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직업
모든 직업은 나름대로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작업 위험으로 인한 사망률의 평균값은 10만명당 4명 정도라고 한다. 어부는 전통적으로 가장 위험한 직업에 속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의하면 2005년 어업 사망률은 10만명당 120명 정도로 평균보다 30배나 높다. 그러나 알래스카 대게(king crab)잡이는 10만명당 300명을 넘어선다.
영하 30도의 날씨 속에서 9m가 넘는 파도와 싸우다가 바다에 빠지면 살아남기 힘들다. 또 배 자체가 빙하에 부딪히기도 한다. 갑판에 흘러 들어온 바닷물은 계속 얼어붙기 때문에 작업에 열중하느라 자칫하면 바다 속으로 미끄러진다.
옆의 동료가 죽어 나가는 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이다. 게잡이 시즌 두 달 동안 평균 5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목숨을 걸만한 것일까?
◆사람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있다. 아니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지만 때때로 돈으로 환산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교차로보다 육교가 더 안전하다. 만약 교차로 하나를 육교로 바꾸면 1년에 한 명꼴로 사망자를 줄일 수 있고,이 때 단 한 명의 생명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면 온 도로를 육교로 덮어야 옳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육교를 설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을 돈으로 환산해서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에만 꼭꼭 틀어박혀 있지 않고 운전도 하고, 여행도 가고, 위험한 작업도 한다. 대게잡이 어부들은 자신의 목숨에 얼마의 현상금을 내 건 것일까? 대게잡이 어부들이 두 달 동안 게를 잡지 않는 경우에 새우를 잡는다고 하면 이들은 게잡이 수입에서 새우잡이 수입을 뺀 만큼 추가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게잡이를 선택하므로 추가로 짊어져야 할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이 추가 수익을 추가로 발생하는 위험으로 나누면 게잡이 어부 생명의 값이 산출된다.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엄마는 멜로드라마를, 아빠는 축구중계를 보려고 싸울 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TV를 한 대 더 사면된다. 아예 가족 수만큼 TV를 놓으면 이런 갈등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많은 비용과 공간이 필요하다.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면서 모두가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 자신이 보고자 하는 TV 프로그램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서 적어 내고 더 많은 금액을 써낸 사람이 TV를 보면 된다. 대신에 TV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적어낸 금액만큼 돈을 주면 된다. 그 금액이 자신이 좋아하는 TV프로를 포기하는 대가로 보상받고자 하는 최저 금액이니 불만은 없는 셈. 자신의 프로를 보게 된 사람은 자신이 평가한 금액보다 저렴하게 리모컨을 독점할 수 있다. 즉, 패자에게 지불한 금액과 자기가 써낸 금액의 차액만큼 이득이다. 무조건 비싸게 써내면 되지 않느냐고? 잘 생각하면 정직하지 못한 만큼 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계량화의 힘
경제학에 둔감한 사람들일수록 경제학이 모든 것을 계량화 한다고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계량화는 경제학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경제학을 제외한 인문학들은 사물을 계량화해서 나누고 곱하고 빼고 더해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계량화가 왜 중요한가?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계량화라는 객관적인 척도가 없으면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생각을 중재하기 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때로 피 흘리는 싸움도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홍차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 사회는 홍차와 커피에 각각 얼마씩 자원을 할당해야 하는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현실은 자원과 노동, 시간이 무한정한 패러다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권을 소수에게 일임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있을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 돈으로 환산해서 지불하게 하고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의 선호만큼 지불하게 한다. 사회적 자원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순서로 배분되기 시작한다. 이들이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커피나 홍차를 얻지 못한 사람은 다른 행태의 보상을 얻는다. 엄마 아빠의 TV 다툼은 이 과정을 매우 단순화한 것이다.
