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 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 inflation의 합성어,

바이오에너지 뜨면서 옥수수등 국물가격 급등하는 현상

[Global Issue] 애그플레이션이 뭐지?
농산물 가격 상승에서 비롯된 시장 전반의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우려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애그플레이션(agflation)'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애그플레이션이란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로 농산물 가격이 오르면서 일반 물가도 덩달아 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농산물 가격 상승은 밀,옥수수 등 기초적인 곡물가격 급등에서 출발했다. 최근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7월 인도분 밀 선물가격은 부셸(약 27㎏)당 6.1달러를 넘어섰다. 11년 만에 최고치다. 지난 4월 초만 하더라도 부셸당 4달러 초반에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두 달 사이 40% 이상 급등한 것이다.

옥수수 선물 가격도 최근 한 달 새 20%가량 오르며 부셸당 4달러대에 진입했다. 특히 옥수수 생산지인 미국 아이오와주 땅값은 작년 한 해 동안 35% 올랐고,곡물 수출 2위국인 아르헨티나의 옥수수 농장 가격도 27%나 뛰어올라 뉴욕 맨해튼의 아파트 값 상승률(11%)을 크게 웃돌았다. 옥수수 밭 가격이 고급 아파트보다 더 큰 폭으로 오르고 있는 것이다.

농산물발(發) 물가 상승은 각국 식료품 가격도 빠르게 끌어올리고 있다.미국 식료품 물가는 올 1~5월 중 6.7% 올라 지난해에 비해 상승 폭이 3배 이상 커졌다. 영국도 식료품 가격이 최근 6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다. 농산물 값 상승은 가축 사료 값도 올리고 있어 쇠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축산물도 값이 오르고 있다. 이러한 영향으로 영국의 쇠고기 값은 1년 전에 비해 8%,닭고기는 10% 가까이 급등했다. 중국의 돼지고기 값은 사료 값 급등에 전염병까지 번지면서 1년 전보다 70% 이상 오르기도 했다.

이처럼 애그플레이션이 현실화되고 있는 원인은 다양하다. 먼저 중국,인도 등 인구 대국들의 경제가 좋아지면서 식품 소비량이 급증한 게 한 원인이다. 석유,천연가스 등 전 세계 에너지를 닥치는 대로 빨아들였던 이들 두 나라가 이번엔 '식료품 블랙홀'로 등장한 것.

일시적으로는 기상 이변도 한몫했다. 미국의 최대 밀 경작지인 캔자스주는 때아닌 서리로 밀 수확에 큰 차질을 빚고 있다. 최근엔 폭우 예보까지 나와 밀 생산이 더 지연될 전망이다. 유럽은 헝가리,체코,이탈리아 등의 곡창지대에 가뭄이 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세계적인 '바이오 에너지' 열풍이다. 에탄올 등 바이오 연료로 쓰이는 옥수수,사탕수수 등의 수요가 급증해 농산물 재고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 이 같은 수요 증가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은 2008년부터 곡물 수확량 중 30%가량을 에탄올 생산에 투입할 예정이고,노르웨이는 바이오 연료를 섞지 않고 휘발유만 사용하는 차량의 판매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유럽연합(EU)은 자동차 연료에서 바이오 연료가 차지하는 비중을 2020년까지 10%로 늘리기로 했다.

도이체방크의 식품 분석가인 존 파커는 "현재의 식품가격 상승은 구조적 현상이어서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는 두려움이 그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진단했다. 그는 "곡물부터 유제품까지 전 분야에서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단순한 '기우'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우선 식료품 가격이 전체 소비자 물가에 미치는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식료품 가격이 소비자 물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40년대 말 43%에서 지금은 14%로 낮아졌다. 영국도 같은 기간 34%에서 10%로 낮아졌다. 한국(13%)과 유로존(15%)도 비슷한 수준이다. 다시 말해 물가 수준을 판별할 때 포함되는 제품이 이전에 비해 다양화되면서 식료품 가격의 파급 효과가 줄었다는 것이다.

또한 전문가들은 경작기술 발달과 품종 개량으로 곡물 생산량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데다,아직은 브라질 등에 유휴지가 많다는 점에서 애그플레이션의 충격이 그다지 크진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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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애그플레이션 영향

애그플레이션은 국내 식품업체와 축산 농가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식품업체들은 원재료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으로 라면,과자류 등 식료품 가격을 올리고 있으며 농가들은 사료 값 급등으로 폐업 위기에 몰리고 있다.

CJ,대상 등 국내 식품업체들은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밀가루 및 옥수수 전분(녹말) 가격을 약 10%씩 올렸다. CJ 관계자는 "소맥(밀가루 원료)과 옥수수 등 곡물 국제시세가 지난해 10% 이상 오른 데 이어 최근에도 10∼15% 정도 상승했다"며 "해상 운송비와 국제 유가 상승으로 가격 부담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CJ 등 1차 가공업체로부터 밀가루,전분 등을 구매해 제품을 만드는 2차 가공업체들도 가격을 줄줄이 올리고 있다. 농심은 지난 3월 라면 값을 종류별로 50∼100원 인상했고,600원짜리 새우깡 가격을 700원으로 올리는 등 20여 가지 제품 값을 15∼20% 인상했다. 오리온과 롯데제과도 초코파이 가격을 상자당 2400원에서 2800원으로 올렸다.

오리온 관계자는 "설탕을 제외한 대부분의 원재료 가격이 올해 들어 10% 이상 상승했고 특히 유지(팜유,대두유 등)는 지난해보다 40%나 뛰었다"며 "1차 가공업체들이 하반기에도 가격을 올릴 것으로 예상돼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전했다.

농산물 값 상승은 사료 값도 크게 올리고 있어 국내 축산 농가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한국사료협회에 따르면 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 수입 가격은 최근 한 달 새 10% 이상 올랐다. 게다가 미국산 옥수수 값이 기상 악화 등의 영향으로 오는 7∼8월 중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1년간 20% 정도 값을 올린 국내 배합사료업체들은 7월 중 또 다시 값을 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으로 미국산 쇠고기가 싼 가격에 들어오는 현실에서 국내 축산농가들은 고기 값을 올릴 수 없어 어려움이 더욱 가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