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Issue] 시장의 힘으로 온난화 막자…글로벌 탄소배출권 시장 '쑥쑥'
지난 6일 독일 하일리겐담에서 열린 선진 8개국(G8) 정상회담에서 온실가스 감축이 가장 큰 의제로 떠올랐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지표면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수준의 절반으로 감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토의정서상 감축 의무를 외면해 오던 미국 부시 대통령도 기후보호 대책 마련에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실현 방식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온실가스 감축이 전(全)지구적으로 발등의 불이 됐다.

2005년 2월 발효된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방침이다. 유럽 등 선진국이 2008~201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 총량을 1990년 대비 평균 5.2% 감축하자는 게 목표다. 교토의정서가 온실가스 감축에 현실적 효과를 갖는 이유는 '시장의 힘'을 적극 활용한 데 있다. 각국이 감축해야 할 온실가스의 배출권을 국가 간 사고 팔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온실가스 못 줄이면 배출 권리를 사라

이렇게 해서 연간 300억달러가 거래되는 '탄소배출권'시장이 생겨났다. 탄소배출권이란 지구온난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다. 교토의정서상 의무적으로 줄여야 하는 배출량을 못 줄이는 나라는 다른 나라의 배출 권리를 사야 한다. 배출 의무를 충분히 지킬 수 있는 국가는 남는 배출권을 팔아 이득을 보니 '윈-윈 게임'인 셈. 세계은행은 탄소배출권 시장이 2010년이면 지금의 5배인 1500억달러로 커질 것으로 예상했다.

탄소배출권이 가장 활발하게 거래되는 곳은 유럽이다. 유럽연합이 2005년 설립한 배출권 거래소 EU ETS(Emission Trading Scheme,유럽 기후거래소)에서는 전체 탄소배출권 시장의 80%에 달하는 연간 243억달러가 거래되고 있다. 유럽연합 내 1만1000여개 기업들이 감축 할당량을 받아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7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66억t 이하로 낮추는 게 목표다. 2006년 평균 배출권 가격은 t당 22달러 선. 미국 시카고 기후거래소,호주의 뉴사우스웨일즈(NSW) 등에서도 탄소배출권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다른 나라 온실가스 줄여도 자국 실적,'프로젝트 거래'도 활발

거래소 바깥에서 프로젝트 단위로 이뤄지는 거래도 있다. 교토의정서에서는 온실가스 감축의무국이 자국의 온실가스를 줄이는 대신 다른 나라의 온실가스 감축사업에 투자하면 그 감축 실적을 자국의 것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스스로 배출량을 못 줄이면 다른 나라라도 줄이도록 만들라는 논리다. 이에 따라 선진국은 개발도상국의 온실가스 저감 기술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자국보다 개발도상국에서 감축 의무를 실현하는 편이 훨씬 저렴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거래 중 감축 의무국가 간 거래는 공동이행제도(JI),감축 의무국가와 의무가 없는 국가 간 거래는 청정개발체제(CDM) 사업이라고 한다. 최근 아일랜드의 자재업체 CRH가 우크라이나 포딜스키 시멘트공장의 대체 연료 설비에 투자하기로 한 것이 JI사업의 예다. CRH는 포딜스키 시멘트공장이 이산화탄소 83만2948t을 감축하도록 돕고 여기서 나오는 13억3000만달러 규모의 배출권을 매입했다.

감축의무가 없는 개발도상국이 참여할 수 있는 CDM사업도 늘어나는 추세다. 교토의정서상 의무를 지지 않는 중국은 작년에만 탄소배출권 4700만t을 선진국에 팔아 큰 수익을 올렸다.

◆돈 버는 탄소시장,그늘도 없지 않아

금융시장의 러브콜도 친환경 바람을 타고 이어지고 있다. 씨티은행,소시에테제네랄 등 세계 유수의 은행들은 온실가스 저감 프로젝트로 비축된 탄소배출권을 사들여 다른 기업에 팔거나,고객에게 탄소배출권 투자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탄소시장에 발을 들여놓고 있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도 탄소배출권 가격이 향후 오를 것이라는 기대로 배출권을 사들이거나 CDM사업 등에 투자를 늘리고 있다.

하지만 탄소시장의 빠른 성장세의 이면에는 그늘도 적지 않다. 지난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탄소배출권 시장이 "환경을 지키기 위한 비효율적 방법이자 잘못된 인센티브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온실가스 중 하나인 HFC(수소불화탄소)의 배출권을 2012년까지 사들이는 데 64억달러가 들 전망인데 이를 직접 폐기하는 데는 단 1억달러가 든다는 것이다.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인 중국이 의무감축 국가에서 빠지고 탄소배출권을 팔아 오히려 막대한 돈을 버는 것도 아이러니다.

김유미 한국경제 기자 warmfron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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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 탄소시장 키운다

한국은 교토의정서에 따른 1차 감축 대상 국가에서는 빠져 당장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할 의무는 없다. 하지만 한국의 연평균(1990~2004년)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율은 4.7%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2013~2017년 2차 온실가스 의무감축 국가에 한국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거기다 최근 교토의정서를 외면해 온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선언함으로써,한국도 가만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지난주 독일에서 열린 G8(선진 7개국 및 러시아) 정상회담을 앞두고 부시 대통령은 G8과 한국 중국 인도 멕시코 등 15개국이 내년 말까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장기 전략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탄소 배출권 시장을 적극적으로 키워,포스트 교토의정서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개발도상국이 참여할 수 있는 CDM사업은 우리나라에서도 조금씩 늘고 있다. 울산화학의 자회사인 퍼스텍은 2004년부터 울산화학 공장의 HFC 저감 설비에 투자해 연간 140만~200만t의 온실가스 감축분을 일본과 영국 등에 판매하고 있다.감축분을 t당 10~25유로에 팔아 연간 140억원가량의 매출을 올린다. 정밀화학 소재업체인 휴켐스도 아산화질소 분해시설에 투자,이산화탄소 126만t에 해당하는 감축분을 유엔으로부터 인증받았다.

지난 3월 기준 국내에서 CDM사업으로 등록된 프로젝트는 10개. 예상 배출권 규모는 1237만t으로 개발도상국의 10.8%를 차지한다. 기업들의 관심이 늘자 최근 탄소배출권 컨설팅 회사도 여럿 생겨났다.에너지관리공단의 우재학 기후대책실 팀장은 "앞으로는 다른 개발도상국의 CDM 프로젝트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며 "향후 감축의무를 질 경우에 대비해 시장을 선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물산과 포스코 등이 이미 말레이시아 등 개발도상국의 CDM 투자산업에 뛰어들기 위해 준비작업 중인 것으로 알려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