◆경제학적 상상력과 논술
왜 간혹 똑똑한 학생들의 논술 답안도 판에 박힌 통념을 벗어나지 못할까? 정성(定性) 적인 사고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의 논술답안은 입체성이 부족하다. 콜라는 몸에 나쁘다. 옳은 말일까? 무엇에 비해서 나쁜 걸까? 또 얼마만큼 나쁜 걸까? 비교대상이 없다면 이 명제는 무의미하다. 만약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신 아버지가 가족들과 통닭을 드시면서 맥주를 찾으신다면 그때는 콜라가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옳다. 지리산에 PET병이 단 하나도 없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 최후의 쓰레기는 찾기 어렵다. 마지막 PET병을 찾기 위해 헬기와 수색대를 동원해서 샅샅이 뒤지게 되면 지리산을 훨씬 더럽히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천시에는 비행기 사고의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비가 올 때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면 상당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사망자는 더 늘어난다. 사람들은 비행기보다 훨씬 위험한 자동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항공기와 위험 지역의 여행상품을 법으로 금지한다면 이번 캄보디아 추락사고 같은 불행한 일이 없어질까? 조금 더 위험하더라도 싼 가격의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거나 아니면 각자 알아서 캄보디아 여행 계획을 짜느라 더 위험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지 모른다.
경제학적 상상력이 허약한 사람들은 종종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은 판단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논리로는 평면적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를 넘어선 다른 측면은 생각하지 못한다. 상상력이 앙상한 탓이다.
◆생활에서 시작하라
수요ㆍ공급곡선, GDP와 인플레이션 같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면 경제공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현상에 대한 학문이 경제학이라고 단정한다. 아니다. 경제는 온갖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상상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생물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조차 경제학을 이용한다.
아래 학생의 글은 기숙사 학교에서 주는 간식의 효용을 분석하고 있다. 학생같이 생활 속의 일을 담백하고 명쾌한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경제논술교육의 이익이다.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란 합리적인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었지만 여타의 이유로 잃어버린 경제적 이익을 말한다. 이 이익은 소비자나 생산자 혹은 사회전체 누구에게도 이전되지 않고 그냥 사라지고 만다.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글:
김희나(명지외고 2학년)
(전략) 간식은 학생들이 먹지만 무엇을 간식으로 줄지는 학부모들이 결정한다. 그래서 가끔은 학생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많은 음식들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오후 9시께에 간식을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학생들도 꽤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식시간을 기대하고 또 즐기기도 하겠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간식으로 나오는 음식에 불만을 가지거나 밤에 먹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먹지 않는다. 하지만 간식을 먹지 않는다고 하여 금액이 청구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간식을 먹는 것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먹일 수도 없다. 여기서 볼 때 명지외고의 간식 자중손실은 매우 크다. 매 간식시간 때마다 간식들이 남을 뿐만 아니라 간식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간식을 즐겁게 먹으러 가는 사람이라도 그 간식에 100% 만족해 먹으러 가는 것이라기보다 공짜라는 생각과 (사실 공짜가 아니지만) 안 먹으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 간식은 간식이 없었다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마저 끌어 들인다. 간식을 먹음으로써 공부시간 30분을 잃는 것이다. 간식에 100% 만족하는 학생이 아닌 경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몇몇의 여자애들은 간식을 먹긴 하지만 먹고 나서 살찐다는 생각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간식을 줌으로써 학교 측과 학부모들은 주면서도 한소리 듣는 꼴이 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간식을 주는 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모든 직업은 나름대로 위험요인을 안고 있다. 작업 위험으로 인한 사망률의 평균값은 10만명당 4명 정도라고 한다. 어부는 전통적으로 가장 위험한 직업에 속한다. 미국 노동통계국에 의하면 2005년 어업 사망률은 10만명당 120명 정도로 평균보다 30배나 높다. 그러나 알래스카 대게(king crab)잡이는 10만명당 300명을 넘어선다.
영하 30도의 날씨 속에서 9m가 넘는 파도와 싸우다가 바다에 빠지면 살아남기 힘들다. 또 배 자체가 빙하에 부딪히기도 한다. 갑판에 흘러 들어온 바닷물은 계속 얼어붙기 때문에 작업에 열중하느라 자칫하면 바다 속으로 미끄러진다.
옆의 동료가 죽어 나가는 데도 집에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돈 때문이다. 게잡이 시즌 두 달 동안 평균 5000만원 정도를 벌 수 있다고 한다. 이 정도라면 목숨을 걸만한 것일까?
