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협상 단기적 유ㆍ불리로 성패 판단해선 안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을 공개한 뒤 사회 일각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미 양국이 동시에 공개한 협정문에 독소 조항들이 여럿 들어있다는 것이다.
농산물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발동요건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고,자동차 세제를 배기량 기준으로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협정문의 일부 조항들이 우리에게 불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불리해 보이는 조항들은 다른 유리한 조항들과 연계돼 있는 경우가 많고,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으로 판명이 나는 '쓴 약'들도 많다.
관세와 비관세장벽 등 수입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들이 미국의 압력에 밀려 줄어들게 됐다는 이유로 한·미 FTA가 '실패한 협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수입 규제를 줄이는 것을 실패라고 한다면 실은 더 많이 실패하는 것이 낫다.
주고 받는다는 협상의 논리가 자유무역이라는 큰 목표와 이익에 대한 일종의 착시를 부르는 것이다.
◆교류와 교역의 문명사
인간이 발전을 이뤄낸 것은 문와와 상품의 교환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교역이 언제나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폭력과 전쟁과 같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경우가 더 많았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 결과는 참담했다.
고대 철기문명은 청동기문명에 속해있던 종족들을 말살하고 대체하는 방식으로 확산됐다.
동서양 문명의 대교류는 징기스칸의 말발굽 아래 이뤄졌다.
근대 자본주의 문명 역시 함포를 앞세운 제국주의의 강제 문호개방으로 확산됐다.
교류와 교역의 문명사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서서히 시장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약탈을 거래로 바꾼 것이 바로 무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역 체제도 더욱 안정되었다.
협상과 합의를 통한 문물 교역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개방과 동등대우를 원칙으로 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가 1947년 출범하게 됐고,1995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체제로 업그레이드 됐다.
최근에는 특정한 두 나라가 맺는 FTA가 WTO 체제를 보완하고 있다.
◆개방된 문명이 앞서나간다
교류와 교역을 하지 않는 문명은 정체된다.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아메리카 대륙이 당시 유럽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은 지리적인 요인 등으로 교류와 교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밀 쌀 보리와 같은 우수한 작물,소 말 양과 같은 가축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전해지지 않았고 가축화 이후 발병하게 된 전염병균도 아메리카에 유입되지 않았다.
철기 문명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결과,아메리카 대륙은 총과 말,병원균으로 무장한 유럽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우리나라도 다를 게 없다.
조선은 다른 문화를 수용하고 교역을 추구하기 보다는 유교 경전의 문구 해석에 매달렸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질서에 집착했다.
교류와 교역을 의미하는 상(商)을 맨 아래로 뒀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인과응보(因果應報)였는지도 모른다.
한때 유럽을 훨씬 앞질렀던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던 것도 중화사상과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에 빠져 다른 문명과 문물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종이와 화약 나침판을 모두 발명한 중국이 19세기 제국주의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됐던 것은 다른 문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적인 발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약소국에도 시장개방이 유리하다
시장개방은 강대국 뿐만 아니라 약소국에도 유리하다.
열위(劣位)에 있다 하더라도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주장은 얼핏 이상하게 들리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된 명제다.
굳이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훨씬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약소국도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본다'는 비교우위론도 직관을 거스르는 주장임은 분명하다.
열위에 있는 산업이나 문명은 시장개방과 함께 몰락하게 된다.
청동기 문명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철기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시장을 서로에게 개방하면 한국 농업이 일순간에 피해를 당할 수 있고,미국 섬유업계도 초토화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농민과 그 가족들은 경쟁력있는 산업으로 이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섬유 노동자들도 당장 실업의 고통을 겪지만 다른 분야의 취업이 늘어나면서 소득과 근로여건이 훨씬 개선된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이 시장을 개방한 뒤,농업 등 특정 분야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이같은 시장개방의 긍정적인 효과들 때문이다.
◆용기있는 지식인의 역할은
교역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과 문명은 한 국가와 사회의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로마제국,몽골제국,대영제국과 미국 등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들은 외부의 문명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당장의 피해를 봤지만,이들이 경쟁력있는 분야로 옮겨가거나 새로운 인력으로 대체되면서 강대국이 됐다.
사회문화적으로도 다문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서로의 장점을 취해가면서 끊임없이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뒤처지는 집단과 사람들에게 시장개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할 말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기업들이 콜센터나 연구시설을 인건비가 싼 해외(offshore)로 이전하는 것은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하는 것"이라며 "아웃소싱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2004년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왔었다.
당시 그레고리 맨큐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 의장('맨큐의 경제학' 저자,하버드대 교수)은 "아웃소싱은 미국 경제에 이득이 된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자리를 인도 노동자에게 빼앗기고 있는 미국 노동자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맨큐의 얘기는 맞는 말이다.
그것을 통해 인도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합의문을 공개한 뒤 사회 일각에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한·미 양국이 동시에 공개한 협정문에 독소 조항들이 여럿 들어있다는 것이다.
농산물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발동요건이 지나치게 제한돼 있고,자동차 세제를 배기량 기준으로 되돌리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협정문의 일부 조항들이 우리에게 불리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불리해 보이는 조항들은 다른 유리한 조항들과 연계돼 있는 경우가 많고,시간이 지나면 우리에게 득이 되는 것으로 판명이 나는 '쓴 약'들도 많다.
