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 한국경제 논설위원·경제교육연구소장 jkj@hankyung.com >

☞한국경제신문 6월5일자 A39면

급등하는 주가를 바라보는 보통 국민들의 마음이 그다지 편치는 않다.

'또 기회를 놓쳤구나'하는 아쉬움도 적지 않고 '내 사업 내 장사는 안 되는데 주가는 왜 오르나' 하는 질시도 없지 않을 테다. '시류에 밝은 사람들은 벌써 부동산에서 손 떼고 주식으로 큰 재미를 본다는데 나는 공짜 돈이라고는 벌어볼 팔자가 아니구나' 하는 푸념도 적지 않을 것이다.

새삼 통장을 만지작거려 보지만 몇 배씩이나 올라버린 주식을 지금 잘못 샀다가는 상투잡기 십상이고 그렇다고 쳐다만 보자니 속만 타는 꼴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주가를 봐라,경제는 문제없지 않나"고 빈정대는 것도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어서 식당 옆자리 사람들이 "에이! 주식에 관심 없어"라며 애써 무관심을 가장하는 딱한 모습을 자주 보게 된다.

그러나 미리 말해두지만 안심하시라! '주식투자는 사는 기술이 아니라 파는 예술'이라고 했거니와 따고 잃는 것은 자리를 털고 일어설 때 계산해봐야 한다는 것이 모든 종류의 투기에는 만고불변의 금쪽같은 말씀이 아니던가 말이다.

버핏 같은 고수들이야 쉬고 나갈 때를 안다지만 99승을 올린 끝에 마지막 일격으로 모든 것을 날리는 것이 또한 보통사람들의 주식투자다.

주가는 번뇌와 함께 올랐다가 환호 속에 폭락한다는 말이 있지만 5월 중순을 넘기면서 점차 그린스펀이 비이성적 열기(irrational exuberance)라고 불렀던 불타오르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 것도 확실하다.

코스피는 올 들어 20%나 올라 중국 상하이의 50%를 제외하면 세계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니 정말이지 화끈한 한국인이다.

주가가 오를 만한 이유는 주먹구구식으로 헤아려도 최소한 99가지는 더 되는 것 같다.

우선 경기가 더 나빠지지는 않고 있고,참여정부 들어 계속 미루기만 해왔던 설비투자가 증설 압력을 받고 있는 데다,한·미FTA로 국가리스크가 해소되었고,철강 조선 기계 등 전통 산업의 가치 사슬을 따라 기업실적이 호전되는 등 이유는 끝이 없다.

노령화 시대를 맞아 펀드 혁명이라고 부를 만한 40,50대 연령층의 금융자산의 구조변화가 수반된다고 설명하면 금상첨화요 한국기업의 실적대비 주가,다시 말해 PER가 여전히 낮다거나 구조조정을 거친 기업들에 대한 재평가라고 첨언한다면 설명은 세련미까지 풍긴다.

그러나 역시 가장 근본적인 요인은 유동성이다.

올들어 증시에 몰린 돈은 예탁금,CMA,펀드,여기에 외상거래까지 합치면 거의 50조원이다.50조원이 몇 바퀴만 돌면 300조원의 시가총액을 올려놓는 정도는 여반장이다.

여기에 외국인들이 또 있다.미국이 매년 1조달러씩 해외에 퍼붓는 달러(무역적자)가 있고 엔 캐리 자금이 적어도 3000억달러에서 많으면 다시 1조달러다. 산유국의 석유판매 대금도 천문학적 숫자다.

국내 총유동성은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12%씩 꾸역꾸역 늘어나고 있다.한마디로 국내외에서 넘쳐나고 있는 돈의 힘이요,돈질이다.

자본시장의 화폐적 착각이라고 불러 마땅하다.지금의 주가상승을 만들어 내는 가장 큰 힘이 M&A라는 점도 기억해둘 만하다.한국 기업의 경영권을 놓고 국제적인 경매가 진행되는 꼴이라면 이 주가를 즐겨야 할 이유가 없다.

미탈이 포스코 경영권을 운운한 것이 또한 주가를 띄워 올렸다면 이 주가는 국민경제에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지금 그 어떤 선진국도 한국만큼 경영권이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게 되어있는 나라는 없다.

더구나 외국인 비중이 유통주식으로 따지면 60%가 넘는다.외국인이 떼돈 벌어간다는 식으로 호들갑을 떨 이유는 물론 없다.그러나 머니게임에서 압도적 협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템플턴에서나 론스타에서나 소버린에서 익히 보아왔던 터다.개인투자자들은 떡고물에 허겁지겁이다.

자사주와 배당으로 쏟아붓는 돈이 매년 주식조달 자금의 2배인 15조원이다.자금조달이 아니라 돈먹는 하마다.

거꾸로 되어도 한참 거꾸로다. 이런 터에 주가가 오르지 않으면 그것이 이상한 노릇이다.

그러니 부디 보통사람은 주가에 열 받지 말 것이며 대통령도 숟가락부터 들고 뛰지 마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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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유통주식수는 적고 돈은 넘쳐 주가 급등…개인들 상대적 소외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연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요즘 국내 주가 상승세는 절대적인 상승폭이 크기도 하지만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주가가 오르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주가 상승 시기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주가는 대세 상승기에도 대체로 며칠간 지나치게 오를 경우 다시 며칠은 조정을 받고 쉬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같은 조정은 주식투자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 소위 이익 실현을 위해 주식을 팔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요즘 국내 주가는 거의 조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매일 매일 날아가다시피 폭등세를 유지하고 있다.

설사 조정을 거친다 하더라도 장중에 조금 내렸다가 이내 다시 장중에 회복되는 소위 '러닝 커렉션'(running correctin)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다보니 도대체 개인들은 주식을 사려고 해도 살 기회가 거의 없다. 이미 주식을 사기에는 너무나 가격이 오른 데다 그나마 조정을 받아야 살텐데 조정조차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주가는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데 도대체 주변에서 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물론 펀드에 투자해 짭짤한 돈을 번 사람들은 간혹 눈에 띄지만 IT(정보기술) 광풍이 불던 1999~2000년 당시 여기저기서 들리던 대박스토리는 어디를 둘러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 주가 상승이 편치 않은 사람이 많은 것도 이토록 주가가 오르는데 주식 투자로 돈을 번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유는 정규재 논설위원이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시장에 유통되고 있는 주식 수가 전에 비해 극히 줄어든 데다 그나마 그 대부분을 외국인과 기관들이 갖고 있어서다. 개인들이 주식을 갖고 있지 않으니 주식으로 대박 맞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건 당연하다. 이 같은 현상은 외국인이나 기관들은 개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랜 기간 주식을 보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게다가 국내 기업들은 경영권 방어나 주가 관리 등의 목적으로 최근 몇년간 자사주를 꾸준히 사들여왔다. 그러다보니 시장에는 주식의 씨가 말라 버릴 수밖에 없다.

주식의 수는 적고 이 주식을 사려는 돈은 넘쳐나니 주가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금 개인들이 주식을 사러 들어가자니 칼럼에서 지적했듯이 상투잡기 십상이다. 최근 수십년간 한국 주식시장의 역사를 돌아보면 주가 상승의 잔치가 끝난 뒤 원하지 않는 설거지를 해야했던 것은 언제나 평범한 개인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원하지 않는 장기투자의 길로 접어든 개인 투자자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은 이 시장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니 주가 상승에 배아파하기보다는 시장의 움직임을 멀리서 느긋하게 관전하는 것은 어떨까?

김선태 한국경제 연구위원 k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