◆사람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을까?
있다. 아니 우주와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사람의 생명이지만 때때로 돈으로 환산해야만 한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교차로보다 육교가 더 안전하다. 만약 교차로 하나를 육교로 바꾸면 1년에 한 명꼴로 사망자를 줄일 수 있고,이 때 단 한 명의 생명이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다면 온 도로를 육교로 덮어야 옳다.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환산할 수 있다면 육교를 설치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비교해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
사실, 사람들은 스스로 위험을 돈으로 환산해서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집에만 꼭꼭 틀어박혀 있지 않고 운전도 하고, 여행도 가고, 위험한 작업도 한다. 대게잡이 어부들은 자신의 목숨에 얼마의 현상금을 내 건 것일까? 대게잡이 어부들이 두 달 동안 게를 잡지 않는 경우에 새우를 잡는다고 하면 이들은 게잡이 수입에서 새우잡이 수입을 뺀 만큼 추가 수익을 올리는 셈이다. 게잡이를 선택하므로 추가로 짊어져야 할 위험에 대한 보상이다. 이 추가 수익을 추가로 발생하는 위험으로 나누면 게잡이 어부 생명의 값이 산출된다.
◆엄마와 아빠가 싸울 때
엄마는 멜로드라마를, 아빠는 축구중계를 보려고 싸울 때 해결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물론 TV를 한 대 더 사면된다. 아예 가족 수만큼 TV를 놓으면 이런 갈등은 없다. 그러나 이 경우 많은 비용과 공간이 필요하다. 제한된 자원을 분배하면서 모두가 나름대로 만족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엄마와 아빠가 각자 자신이 보고자 하는 TV 프로그램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해서 적어 내고 더 많은 금액을 써낸 사람이 TV를 보면 된다. 대신에 TV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적어낸 금액만큼 돈을 주면 된다. 그 금액이 자신이 좋아하는 TV프로를 포기하는 대가로 보상받고자 하는 최저 금액이니 불만은 없는 셈. 자신의 프로를 보게 된 사람은 자신이 평가한 금액보다 저렴하게 리모컨을 독점할 수 있다. 즉, 패자에게 지불한 금액과 자기가 써낸 금액의 차액만큼 이득이다. 무조건 비싸게 써내면 되지 않느냐고? 잘 생각하면 정직하지 못한 만큼 왜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지 금방 깨닫게 된다.
◆계량화의 힘
경제학에 둔감한 사람들일수록 경제학이 모든 것을 계량화 한다고 폄하하곤 한다. 그러나 계량화는 경제학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다. 경제학을 제외한 인문학들은 사물을 계량화해서 나누고 곱하고 빼고 더해서 결론을 얻을 수 있는 방법론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계량화가 왜 중요한가? 불필요한 낭비를 줄일 수 있다. 계량화라는 객관적인 척도가 없으면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생각을 중재하기 위해 훨씬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고 때로 피 흘리는 싸움도 발생한다.
어떤 사람들은 홍차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들은 커피를 좋아한다. 그 자체로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한 사회는 홍차와 커피에 각각 얼마씩 자원을 할당해야 하는지 같은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한다. 현실은 자원과 노동, 시간이 무한정한 패러다이스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정권을 소수에게 일임하지 않고, 어떤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희생시키지 않는 최선의 방법이 있을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만큼 돈으로 환산해서 지불하게 하고 홍차를 좋아하는 사람도 자신의 선호만큼 지불하게 한다. 사회적 자원은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순서로 배분되기 시작한다. 이들이 공짜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대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커피나 홍차를 얻지 못한 사람은 다른 행태의 보상을 얻는다. 엄마 아빠의 TV 다툼은 이 과정을 매우 단순화한 것이다.
