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당국, 전교조ㆍ민노총 의식해 학교배포 포기

"주문 요청 쇄도"…지금이라도 보급확대 나서야

☞한국경제신문 5월25일 A1면

전국경제인연합회는 24일 교육인적자원부와 공동으로 개발한 '차세대 경제 교과서'를 일선 교사와 학생들에게 직접 배포하기로 결정했다. 교과서가 만들어진 후 교육부가 첨부한 노동계 입장을 담은 부록은 아예 빼기로 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지난 3월 신학기 시작 때 책자를 배포하려다 교육부가 일부 수정 작업을 요청해 배포를 미뤄왔다"며 "하지만 일선 학교 교사와 학생,학부모,학원강사들의 요청이 빗발쳐 더 이상 배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전경련은 교과서를 홈페이지(www.fki.or.kr)에 게재,교사와 학생들이 쉽게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 책자로 된 경제 교과서가 필요하다는 요청이 들어올 경우 수량에 제한 없이 무료로 나눠줄 계획이다.

전경련의 이번 결정은 교육청 도서관 등에만 비치하고 일선 학교에는 배포하지 않겠다는 교육부 방침에 맞서는 것이어서 정부와의 갈등도 예상된다.

차세대 경제 교과서는 전경련과 교육부가 체결한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에 따라 한국경제교육학회에 집필을 위탁해 지난 2월 만들어졌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진보 성향의 단체들이 '지나치게 친기업적'이라며 철회할 것을 요구하자 교육부는 노동계의 시각이 담긴 보충자료를 첨부해 일선 학교가 아닌 교육청 도서관 등에만 교과서를 배포하는 것으로 입장을 바꿨다.

송형석/유창재 한국경제신문 기자 clic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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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로 읽는 경제학] 학교에 배포 안하는 경제 교과서 왜 만들었나?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공동 개발한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모형'의 배포를 둘러싸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 책이 연구보고서,이른바 교과서 모형이라는 이유로 학교는 제외하고 시·도 교육청과 공공도서관,교원연수원 등에만 1500권을 배포했다. 이에 대해 전경련은 "교육부가 2006년 2월 체결한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을 어겼다"며 독자적으로 교사와 학생들에게 경제교과서를 배포하고 나섰다. 말하자면 정부 당국과 재계가 교과서 배포문제를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우리나라 초·중등 교과서가 부실하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내용이 균형을 잃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학생들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서술 또한 허다한 실정이다.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한 교과서 및 교육 자료의 발간이 시급한 과제임을 잘 확인해주는 대목이다.

정부와 재계가 협약을 맺고 수천만원을 들여 새로운 경제교과서 모델을 직접 개발하고 나선 것도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다.

사정이 이런데도 교육 당국이 애써 만든 경제교과서 모형을 정작 일선 학교와 학생들에게는 배포하지 않는다면 국민이 과연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전교조 "편향된 책자가 교육용으로 배포돼선 안돼"

전교조 등은 헌법을 부정하는 내용이 들어있을 뿐 아니라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앞세운 전경련 책자가 교육용 도서라는 꼬리표를 달고 학교에 배포되어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결코 확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전경련은 애초부터 반시장ㆍ반기업적 내용을 바로잡겠다고 나서다 보니 교육적 차원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신자유주의적인 주류경제학의 입장만 부각됐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경련이 책자를 학교에 배포하지 않기로 한 교육 당국의 조치를 무시하고 교과서 배포를 결정함으로써 경제교육에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공개사과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마디로 전경련은 더 이상 교과서 문제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이들은 또 전경련이 배포하고 있는 책자를 일선 교육기관이 수령하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지침을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를 계기로 올바른 경제교과서와 교육과정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사회적 교육과정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경련 "교과서 주문 요청 쇄도 더 이상 방치못해"

이에 대해 전경련은 일선 고교 교사를 비롯 학부모,학생들로부터 차세대 경제교과서 주문 요청이 쇄도함에 따라 더 이상 배포를 미룰 수 없다고 판단,직접 책자 배포에 나섰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교육부가 도서관 등에 교과서 배포를 중단한다면 일반인에게 제대로 된 책자를 널리 보급하려던 당초 취지가 빛이 바랠 수밖에 없어 독자 배포계획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특히 당초 일선학교의 학습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새 교과서를 교육부가 시·도 교육청 및 연구기관,도서관 등에만 배포함으로써 논란이 빚어졌다는 점을 새겨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을 의식해 일선 학교에 배포키로 한 당초 약속을 깨뜨린 교육부의 잘못이 크다는 것이다.

더욱이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이념적 편향성을 배제하고 시장경제원리를 학생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시장경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국, 교과서 배포 막을 게 아니라 보급 확대 나서야

교육당국은 올초 한국경제교육학회가 교과서 개발을 마친 뒤 자료를 공개할 때만 해도 전국 고교에 1부씩 보급해 학생지도에 활용토록 하겠다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전교조 민주노총 등이 '친기업적' 내용이라고 비판하자 발행기관의 이름을 바꾸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분배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내용을 부록으로 끼워 넣어 '누더기 교과서'를 만들더니 급기야 일선 고교를 배포 대상에서 제외시켜 버렸다. 이러고도 어떻게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하겠다는 건지 기가 막힐 지경이다.

우여곡절 끝에 전경련이 배포에 나선 만큼 새 경제교과서를 둘러싸고 더 이상의 논란이 벌어져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시장경제를 지향하고 있다면 교육 당국은 일선 학교에 교과서 배포를 막을 일이 아니라 오히려 보급 확대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은 시장경제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기 때문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차세대 고등학교 경제교과서=전국경제인연합회와 교육인적자원부가 2006년 2월 체결한 ‘경제교육 내실화를 위한 공동협약’에 따라 1년간의 공동작업을 거쳐 완성한 것으로,경제생활과 경제문제,시장경제의 이해,생산활동과 분배,국민경제의 성장과 변동,세계시장과 국제 거래 등 총 5장으로 짜여져있다.

노동계 등에서 ‘친자본 반노동’내용이라며 반발하자 교육부는 시장경제에 비판적인 10가지 읽기자료를 부록으로 첨부하는 한편 교과서로 오인하지 않도록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연구’라는 이름을 붙이도록 했다.

교육부는 수정작업이 필요하다며 당초 배포계획(3월 신학기)을 지연시켜 오다 결국 학교는 제외하고 산하기관 등에만 배포했다.

이에 맞서 전경련도 읽기자료를 뺀 교과서원안을 일선 학교 등에 배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