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브리의 논술비타민] 3. 꼭꼭 숨어라, 숨은 의도 보일라
과연 논술고사에서 어떻게 써야 좋은 답안으로 평가받아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채점 방식과 기준은 세밀한 부분에서 대학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박정하 성균관대 교수는 논술 답안의 채점 결과를 크게 'A, B, C, D' 4등급으로 나눈다고 했다. 4등급으로 나누는 기준은 크게 글의 내용과 형식,두 가지다. 이런 기준은 지극히 일반적이다. 왜냐하면 글은 대부분의 경우 '내용'과 '형식'의 두 측면을 갖기 때문이다. 내용은 '무엇을' 썼는지 평가하는 것이고,형식은 '어떻게' 썼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A,B,C,D급 답안은 각각 어떻게 평가될까? 우선 D급 답안은 내용적으로는 문제에서 요구한 논제나 제시문 파악이 제대로 안 된 경우다. 형식적으로는 분량이 많이 모자라거나,주장하는 논점이 무엇인지 알 수 없거나,주장은 있지만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은 경우 D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B와 C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두 답안은 내용 면에서는 비슷한 수준이다. 특별히 탁월한 내용 없이 상식적이고 누구나 제기할 법한 논의를 한다. 그런데 형식 측면에서 차이가 나게 된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논리적이고 논증적으로 잘 엮어서 체계적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B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것도 힘들 경우,C로 평가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B와 C는 대부분 형식적 측면에서 차이가 난다.

사실 지금까지는 입시에서 B급 답안이 중요했다. 왜냐하면 수능이 변별력이 있었고 따라서 특별히 상향 지원한 경우가 아니라면 논술에서 B만 맞으면 자신의 수능 점수를 지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시의 맥락을 떠나 인문 교육으로서의 논술 교육에서 글쓰기가 지향하는 일차적 목표도 B 정도다. 생각이 탁월하건 평범하건 자신이 생각한 것을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있게 하는 것이 기본이기 때문이다. 결국 B급 답안은 의사소통 능력을 갖춘 답안이다.

그러나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수시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정시에서도 수능의 변별력이 약화되면서 논술에서 변별력을 높여야 하기 때문에 B와 C를 가려내는 데 초점을 둘 수 없다. 대신 A와 B를 가려내는 데로 눈을 돌리게 되었다. A급 답안은 형식적으로 큰 문제가 없으면서 내용이 탁월한 글이다. 즉 논리적 구성에 별 문제가 없으면서 깊이 있고 다각적인 시각의 생각을 펼친 글이다. 이런 답안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논제 분석부터 신중하고 꼼꼼해야 한다. 논술 문제에는 출제자의 의도란 게 있다. 이것은 문제에 겉으로 드러나는 경우도 있고,꼭꼭 숨어 있는 경우도 있다. 겉으로 드러난 출제 의도만 쓴다면 B가 되겠지만,숨은 의도까지 파악하면 A가 된다.

중앙대 2007학년도 수시1학기 논술고사에서 정약용이 제시한 관점을 적용해 인종 간 범죄에 대한 통계자료를 해석하라는 문제가 있었다. 박상규 중앙대 논술출제위원장에 따르면,채점 결과 반 정도의 학생이 정약용의 관점을 적용하라는 문제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입장만 써내려갔다고 한다. 그리고 10% 정도는 보이는 의도(direction)를 파악하여 답안을 작성했고,정작 중요한 숨은 의도를 파악한 학생은 1%밖에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경범 서울대 교수도 '경쟁의 공정성과 경쟁 결과의 정당성'이라는 논제의 2006학년도 정시 논술고사 답안 채점 결과,이와 비슷한 양상이 나왔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이 "경쟁의 기회가 누구에게나 주어지고 그 과정이 공정해야 결과의 정당성을 갖는다"라는 기계적인 '정답'을 찾아내면서 끝을 맺었다고 한다. 이 정답은 마치 '범죄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법을 준수하며 착하게 살아야 한다"라고 답하는 것과 같다.

논제에는 학생들이 찾아낸 정답이 이미 함축되어 있다. 이 논제를 출제한 의도는 정답을 찾으라는 것이 아니라 이 정답이 과연 타당한지 반성적으로 성찰해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 정답을 정당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와 조건은 무엇인지,이에 대한 반론 혹은 반례가 있을 수 있는지,주변 현실에서는 이 정답이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등 파생될 수 있는 다양한 질문에 대해 학생이 자유롭게 자신의 생각을 펼쳐보기를 기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답안이 "현대사회는 무한 경쟁 사회"라는 문장으로 시작하고 "국가의 역할과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면서 끝냈다고 한다.

논술 문제에서 숨은 의도 찾기란 이토록 중요하다. 여기에다 창의력까지 갖추면 'A+' 답안이 되어 합격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게 되는 것이다. 통합논술이라는 것이 창의력 중심의 논술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창의력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이야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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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을 뜻하는 '기브리'(ghibli)는 부산 사직고 김재우 선생님의 필명입니다. 기브리 선생님이 직접 학생을 가르치면서 쌓아온 논술 노하우를 공개합니다. 기브리 선생님은 부산대 사범대와 대학원(국어교육)을 나와 현재 부산교육청 논술지원단과 생글생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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