관세와 비관세장벽 등 수입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들이 미국의 압력에 밀려 줄어들게 됐다는 이유로 한·미 FTA가 '실패한 협상'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수입 규제를 줄이는 것을 실패라고 한다면 실은 더 많이 실패하는 것이 낫다.
주고 받는다는 협상의 논리가 자유무역이라는 큰 목표와 이익에 대한 일종의 착시를 부르는 것이다.
◆교류와 교역의 문명사
인간이 발전을 이뤄낸 것은 문와와 상품의 교환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교역이 언제나 평화적인 분위기에서 이뤄졌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폭력과 전쟁과 같은 강제적인 방식으로 이뤄진 경우가 더 많았다.
단기적으로 보면 그 결과는 참담했다.
고대 철기문명은 청동기문명에 속해있던 종족들을 말살하고 대체하는 방식으로 확산됐다.
동서양 문명의 대교류는 징기스칸의 말발굽 아래 이뤄졌다.
근대 자본주의 문명 역시 함포를 앞세운 제국주의의 강제 문호개방으로 확산됐다.
교류와 교역의 문명사는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서서히 시장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약탈을 거래로 바꾼 것이 바로 무역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무역 체제도 더욱 안정되었다.
협상과 합의를 통한 문물 교역이 본격화됐다.
그 결과,개방과 동등대우를 원칙으로 한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eneral Agreement on Tariffs and Trade) 체제가 1947년 출범하게 됐고,1995년에는 WTO(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체제로 업그레이드 됐다.
최근에는 특정한 두 나라가 맺는 FTA가 WTO 체제를 보완하고 있다.
◆개방된 문명이 앞서나간다
교류와 교역을 하지 않는 문명은 정체된다.
콜럼버스가 발견(?)했다는 아메리카 대륙이 당시 유럽에 비해 크게 뒤처진 것은 지리적인 요인 등으로 교류와 교역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밀 쌀 보리와 같은 우수한 작물,소 말 양과 같은 가축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전해지지 않았고 가축화 이후 발병하게 된 전염병균도 아메리카에 유입되지 않았다.
철기 문명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 결과,아메리카 대륙은 총과 말,병원균으로 무장한 유럽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우리나라도 다를 게 없다.
조선은 다른 문화를 수용하고 교역을 추구하기 보다는 유교 경전의 문구 해석에 매달렸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질서에 집착했다.
교류와 교역을 의미하는 상(商)을 맨 아래로 뒀던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은 인과응보(因果應報)였는지도 모른다.
한때 유럽을 훨씬 앞질렀던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던 것도 중화사상과 사농공상의 신분질서에 빠져 다른 문명과 문물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종이와 화약 나침판을 모두 발명한 중국이 19세기 제국주의에 의해 처절하게 유린됐던 것은 다른 문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한 창조적인 발전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약소국에도 시장개방이 유리하다
시장개방은 강대국 뿐만 아니라 약소국에도 유리하다.
열위(劣位)에 있다 하더라도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이득이 된다는 주장은 얼핏 이상하게 들리지만 역사적으로 증명된 명제다.
굳이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의 '비교우위론'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천동설보다 훨씬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것과 마찬가지로 '약소국도 자유무역으로 이득을 본다'는 비교우위론도 직관을 거스르는 주장임은 분명하다.
열위에 있는 산업이나 문명은 시장개방과 함께 몰락하게 된다.
청동기 문명이 일시에 무너지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철기 문명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이 시장을 서로에게 개방하면 한국 농업이 일순간에 피해를 당할 수 있고,미국 섬유업계도 초토화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농민과 그 가족들은 경쟁력있는 산업으로 이동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마찬가지로 미국 섬유 노동자들도 당장 실업의 고통을 겪지만 다른 분야의 취업이 늘어나면서 소득과 근로여건이 훨씬 개선된다.
미국 일본 한국 등 주요 국가들이 시장을 개방한 뒤,농업 등 특정 분야의 일자리가 줄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일자리가 크게 늘어난 것은 이같은 시장개방의 긍정적인 효과들 때문이다.
◆용기있는 지식인의 역할은
교역을 통해 새롭게 등장하는 산업과 문명은 한 국가와 사회의 강력한 힘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로마제국,몽골제국,대영제국과 미국 등 세계를 제패했던 나라들은 외부의 문명과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초강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뒤떨어지는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당장의 피해를 봤지만,이들이 경쟁력있는 분야로 옮겨가거나 새로운 인력으로 대체되면서 강대국이 됐다.
사회문화적으로도 다문화 사회가 훨씬 건강하다.
서로의 장점을 취해가면서 끊임없이 경쟁력을 향상시키기 때문이다.
경쟁력이 뒤처지는 집단과 사람들에게 시장개방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진정한 지식인이라면 할 말을 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한때 "기업들이 콜센터나 연구시설을 인건비가 싼 해외(offshore)로 이전하는 것은 일자리를 해외로 유출하는 것"이라며 "아웃소싱을 제한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2004년 일부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왔었다.
당시 그레고리 맨큐 백악관경제자문위원회 의장('맨큐의 경제학' 저자,하버드대 교수)은 "아웃소싱은 미국 경제에 이득이 된다"고 정면으로 반박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일자리를 인도 노동자에게 빼앗기고 있는 미국 노동자에게는 분통이 터지는 일이지만 맨큐의 얘기는 맞는 말이다.
그것을 통해 인도 경제가 성장하는 것도 우리가 직시하고 있는 현실이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