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호 기자의 '말짱 글짱'] '막말질' 하는 사회
"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는 신선할지 몰라도 대통령의 언어는 아니다. 대통령의 언어는 다소 위선적일지라도 품격이 필요하다. 노 대통령의 언어는 명분을 벗어던진 적나라한 언어로…."

취임 초의 '막가자는 거죠'에서 시작해 최근의 '보따리 정치''깽판''그놈의 헌법''쪽팔린다'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내뱉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고은 시인이 최근 한 포럼에서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대통령의 정제되지 않은 거친 말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더 이상 두고 보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나오는 대로 함부로 하거나 속되게 말하는 것'은 '막말'이다. 고은 시인은 아마도 국가 최고 지도자에 의한 '막말'이 자칫 너도나도 막말하는 사회를 초래하지나 않을지 걱정했을 것이다. 그렇게 막말을 하는 행위를 가리켜 '막말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전에 나오는 단어는 아니지만 말 만들기는 가능하다.

'-질'은 '도둑질,발길질,선생질,싸움질,담금질' 등과 같이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일' 또는 '그런 행위'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이 말은 이밖에도 '가위질,걸레질,부채질'처럼 도구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서 '그 도구를 가지고 하는 일'의 뜻을 더하기도 하고,'손가락질,주먹질,곁눈질' 등과 같이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쓰이기도 한다. 또 물질을 나타내는 명사 뒤에서 '그것을 가지고 하는 일' 또는 '그것과 관계된 일'의 뜻을 나타내는가 하면(물질,불질,풀질,흙질),일부 의성어 또는 어근 뒤에 붙어 '그런 소리를 내는 행위'의 뜻을 더하기도 한다(딸꾹질,수군덕질).

이처럼 다양하게 쓰이는 접미사 '-질'은 수많은 파생어를 만들어내 부족한 우리말 어휘를 채워주는 일등공신 중의 하나이다. 비록 일일이 사전에 다 올라 있지는 않아도 우리가 쓰는 말 가운데 일부 단어에 자유롭게 붙어 새로운 의미의 말을 만들어 낸다. 이를테면 요즘 유행하는 '싸이질'도 한 예이다.

이 '-질'과 비슷한 의미 기능을 갖는 말로 '짓'이란 게 있다. '몸을 놀려 움직이는 동작'을 나타내는 말인데,주로 좋지 않은 행위나 행동을 이를 때 쓰인다. '나쁜 짓,어리석은 짓,부질없는 짓,못할 짓' 같은 게 그런 예다. 하지만 '예쁜 짓' 같은 말도 있듯이 딱히 부정적 의미 자질을 갖는 것만은 아니다. 단독으로 쓰이는 데서도 알 수 있듯이 품사는 명사다.

이 '짓'도 다른 단어와 어울려 새로운 말을 만들어내는데 몸짓,손짓,눈짓,발짓 따위가 있다. 접미사 '-질'이 붙어 만들어지는 말을 파생어라 부르는 데 비해 단어와 단어가 결합한 이들은 '합성어'라고 한다. 또 '-질' 파생어가 매우 다양한 사례를 보이는 데 비해 '짓'과 결합하는 합성어는 제한적이다. '짓'은 몸을 놀려 움직이는 동작에 관한 말이기 때문이다. 쓰임새도 전혀 달라 '-질'이 붙은 말에 '짓'이 들어가지 못한다. '짓'이 쓰인 말에는 '-질'이 붙을 수 있으나 이 또한 다른 말일 뿐이다.(가령 발질이나 눈질이란 말이 있지만 이는 각각 '발길질'의 준말,'눈으로 흘끔 보는 짓'이란 의미의 다른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심코 '선생짓 못해먹겠다'느니,'강도짓을 벌인다'느니,'광대짓을 한다'느니 하는 말을 쓰기도 한다. 삿대질이나 도둑질을 삿대짓,도둑짓이라 하지 않듯이 이런 말들도 선생질,강도질,광대질이라고 해야 바른 말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