익성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았고,싱가포르도 GIC와 테마섹이라는 양대 축을 통해 적극적인 투자에 나선 지 20여 년이 지났다.지금까지는 국제 금융시장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규모도 그리 크지 않았고 투자 대상도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상황이 급변했다.엄청난 외환보유액을 쌓아 놓고 있던 '공룡'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특히 중국의 가세가 결정타였다.중국은 1조3000억달러를 웃도는 외환보유액에서 2000억~3000억달러를 떼내 오는 9월께 중국투자공사(CIC)를 설립하기로 했다.한 나라의 현금 투자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원조 계획인 '마셜플랜'도 그간의 물가 상승을 감안하더라도 1000억달러에 불과했다.
중국에 이어 두 번째로 외환보유액이 많은 일본도 꿈틀대고 있다.파이낸셜타임스는 일본이 싱가포르 테마섹을 모델로 한 국영투자기관 설립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이 밖에 세계 5위 외환보유국인 한국도 2005년 7월 한국투자공사(KIC)를 세우고 200억달러의 실탄을 마련했고,대만도 '대만판 테마섹' 설립을 검토 중이다.
전 세계 국부펀드의 규모는 아직 구체적인 설립 방안이 나오지 않은 일본과 대만 등을 빼더라도 2조5000억달러(약 23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모건스탠리는 추정하고 있다.작년 한국 국내총생산(GDP)인 약 850조원의 세 배에 달하는 수준이고,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헤지펀드(약 2조달러)보다도 많은 액수다.
◆국부펀드가 늘어나는 이유
이처럼 각국이 국부펀드 설립에 앞다퉈 나서는 것은 외환보유액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불어났기 때문이다.다우존스에 따르면 아시아 12개국의 외환보유액은 6월 말 기준으로 3조5200억원에 달했다.1년 전(2조9200억달러)에 비해 20% 이상 불어난 것이다.여기엔 중국이 큰 몫을 했다.중국의 외환보유액은 1조3300억원에 달하고 있으며,올 상반기 동안 늘어난 외환보유액만도 2663억달러로 지난해 전체 증가분보다도 많다.
또한 지나치게 비대해진 외환보유액은 국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각국 중앙은행들은 국부펀드의 활용을 선호하고 있다.보통 무역수지 흑자나 원자재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가 국내에 쏟아지면 중앙은행은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대거 사들여 외환보유액으로 쌓게 된다.자국 화폐의 가치가 급격하게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하지만 이 과정에서 많은 돈이 시중에 풀려 물가 상승 압력을 높이는 부작용이 발생한다.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는 데 국부펀드가 효과적이란 얘기다.
또 외환보유액을 몇 푼 안 남는 미 국채에나 투자하면서 묵혀 두기엔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는 것도 국부펀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다.대표적인 국부펀드인 싱가포르의 테마섹은 설립 이후 연평균 18%의 수익을 올렸고,노르웨이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중앙은행 투자운용그룹(NBIM)'은 지난해 17%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국부펀드가 초래하는 문제점
국부펀드는 대부분 투명성이 결여돼 있다.원조 국부펀드의 하나인 아부다비투자공사는 설립 후 30여년 동안 운용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힌 적이 한 번도 없다.8750억달러라는 운용 규모도 추정치에 불과하다.가장 비밀스런 투자를 한다는 헤지펀드보다 투자 내용이 불투명하다는 평가도 나온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부펀드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이 어느 날 느닷없이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다.
또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투자 전략에 조금만 변화가 생겨도 자산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점도 걱정거리다.게다가 실체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루머가 횡행할 수밖에 없고 그럴싸한 소문이 불거질 때마다 금융 시장의 불안정성은 극대화된다.
금융시장에서 민간자본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아무리 큰 민간자본도 한 나라의 국부펀드를 당해내긴 어렵다.이로 인해 자산가격이 왜곡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원자재나 원유 가격이 떨어질 경우 산유국 등 해당 국가가 국부펀드를 이용해 가격 흐름을 바꿀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경제논리 대신 정치논리가 개입될 우려도 높다.외교와 안보 분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부펀드를 무기로 활용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국부펀드가 자산 가격에 거품을 끼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경쟁적으로 국부펀드를 굴리는 과정에서 자산 가격이 적정 수준 이상으로 치솟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든 우려는 상당 부분 가정에 기반한 시나리오다.국부펀드의 등장으로 국채 시장에 타격을 입게 된 미국이 의도적으로 부작용을 확대해 퍼뜨리고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도 있다.미 재무부의 한 전직 관료는 "국부펀드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은 아니다"며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금융 위기를 막는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