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낡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적 문화'가 멀쩡한 차를 폐차장에 너무 일찍 몰아넣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장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디일까. 우선 맞춤법으로 걸러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 그럼 문장 구성은? 주어나 목적어 서술어가 잘 짜여 있고 수식어 위치도 어색할 게 없다. 단어 사용이 적절치 않나? 얼핏 보면 이 역시 걸리는 데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화'라는 표현이 그리 마뜩지는 않다. '낡은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도 '문화'인가?

글쓰기에서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 가운데 하나가 '과장의 오류'다. 이는 단어가 갖고 있는 의미자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무언가 '그럴듯한' 표현을 쓰려는 욕심이 더해져 빚어지는 결과다. 때로는 무심코 상투적으로 쓰기도 한다. 이 문장에서도 '문화'라는 거창한 단어보다는 '풍토,풍조,인식' 정도를 쓰면 적절할 것이다.

'문화'의 사전적 풀이는 '인간이 공동사회를 이뤄 그 구성원이 함께 누리는,가치 있는 삶의 양식 및 표현 체계'이다. 언어 예술 종교 지식 도덕 풍속 각종 제도 등이 그 구체적인 예다. 사실 우리 주변에서 문화가 아닌 것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문화는 광범위하게,빈번하게 쓰인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문화가 정확히 무엇을 뜻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문화'가 높은 단계의 추상적 단어일뿐더러 개념적으로도 협의에서 광의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보니 급기야 폭력문화,조폭문화,투기문화란 말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아파트의 대량 건설은 대도시 주거 문제 해결에 크게 공헌해 온 것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주택의 상품화,몰개성화를 초래했으며…(중략) 지난 30년간 천박한 투기문화를 조성했다."

여기서도 굳이 쓴다면 투기 심리나 투기 행태,투기 풍조이지 투기문화는 어울리지 않는다. 투기는 '문화'라는 개념에 수렴되지 않기 때문이다. 조폭도 마찬가지다. 조폭의 존재 양식을 문화적 현상의 하나로 분석할 수 있을지언정 조폭 자체가 문화가 될 수는 없다. 이런 말들까지 인정한다면 사기꾼문화니 범죄문화니 하는 말도 쓰지 못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물론 연구를 위해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를 통해서라면 문화와 결합해서 쓸 수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학술적 차원이지 일반적인 언어생활이나 글쓰기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출사표를 던지다'란 말도 그 쓰임새와 관련해 논란이 많은 표현이다. '출사표(出師表)'의 본래 의미는 '출병할 때 그 뜻을 적어 임금에게 올리던 글'이다. 이는 신하가 우국충정의 깊은 뜻을 담아 공경하는 마음으로 왕에게 받들어 올리던 것이다. 중국 삼국시대에 촉나라의 재상 제갈량이 출병하면서 후왕에게 적어 올린 글이 유명하다.

요즘은 그 쓰임새가 확장돼 '치열하게 싸워서 승패를 결정지어야 할 일에 비장한 각오를 가지고 도전하다. 또는 그런 일을 할 것을 세상에 알리다'란 뜻으로 많이 인용된다. 가령 "한국의 태극전사들,월드컵 16강을 목표로 출사표를 던지다"처럼 쓸 수 있다. 문제는 관용구로 굳어진 이 표현이 너무 가볍게,흔히 쓰이다보니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사회,문화,스포츠,연예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단순히 '참여한다'는 의미를 갖는 말로도 쓰인다는 것이다.

"의약품 유통 시장에 대기업들이 잇따라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신문을 읽다 보면 이런 문장을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내용을 보면 대기업들이 의약품 유통시장에 '새로 뛰어든다(진출한다)'는 의미에 불과하다. 이런 데까지 '출사표를 던지다'란 표현을 쓰는 것은 남용이다. 단어의 본래 의미를 변질해서 아무 데나 사용하면 그 뜻과 용법마저 모호해진다. 여기서는 실제 내용에 따라 '…잇따라 진출하고(진출 계획을 밝히고) 있다' 정도로 쓰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문화'나 '출사표''미학' 같은 말은 학술적인 정교한 쓰임새를 요구하는 단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