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3년 10월2일 서울 연희동 주택가 인근에 시민 400여명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추징하기 위해 가재도구가 경매에 부쳐진 현장이었다. 이들은 골프채를 비롯해 TV 냉장고 등 가재도구를 세심히 살폈다. 그 중에는 전씨가 기르던 '진돗개' 두 마리도 있었다. 이날 진돗개 두 마리는 40만원이란 헐값에 팔렸다.

# "앞으로는 '진돗개'를 '진도개'로 적어주세요." 2001년 전남 진도군은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돗개'의 표기를 '진도개'로 통일해 적기로 결정했다. 일반인 사이에 진도를 상징하는 '진도개'가 '진돗개'란 말과 함께 사용돼 혼선을 초래함에 따라 지역적 특성을 알리고 표기를 통일하기 위한 것이었다. 진도군은 이후 '진도개'를 고유명사로 쓸 수 있게 교육부에 건의한 뒤 지속적으로 홍보에 나서고 있다.

# 경기 안성에는 안성시가 자랑하는 명품 농축산 브랜드가 있다. 바로 '안성마춤'이다. 쌀 한우 포도 배 인삼 등 다섯 가지 특산물로 구성된 공동브랜드인 '안성마춤'은 안성시가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 육성한 것이다. 뛰어난 품질이 뒷받침되면서 2006년 2년 연속 '대한민국 명품 브랜드'에 선정되는 등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 사전에는 '진도개'나 '안성마춤'이란 말은 없다. 모두 틀린 표기이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는 '진돗개''안성맞춤'만 있을 뿐이다. 진돗개와 진도개,안성맞춤과 안성마춤 사이에는 '표기의 규범과 일탈'에 관한 딜레마가 잘 담겨 있다.

진돗개와 진도개는 사이시옷의 문제다. 사이시옷 규정은 우리말에서 가장 애매한 상태로 남겨져 있는 부분이다. 한글 맞춤법에는 사이시옷을 넣는 경우를 제시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개인의 언어 경험에 의존해 적는 경우가 태반이다. 진돗개/진도개의 논란은 고유명사로 볼 것인지가 초점이다. 사전에서는 규범에 따라 '진돗개'로 올리고 있는 반면 문화관광부 고시(1993년 4월)나 진도개보호육성법에서는 '진도개'로 표기하고 있다. 진도군에서는 이러한 근거들과 함께 진돗개의 지역적 특성을 살린다는 취지로 '진도개'를 고유명사화해 한글맞춤법에 반기를 든 셈이다.

안성시의 브랜드 '안성마춤'도 고유명사다. 문제는 우리말에 일반명사로 쓰는 '안성맞춤'이 따로 있다는 점이다. '안성맞춤'은 '조건이나 상황이 어떤 일에 딱 들어맞게 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 말은 '안성에 유기(鍮器·놋그릇)를 주문해 만든 것과 같이 잘 맞는다'는 데서 유래했다. 이 '안성맞춤'도 1988년 이전까진 '안성마춤'이었다. 당시의 '안성마춤'은 본래 '마추다'의 쓰임새에 근거를 두고 있던 말이다. 그때는 '마추다'(양복점에서 옷을 마추다)와 '맞추다'(입을 맞추다)를 구별해 썼었다. 그러나 1988년 현행 한글맞춤법이 나오면서 '마추다'를 버리고 '맞추다' 하나로 통일해 쓰기로 했다. 따라서 자연스레 '안성마춤'이란 말도 허용되지 않고 '안성맞춤'으로 바뀐 것이다. 그러니 안성시에서 쓰는 '안성마춤'은 규범적으로는 '안성맞춤'의 잘못이다. 다만 그것이 실생활에서 쓰일 수 있는 까닭은 상표로 등록된,즉 고유명사로 쓰인 것이라는 데 있다.

'진도개'나 '안성마춤'과 같이 규범에 어긋나는 말들이 실제로 쓰이곤 있지만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자칫 '진돗개'나 '안성맞춤'과 같은 공인된 말의 체계를 흔들어 표기의 혼란성을 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