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적 안목을 평가받은 워싱턴 시민들
조슈아 벨은 클래식계의 슈퍼스타다. 뉴스위크지(誌)는 "그의 음악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 모두를 감동시킨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는 잘생겼으며 그의 바이올린까지도 유명하다. '톰 테일러(Tom Taylor)'라고 불리는 1732년산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그의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10만원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는 얼마 전 흥미 있는 실험에 참여했다. 지난 1월 조슈아 벨은 거리의 악사로 데뷔했다. 장소는 워싱턴 DC의 심장부에 위치한 랑팡 프라자. 금요일 아침 8시를 전후하여 조슈아 벨은 45분 동안 출근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했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티셔츠를 입고 연주하는 동안 1100여명의 시민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과연 몇 명이나 세기적인 연주자의 음악 그 자체에 매료되어 잠시라도 멈춰 서 음악을 감상할 것인가가 실험 내용. 10명 혹은 100명?
실험 결과는 참담했다. 단 한명의 시민도 세계적인 연주자의 공짜 연주를 감상하지 않았다. 다만 3달러와 몇 개의 동전만이 이 유명한 연주자가 그날 올린 수확의 전부였다. 실험이 있기 불과 사흘 전,조슈아 벨은 보스턴 심포니홀을 매진시켰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음악을 감상할줄 모른다. 그들은 단지 남들이 좋다는 음악만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안목도 높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할 뿐이다.' 이 실험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일까? 적어도 실험을 주도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결론을 강하게 암시했다.(Pearls Before Breakfast, Washington Post April 8, 2007)
◆동대문은 정말 쌀까?
백화점에서 20만원 한다는 유명한 청바지 정품을 동대문에서 3만원에 구입했다면 17만원 절약한 것일까? 다른 조건이 같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 같지 않다. 정품을 찾기 위해 한나절을 소비했다면 그 한나절의 가치를 알기 전에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루 일을 하면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는 펀드매니저라면 절약이 아니라 수백만 원이나 하는 청바지를 산 셈이다. 그 시간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사람에게만 이익이 17만원에 근접한다. 또 치수가 안 맞거나 뜯어졌을 때 백화점은 즉각 바꿔주는 대신 동대문은 주인과 실랑이해야 한다면 백화점이 추가로 제공하는 상품은 단지 그 똑같은 청바지만은 아니다.
◆정보는 이득이다
사람들은 정보에 실제로 돈을 지불한다. 외형은 같아 보이는 물건도 누가 만들고 누가 파느냐에 따라 기꺼이 다른 값을 지불한다. 정보에는 편리와 신뢰가 있기 때문이고 이 편리와 신뢰는 시간을 절약해주거나 실패로부터 보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는 상행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농업,제조업과는 달리 상업은 단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길 뿐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물질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농업이나 제조업이 생산하는 물질도 엄밀하게 따지면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자연에 있던 물질을 누군가에게 유용하도록 재배열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도 물질 자체가 아니다. 유용한 배열을 소비한다. 따라서 가치를 잃은 상품은 물질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배열이 바뀌어 유용성을 상실한 것뿐이다. 이 원리는 초보적인 과학이다.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물질이나 상품을 재배열한다는 의미에서 장사는 매우 생산적인 활동이다. 좋은 상인은 소비자들의 시간이나 자산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정서적인 만족도 제공한다. 그리고 정보는 상인들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
◆좋은 연주는 행인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이 실험을 통해 현대인의 왜곡된 문화소비를 지적하는 판단에는 어떤 전제가 있다. 누군가 정말 좋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연주자가 설령 조슈아 벨 같이 유명한 스타가 아니더라도 연주를 감상했을 것이다. 회사에 지각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말이다. 조수아 벨을 스쳐간 행인들 중에는 정말 좋은 음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1000명이 넘는 시민 속에는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조슈아 벨이 그날 한 연주의 수준이나 행인들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멈춰서 감상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연주를 감상하기로 한 행인이 지불하는 비용을 따져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사실은 대단히 유명한 슈퍼스타일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그렇다면 연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이미 몇 푼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점심시간에도 그 자리에서 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꼭 그날 점심이 아니라 해도 주말에 근처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연주하는 그를 만날 가능성은 더욱 높다. 거리의 악사들을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라면 더더욱 그렇다. 행인이 판단할 때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모자 쓴 조슈아 벨의 연주 실력이 아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한손에 든 채 한가하게 들을 수 있거나 가족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연주를 바쁜 아침에 지각을 각오하고 들어야 하는 이유가 별로 없다. 그날 아침 연주가 아무리 환상적이라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들어도 같은 연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이 진짜로 말하는 것
