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봉 < 중앙대 교수ㆍ경제학 >
☞한국경제신문 7월 12일자 A39면
지난 일요일 서울시는 103개 학교에서 1만여명의 직원을 동원해 공무원 채용시험을 치렀다. 1732명을 뽑는 데 무려 14만여명이 지원해 83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시험이다. 서울시는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를 어렵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시험에서는 0.1점도 안 되는 차이로 당락(當落)이 갈릴 것이다. 낙방한 수험생들의 가슴은 찢어지겠지만 어쩌랴,14만명이 공정히 겨룬 승부에서 떨어진 것이다. 부족했던 자신을 탓하며 겸허히 시험 결과를 수용할 것이다. 서울시도 유능한 공무원을 뽑아 만족할 것이다.
문제는 공무원 시험이 어려워서 공시(公試)전문 학원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학 등 공교육이 황폐화하고 공시 지원자들의 학원비 부담이 커지며 부자들만 합격해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권은 걱정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시험을 아주 쉽게 내고 대신 출신학교 내신 성적을 50% 적용해서 시 공무원을 뽑으면 어떨까. 서울 법대나 지방대 비인기 학과나 학력 차이는 원래 없으므로 서울시는 학교 등급을 가리면 안 된다. 기왕이면 판검사,외교관,기타 국가공무원을 모두 비차별 내신으로 뽑고,삼성 현대 등 모든 상장기업의 채용도 이런 방식으로 해서 소득의 양극화,대학의 양극화,지역 불균형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자. 물론 각 직장의 운동선수나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모두 이렇게 뽑아야 한다.
이런 제안을 하면 당국은 문제를 비약하거나 비아냥대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이니 우리 국가사회제도의 뿌리가 바로 청소년교육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학교 간 학력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라고 너무나 빤한 거짓을 감추라고 가르침받고 있다. 이런 교육은 위선자와 사기꾼을 사회에 배출시킬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거나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역차별 당하는데 이 사회에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질서가 존재하겠는가.
경쟁 없이 국가가 국민의 운명을 결정지워 주는 사회를 진보좌파들은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정부에 기대는 자에게 패배하는 사회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는가. 이런 사회에서는 노력해본 경험이 없이 명분만 찾는 선동자가 지도자로 뽑히게 되며,국민은 정치에 광분해서 분열하고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제 몫을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실로 무한한 교육 수요가 존재한다.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 수는 세계 제일이고 중국 내 해외유학생도 38%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밖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생은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보다 낳은 교육을 찾고 있다. 우리 국민이 학원비 과외비 해외유학 등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연 30조원이라고 하나,실상 학부모들이 기울이는 헌신적 노력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교육자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런 수요만큼 우리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잠재력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의 고루한 통제와 평등주의에 갇혀 한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교육기관에 자율적 역할을 맡겼다면,우리국민과 기업이 세계로 뻗어가듯 지금쯤 외고 과학고 민사고와 같은 세계적 명문고가 온 나라에 넘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문이 크게 열렸을지 모른다. 세계 첨단의 대학과 교육인프라를 보유한 아시아의 교육허브가 돼 우리 아이들을 후진국에 내모는 대신 온 세계 유학생이 찾아오는 나라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인력을 배출하는 역할에 실패했고,나아가서 오늘날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무법,불합리,비정의와 비능률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부에는 이런 국민의 자율적 에너지를 억누를 권리가 없다.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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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문제 해결은 정확한 원인 분석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막상 현실 사회에 들어오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가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람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주관적 경험,이해 관계 등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현상은 자연현상과 달리 원인에 대한 분석이 어렵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더욱 어렵다. 더구나 정부 정책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수준을 벗어나면 사회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관련 당사자들은 편법도 동원하게 된다.
교육 문제는 언제나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 왔다. 그만큼 원인 분석에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의 내신 반영 비율을 둘러싸고 교육 당국과 대학이 수개월째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도 당사자 간 시각차이에 큰 원인이 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위해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려는 교육 당국과 고교별 실력차를 인정하고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 간 입장 차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경쟁보다 평등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은 교육은 물론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저성장률과 고실업률로 표면화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에 14만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인원이 몰려 든 것도 이러한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다. 다양한 이해 집단이 관련돼 있어 이들간 공통 분모를 찾기 힘든 점도 물론 있다.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우수한 제도를 도입해도 백약이 무효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인 특유의 높은 교육열이 그 어떤 정책도 모두 녹여 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한 교육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 정책이 미칠 파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특히 김영봉 교수가 지적했듯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입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민주사회의 기본질서인 공정한 경쟁질서는 뿌리부터 무너지게 된다.
대입을 둘러싼 각종 부작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단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해결책을 찾는 데는 현실진단이 우선시 돼야지 평등주의라는 이념이 잣대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7월 12일자 A39면
지난 일요일 서울시는 103개 학교에서 1만여명의 직원을 동원해 공무원 채용시험을 치렀다. 1732명을 뽑는 데 무려 14만여명이 지원해 83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시험이다. 서울시는 시험의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출제를 어렵게 했다고 한다.
이런 시험에서는 0.1점도 안 되는 차이로 당락(當落)이 갈릴 것이다. 낙방한 수험생들의 가슴은 찢어지겠지만 어쩌랴,14만명이 공정히 겨룬 승부에서 떨어진 것이다. 부족했던 자신을 탓하며 겸허히 시험 결과를 수용할 것이다. 서울시도 유능한 공무원을 뽑아 만족할 것이다.
