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과 채찍의 원리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경제와 논술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경제와 논술은 분명히 강한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경제 원리로 세상사를 풀어가다 보면 논술에서 요구하는 창의적 사고와 통(通)합니다. 경제 원리 자체가 바로 세상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는 돋보기이자,세상을 움직이는 숨은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생글생글에서는 경제 원리로 논술적 사고에 접근하는 '경제,논술과 만나다'를 새로 연재합니다. 맨큐와 버냉키의 경제학 원론에서부터 수많은 경제학,역사학,철학,심리학,문학 등의 교양서에서 정수를 뽑아냈습니다. 단순히 경제 이론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역사와 실생활에서 목격되는 현상까지 접목시키는 시도입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호주(오스트레일리아)의 역사는 프랑스혁명이 일어나기 한 해 전인 1788년 초대 총독 아더 필립이 영국에서 죄수 732명을 포함한 1373명을 데리고 시드니 항구에 상륙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영국 죄수들을 대대적으로 호주로 이송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오랜 항해로 허약해진 죄수들이 도중에 대거 사망한 것. 1790년부터 3년간 죄수 4082명 중 12.2%(498명)가 항해 도중 죽었다. 심지어 넵튠호에선 424명의 죄수 중 사망자가 37.3%(158명)에 달하기도 했다. 아무리 죄수지만 너무 가혹하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영국 정부는 고심끝에 해결책을 찾아냈다. 무엇일까? 힌트는 인센티브(☞해답은 글 말미에).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1981년)인 제임스 토빈은 "경제는 한마디로 인센티브(경제적 유인,동기 유발)"라고 요약했다.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에선 인센티브를 "현대의 삶을 지탱하는 초석이며,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고 설명했다. 인센티브의 원리는 당근과 채찍으로 설명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사람들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 하려면 '맨입으로 안된다'는 얘기다. 보상,편익(당근)을 주든지 손실,불이익(채찍)을 줘야 의도한 방향으로 유도할 수 있다. 이는 경제학의 대전제인 '인간은 이기적이며,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경제 원리를 반영한 것이다. 자신의 이익에 민감하고 영리하게 대처하려는 사람 심리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전체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

◆생활 속 인센티브의 효과

주변에서도 인센티브 효과에 대한 다양한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시험 잘 보면 원하는 거 사줄게" 하는 부모들이 많다. 당근을 활용해 목표(성적 올리기) 달성을 독려하는 것이다. 신고포상금과 파파라치를 이용해 교통법규,쓰레기 투기,탈세 등을 잡아내는 것은 파파라치에겐 당근을,위반자에겐 채찍을 쓰는 것이다. 기업은 실적이 좋은 임직원들에게 스톡옵션이나 성과급을 주어 더 열심히 일하게끔 독려한다. 반면 일을 더 하나 덜 하나 봉급이 똑같은 공무원 조직은 나태해질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당근요법과 채찍요법

[경제를 알면 논술이 술술] 1. 인간은 인센티브에 반응한다
인센티브 효과는 보상,비용절감 등 당근요법과 불이익,비용증대 등 채찍요법 모두 가능하다. 특히 불가피한 환경 문제의 해법으로는 금지,처벌 등의 규제책보다는 당근을 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임이 입증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1995년 도입된 쓰레기 종량제다. 그 이전에는 쓰레기 수거료를 재산세 납부액에 비례해서 책정했다. 가정에서 많이 버리든 적게 버리든 수거료(비용)는 똑같았다. 반면 쓰레기 종량제는 자기가 사야 하는 쓰레기 봉투를 적게 쓰는 가정일수록 수거비용이 줄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한 것이다. 그 결과 10년 뒤 서울의 쓰레기 배출량이 평균 27% 줄고,재활용은 35% 늘었다. 최근 관심을 끄는 탄소배출권 거래제 역시 당근요법을 통한 강력한 환경보호 수단이 될 수 있다.