◆경제학적 상상력과 논술
왜 간혹 똑똑한 학생들의 논술 답안도 판에 박힌 통념을 벗어나지 못할까? 정성(定性) 적인 사고 틀을 벗어나지 못한 학생들의 논술답안은 입체성이 부족하다. 콜라는 몸에 나쁘다. 옳은 말일까? 무엇에 비해서 나쁜 걸까? 또 얼마만큼 나쁜 걸까? 비교대상이 없다면 이 명제는 무의미하다. 만약 오랜만에 일찍 귀가하신 아버지가 가족들과 통닭을 드시면서 맥주를 찾으신다면 그때는 콜라가 훨씬 나을지도 모른다.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 옳다. 지리산에 PET병이 단 하나도 없는 게 가장 이상적일까? 최후의 쓰레기는 찾기 어렵다. 마지막 PET병을 찾기 위해 헬기와 수색대를 동원해서 샅샅이 뒤지게 되면 지리산을 훨씬 더럽히고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우천시에는 비행기 사고의 확률이 훨씬 높아진다. 비가 올 때 항공기 운항을 금지하면 상당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오히려 사망자는 더 늘어난다. 사람들은 비행기보다 훨씬 위험한 자동차를 선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위험한 항공기와 위험 지역의 여행상품을 법으로 금지한다면 이번 캄보디아 추락사고 같은 불행한 일이 없어질까? 조금 더 위험하더라도 싼 가격의 여행을 원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빼앗거나 아니면 각자 알아서 캄보디아 여행 계획을 짜느라 더 위험한 방법을 선택하게 될지 모른다.
경제학적 상상력이 허약한 사람들은 종종 자기 말고 다른 사람들은 판단능력이 없다는 전제에서 논리를 전개한다. 이런 논리로는 평면적인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를 넘어선 다른 측면은 생각하지 못한다. 상상력이 앙상한 탓이다.
◆생활에서 시작하라
수요ㆍ공급곡선, GDP와 인플레이션 같이 복잡하고 머리 아픈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면 경제공부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제현상에 대한 학문이 경제학이라고 단정한다. 아니다. 경제는 온갖 문제에 대한 경제학적 상상력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생물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조차 경제학을 이용한다.
아래 학생의 글은 기숙사 학교에서 주는 간식의 효용을 분석하고 있다. 학생같이 생활 속의 일을 담백하고 명쾌한 언어로 설명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경제논술교육의 이익이다.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이란 합리적인 거래를 통해 얻을 수 있었지만 여타의 이유로 잃어버린 경제적 이익을 말한다. 이 이익은 소비자나 생산자 혹은 사회전체 누구에게도 이전되지 않고 그냥 사라지고 만다.
slowforest@eduhankyung.com
▶학생글:
김희나(명지외고 2학년)
(전략) 간식은 학생들이 먹지만 무엇을 간식으로 줄지는 학부모들이 결정한다. 그래서 가끔은 학생들이 그리 선호하지 않는 것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럴 때면 항상 많은 음식들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오후 9시께에 간식을 먹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학생들도 꽤 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간식시간을 기대하고 또 즐기기도 하겠지만 적지 않은 학생들이 간식으로 나오는 음식에 불만을 가지거나 밤에 먹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먹지 않는다. 하지만 간식을 먹지 않는다고 하여 금액이 청구되지 않는 것도 아니고 간식을 먹는 것은 의무가 아니기 때문에 억지로 먹일 수도 없다. 여기서 볼 때 명지외고의 간식 자중손실은 매우 크다. 매 간식시간 때마다 간식들이 남을 뿐만 아니라 간식에 만족하지 않는 학생들도 꽤 있기 때문이다. 간식을 즐겁게 먹으러 가는 사람이라도 그 간식에 100% 만족해 먹으러 가는 것이라기보다 공짜라는 생각과 (사실 공짜가 아니지만) 안 먹으면 손해라는 생각 때문인 경우가 많다. 또한 이 간식은 간식이 없었다면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있을 아이들마저 끌어 들인다. 간식을 먹음으로써 공부시간 30분을 잃는 것이다. 간식에 100% 만족하는 학생이 아닌 경우 손해가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몇몇의 여자애들은 간식을 먹긴 하지만 먹고 나서 살찐다는 생각 때문에 후회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보면 간식을 줌으로써 학교 측과 학부모들은 주면서도 한소리 듣는 꼴이 된다. 여러 가지 면에서 간식을 주는 제도는 폐지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