문제는 공무원 시험이 어려워서 공시(公試)전문 학원이 늘어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대학 등 공교육이 황폐화하고 공시 지원자들의 학원비 부담이 커지며 부자들만 합격해 공무원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정권은 걱정할 것이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시험을 아주 쉽게 내고 대신 출신학교 내신 성적을 50% 적용해서 시 공무원을 뽑으면 어떨까. 서울 법대나 지방대 비인기 학과나 학력 차이는 원래 없으므로 서울시는 학교 등급을 가리면 안 된다. 기왕이면 판검사,외교관,기타 국가공무원을 모두 비차별 내신으로 뽑고,삼성 현대 등 모든 상장기업의 채용도 이런 방식으로 해서 소득의 양극화,대학의 양극화,지역 불균형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하자. 물론 각 직장의 운동선수나 방송에 나오는 연예인들도 모두 이렇게 뽑아야 한다.
이런 제안을 하면 당국은 문제를 비약하거나 비아냥대지 말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은 국가의 미래이니 우리 국가사회제도의 뿌리가 바로 청소년교육으로부터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학교에서 청소년들은 "학교 간 학력차이는 없는 것이다. 그런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은 나쁜 짓이다"라고 너무나 빤한 거짓을 감추라고 가르침받고 있다. 이런 교육은 위선자와 사기꾼을 사회에 배출시킬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성실하게 노력하거나 실력이 좋은 사람들이 역차별 당하는데 이 사회에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질서가 존재하겠는가.
경쟁 없이 국가가 국민의 운명을 결정지워 주는 사회를 진보좌파들은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라고 믿는 것 같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하는 자가 정부에 기대는 자에게 패배하는 사회가 어떻게 정의로울 수 있는가. 이런 사회에서는 노력해본 경험이 없이 명분만 찾는 선동자가 지도자로 뽑히게 되며,국민은 정치에 광분해서 분열하고 중구난방(衆口難防)으로 제 몫을 달라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실로 무한한 교육 수요가 존재한다.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한국 학생 수는 세계 제일이고 중국 내 해외유학생도 38%가 한국인이라고 한다. 이 밖에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학생은 세계 구석구석을 헤매며 보다 낳은 교육을 찾고 있다. 우리 국민이 학원비 과외비 해외유학 등에 지출하는 사교육비는 연 30조원이라고 하나,실상 학부모들이 기울이는 헌신적 노력을 감안한다면 한국의 교육자원이 얼마나 클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이런 수요만큼 우리 교육은 세계 최고 수준이 될 잠재력을 가진다. 그러나 정부의 고루한 통제와 평등주의에 갇혀 한발짝도 앞으로 못 나가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교육기관에 자율적 역할을 맡겼다면,우리국민과 기업이 세계로 뻗어가듯 지금쯤 외고 과학고 민사고와 같은 세계적 명문고가 온 나라에 넘쳐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문이 크게 열렸을지 모른다. 세계 첨단의 대학과 교육인프라를 보유한 아시아의 교육허브가 돼 우리 아이들을 후진국에 내모는 대신 온 세계 유학생이 찾아오는 나라가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의 교육은 21세기 글로벌 환경에 적합한 인력을 배출하는 역할에 실패했고,나아가서 오늘날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온갖 무법,불합리,비정의와 비능률의 근원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 정부에는 이런 국민의 자율적 에너지를 억누를 권리가 없다. 다음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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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문제 해결은 정확한 원인 분석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 원인을 정확하게 찾아 처방을 내려야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막상 현실 사회에 들어오면 문제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가리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사람마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주관적 경험,이해 관계 등에 따라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현상은 자연현상과 달리 원인에 대한 분석이 어렵고 그에 대한 해결책은 더욱 어렵다. 더구나 정부 정책이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수준을 벗어나면 사회 갈등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관련 당사자들은 편법도 동원하게 된다.
교육 문제는 언제나 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어 왔다. 그만큼 원인 분석에 시각 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대학입시의 내신 반영 비율을 둘러싸고 교육 당국과 대학이 수개월째 줄다리기를 벌이고 있는 것도 당사자 간 시각차이에 큰 원인이 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을 위해 내신 반영 비율을 높이려는 교육 당국과 고교별 실력차를 인정하고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려는 대학 간 입장 차이에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경쟁보다 평등을 강조하는 정부 정책은 교육은 물론 경제에도 영향을 미쳐 저성장률과 고실업률로 표면화되고 있다. 최근 서울시 공무원 채용시험에 14만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인원이 몰려 든 것도 이러한 정책의 한 단면을 보여 준다.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중요한 문제이다. 다양한 이해 집단이 관련돼 있어 이들간 공통 분모를 찾기 힘든 점도 물론 있다.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그 어떤 우수한 제도를 도입해도 백약이 무효라는 지적도 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한국인 특유의 높은 교육열이 그 어떤 정책도 모두 녹여 버린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외면한 교육정책을 계속 고집한다면 그 정책이 미칠 파장이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특히 김영봉 교수가 지적했듯이 열심히 공부한 학생이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모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이유만으로 대입에서 불이익을 받는다면 민주사회의 기본질서인 공정한 경쟁질서는 뿌리부터 무너지게 된다.
대입을 둘러싼 각종 부작용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진단은 사람들마다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해결책을 찾는 데는 현실진단이 우선시 돼야지 평등주의라는 이념이 잣대가 되어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김선태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