누군가 조슈아 벨을 알아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이것으로 실험은 실패다. 조슈아 벨을 알아보느냐가 아니라 누가 연주하느냐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감상하느냐가 실험의 목적이니 말이다. 그만큼 그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물론 조슈아 벨을 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슈퍼스타의 열정적인 연주를 볼 수 있으며 잘하면 나란히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기회다. 조슈아 벨이 또다시 거리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그날 지각에 대한 보상은 커진다. 한번 밖에 없는 기회가 아닌가? 조슈아 벨을 누군가 알아보았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점은 워싱턴포스트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조슈아벨이 누군지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쳤지만 슈퍼스타인지 알고서야 몰려드는 행인들을 속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들이 음악에 얼마만큼 조예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실험은 이 추측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실험을 통해 행인들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만은 증명되었다. 그들은 모자가 주는 정보를 활용해 가장 개연성 높은 추론을 하였으며 가장 비용이 적고 이득이 많은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철학교수들의 꿈과 계산
"논술교육인증원의 활동이 활성화되면,현재 공교육과 사교육 분야에서 파행적으로 시행되는 논술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대학철학과연합회 초대 회장이자 철학교수들이 모여 만든 논술교육인증원의 초대원장인 배석원 교수는 논술인증시험을 통해 논술교육인증서를 부여하면 논술교육의 혼란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논술교육인증서가 정말 논술교육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편익을 높이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아래 학생처럼 자신의 의견을 적어보자.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글
송근일 명지외고 2학년
논술교육인증서는 그 권위만 얻으면 논술이라는 것에 무지하거나 판단 기준이 안 선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신용도를 제공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들의 꿈과는 달리 이 논술교육인증서는 얼마 가지 않아 헌 종이 짝에 불과해 질 수도 있다. 권위만 얻으면 처음에 시장 진입이 다른 누구보다도 쉬울 수도 있지만,논술이라는 것이 철학을 배웠다고,그리고 안다고 더 잘 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학부모와 학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인증이 아니라 한 명의 논술강사에 대한 평판과 실력이 되기 때문에 수요자들 사이에서 별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믿음을 얻지 못할 동시에 인증은 권위를 잃게 되고, 결국 '그 권위만 얻으면'이라는 전제를 파괴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논술강사 혹은 그 지망생이 그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의 비용이 너무나도 크게 책정된다. 결국 철학과 학생들에게서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후략)
조슈아 벨은 클래식계의 슈퍼스타다. 뉴스위크지(誌)는 "그의 음악은 우리의 머리와 마음 모두를 감동시킨다"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게다가 그는 잘생겼으며 그의 바이올린까지도 유명하다. '톰 테일러(Tom Taylor)'라고 불리는 1732년산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그의 공연을 직접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10만원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는 얼마 전 흥미 있는 실험에 참여했다. 지난 1월 조슈아 벨은 거리의 악사로 데뷔했다. 장소는 워싱턴 DC의 심장부에 위치한 랑팡 프라자. 금요일 아침 8시를 전후하여 조슈아 벨은 45분 동안 출근하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했다. 야구모자를 눌러쓰고 티셔츠를 입고 연주하는 동안 1100여명의 시민이 그의 앞을 지나갔다. 과연 몇 명이나 세기적인 연주자의 음악 그 자체에 매료되어 잠시라도 멈춰 서 음악을 감상할 것인가가 실험 내용. 10명 혹은 100명?
실험 결과는 참담했다. 단 한명의 시민도 세계적인 연주자의 공짜 연주를 감상하지 않았다. 다만 3달러와 몇 개의 동전만이 이 유명한 연주자가 그날 올린 수확의 전부였다. 실험이 있기 불과 사흘 전,조슈아 벨은 보스턴 심포니홀을 매진시켰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음악을 감상할줄 모른다. 그들은 단지 남들이 좋다는 음악만을 감상하면서 자신의 음악적 안목도 높다는 만족감을 얻기 위해 돈을 지불할 뿐이다.' 이 실험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증거일까? 적어도 실험을 주도한 워싱턴포스트는 이런 결론을 강하게 암시했다.(Pearls Before Breakfast, Washington Post April 8, 2007)
◆동대문은 정말 쌀까?
백화점에서 20만원 한다는 유명한 청바지 정품을 동대문에서 3만원에 구입했다면 17만원 절약한 것일까? 다른 조건이 같다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조건이 같지 않다. 정품을 찾기 위해 한나절을 소비했다면 그 한나절의 가치를 알기 전에는 이 질문에 답할 수 없다. 하루 일을 하면 수백만 원을 벌 수 있는 펀드매니저라면 절약이 아니라 수백만 원이나 하는 청바지를 산 셈이다. 그 시간이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사람에게만 이익이 17만원에 근접한다. 또 치수가 안 맞거나 뜯어졌을 때 백화점은 즉각 바꿔주는 대신 동대문은 주인과 실랑이해야 한다면 백화점이 추가로 제공하는 상품은 단지 그 똑같은 청바지만은 아니다.