◆코뿔소의 멸종을 막으려면

찰스 윌런의 '벌거벗은 경제학'은 인센티브를 활용해 멸종동물을 보호하는 방법을 잘 설명한다. 1970년 6만5000마리였던 검정코뿔소는 이제 남부 아프리카에 2500마리만 남았다. 다양한 용도로 쓰이는 코뿔소 뿔은 암시장에서 개당 3만달러에 거래된다. 가난한 주민들에겐 작물을 망쳐놓는 산 코뿔소보다 죽은 코뿔소가 훨씬 더 가치가 있다.

이런 코뿔소를 멸종에서 구하려고 밀렵을 전면 금지한다면? 암시장의 뿔 거래가격은 더욱 치솟고 밀렵방지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해답은 주변 주민들에게 코뿔소를 죽이지 않는 게 더 유리하다는 동기를 제공하는 데 있다. 코뿔소 관광객들로부터 입장료 등 돈을 받게 한다면 주민들은 코뿔소 보호에 큰 인센티브를 가질 것이다. 밀렵꾼은 주민들 스스로 막을 것이다. 이는 농장주가 소를 기르는 것과 유사하다. 농장주가 동물애호가여서가 아니라 자기 이익을 키우다 보니 소,돼지,양,닭 같은 가축은 멸종 염려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다.
◆역사를 발전시키는 진정한 힘

앞에서 영국 정부가 죄수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춘 묘안은 인센티브 원리에 있었다. 선장에게 주는 죄수 호송비 지급 기준을 '죄수당 X파운드'에서 '살아서 도착한 죄수당 X파운드'로 바꿨다. 그 결과 1793년 세 척의 배가 422명의 죄수를 실어날랐는데 사망자는 단 1명 뿐이었다. 이후 영국은 약 16만명의 죄수를 호주로 보낼 수 있었다.

이처럼 역사는 인간의 이기심과 인센티브에 반응하는 속성을 잘 이용했을 때 진정한 진보와 발전을 이뤘다. 이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체제 경쟁이 어떤 결말을 보였는지에서 뚜렷히 확인할 수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ohk@hankyung.com

------------------------------------------------------

아이버릇 고치기도 경제원리로

'경제학 비타민'의 저자 한순구 연세대 교수(경제학)가 들려준 떼쓰는 아이 길들이기 방법은,한마디로 '인간은 자기 것은 함부로 쓰지 않고,인센티브에 반응한다'는 경제 원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한 교수는 장난감 가게를 지날 때마다 장난감을 사달라고 울며불며 바닥을 뒹구는 일곱살짜리 아들 때문에 골치를 썩었다. 장난감 회사들은 어른 눈에는 먼저 제품과 거의 같은데,이름과 색깔만 조금 바꾼 신제품을 매주 내놨다.

명색이 경제학자인 한 교수는 연구 끝에 아이에게 장난감을 사주는 대신 동그라미를 주기로 약속했다. 착한 일을 하면 동그라미 하나,시험 100점 맞으면 5개,어린이날과 생일에는 선물 대신 동그라미 50개…. 동그라미 하나는 500원에 교환할 수 있다. 일정 수의 동그라미가 모이면 아이는 장난감 가게에 가서 장난감을 샀다.

얼마 뒤 아이의 변화에 어른들도 깜짝 놀랐다. 장난감만 보면 드러눕던 아이가 아무리 작은 장난감도 사기 전에 평균 한 시간씩 고민하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한 시간을 고민하고 안 살 때도 있었다. 점원에게 "다음 주에는 어떤 장난감이 나와요?" 하고 묻거나 가격표가 없는 장난감의 가격을 일일이 확인하고,포장지 설명서까지 꼼꼼히 다 읽고 나서야 살 정도였다.

비록 일곱 살이지만,자기가 애써 번 동그라미를 함부로 쓰기가 아까웠던 것이다. 아이에게 동그라미는 하나라도 허투루 쓸 수 없는 인센티브이자,자기 재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센티브와 사유재산권에 민감한 인간 본성을 이용해 아이 버릇을 고치고 경제 원리도 일찌감치 체득하게 만든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