◆정보는 이득이다
사람들은 정보에 실제로 돈을 지불한다. 외형은 같아 보이는 물건도 누가 만들고 누가 파느냐에 따라 기꺼이 다른 값을 지불한다. 정보에는 편리와 신뢰가 있기 때문이고 이 편리와 신뢰는 시간을 절약해주거나 실패로부터 보호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통사회에서는 상행위가 가치를 창출한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농업,제조업과는 달리 상업은 단지 중간에서 이익을 챙길 뿐이라는 관념이 강하다. 그러나 이것은 매우 물질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농업이나 제조업이 생산하는 물질도 엄밀하게 따지면 창조해 낸 것이 아니다. 자연에 있던 물질을 누군가에게 유용하도록 재배열했을 뿐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비하는 것도 물질 자체가 아니다. 유용한 배열을 소비한다. 따라서 가치를 잃은 상품은 물질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라 배열이 바뀌어 유용성을 상실한 것뿐이다. 이 원리는 초보적인 과학이다.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물질이나 상품을 재배열한다는 의미에서 장사는 매우 생산적인 활동이다. 좋은 상인은 소비자들의 시간이나 자산의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정서적인 만족도 제공한다. 그리고 정보는 상인들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다.
◆좋은 연주는 행인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이 실험을 통해 현대인의 왜곡된 문화소비를 지적하는 판단에는 어떤 전제가 있다. 누군가 정말 좋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다면 연주자가 설령 조슈아 벨 같이 유명한 스타가 아니더라도 연주를 감상했을 것이다. 회사에 지각하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말이다. 조수아 벨을 스쳐간 행인들 중에는 정말 좋은 음악을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닌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1000명이 넘는 시민 속에는 바이올린을 좋아하고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있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조슈아 벨이 그날 한 연주의 수준이나 행인들의 음악에 대한 조예는 멈춰서 감상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데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 연주를 감상하기로 한 행인이 지불하는 비용을 따져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좋은 음악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사실은 대단히 유명한 슈퍼스타일 가능성은 거의 0에 가깝다. 그렇다면 연주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그가 이미 몇 푼의 생활비를 벌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점심시간에도 그 자리에서 연주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암시한다. 꼭 그날 점심이 아니라 해도 주말에 근처 공원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연주하는 그를 만날 가능성은 더욱 높다. 거리의 악사들을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라면 더더욱 그렇다. 행인이 판단할 때 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은 모자 쓴 조슈아 벨의 연주 실력이 아니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은 후 커피를 한손에 든 채 한가하게 들을 수 있거나 가족과 함께 공원 벤치에 앉아 들을 수 있는 연주를 바쁜 아침에 지각을 각오하고 들어야 하는 이유가 별로 없다. 그날 아침 연주가 아무리 환상적이라도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 들어도 같은 연주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험이 진짜로 말하는 것
누군가 조슈아 벨을 알아보았다면 어땠을까? 물론 이것으로 실험은 실패다. 조슈아 벨을 알아보느냐가 아니라 누가 연주하느냐와 상관없이 좋은 음악을 감상하느냐가 실험의 목적이니 말이다. 그만큼 그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전을 기했다. 물론 조슈아 벨을 알아보는 순간 모든 것은 변한다. 2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슈퍼스타의 열정적인 연주를 볼 수 있으며 잘하면 나란히 기념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기회다. 조슈아 벨이 또다시 거리에 나설 가능성이 희박할수록 그날 지각에 대한 보상은 커진다. 한번 밖에 없는 기회가 아닌가? 조슈아 벨을 누군가 알아보았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 분명하다. 이점은 워싱턴포스트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럼 조슈아벨이 누군지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쳤지만 슈퍼스타인지 알고서야 몰려드는 행인들을 속물이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이들이 음악에 얼마만큼 조예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이 실험은 이 추측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실험을 통해 행인들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것만은 증명되었다. 그들은 모자가 주는 정보를 활용해 가장 개연성 높은 추론을 하였으며 가장 비용이 적고 이득이 많은 방법을 선택했던 것이다.
◆철학교수들의 꿈과 계산
"논술교육인증원의 활동이 활성화되면,현재 공교육과 사교육 분야에서 파행적으로 시행되는 논술교육을 정상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대학철학과연합회 초대 회장이자 철학교수들이 모여 만든 논술교육인증원의 초대원장인 배석원 교수는 논술인증시험을 통해 논술교육인증서를 부여하면 논술교육의 혼란을 없애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논술교육인증서가 정말 논술교육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편익을 높이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관련 기사를 찾아보고 아래 학생처럼 자신의 의견을 적어보자.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글
송근일 명지외고 2학년
논술교육인증서는 그 권위만 얻으면 논술이라는 것에 무지하거나 판단 기준이 안 선 사람들에게 기초적인 신용도를 제공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철학자들의 꿈과는 달리 이 논술교육인증서는 얼마 가지 않아 헌 종이 짝에 불과해 질 수도 있다. 권위만 얻으면 처음에 시장 진입이 다른 누구보다도 쉬울 수도 있지만,논술이라는 것이 철학을 배웠다고,그리고 안다고 더 잘 하거나 가르칠 수 없다는 것을 학부모와 학생들은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에는 그 인증이 아니라 한 명의 논술강사에 대한 평판과 실력이 되기 때문에 수요자들 사이에서 별 믿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또한 믿음을 얻지 못할 동시에 인증은 권위를 잃게 되고, 결국 '그 권위만 얻으면'이라는 전제를 파괴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논술강사 혹은 그 지망생이 그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의 비용이 너무나도 크게 책정된다. 결국 철학과 학생들에게서도 외면당하기 십상이다.(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