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 100호 기획의 하나로 이번 주부터 '기브리의 논술비타민'을 연재합니다.

부산 사직고의 김재우 선생님이 '기브리'(ghibli,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라는 필명으로 직접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쌓아온 논술 해법을 소개합니다.

'기브리' 선생님은 부산대 사범대와 대학원(국어교육)을 나와 현재 부산교육청 논술지원단과 생글생글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브리의 논술비타민'은 독자 여러분의 논술실력을 키우는데 비타민과 같은 역할을 할 것입니다.

많은 성원을 바랍니다.

▶전국의 선생님들께 이 지면을 개방합니다.

좋은 자료가 있으시면 언제든 저희에게 이메일(nie@hankyung.com)을 주십시오.채택된 분들께는 소정의 원고료도 드립니다.


서울대를 지원하는 한 학생의 답안을 첨삭 지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 학생의 답안 5편이 모두 '서론-본론-결론' 형식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그것도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모 학원의 서울대반에서 첨삭 지도를 받으며 작성했다는 답안이…. 논술시험일까진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서론-본론-결론'이라는 형식을 부수는 것이 시급했다.

문제 중, '死刑制度 유지 바람직한가…'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의 논지는 '사형제도는 존속시켜야 한다'였다.

학생의 답안 서론에서는 '오늘날 사형제도가…', 결론에서는 '정부는 하루 속히…'라는 억지로 형식에 맞추기 위해 쓴 흔적이 역력했다.

학생으로 하여금 서론과 결론을 삭제하게 하고, 대신 그 분량만큼 논거를 한 두 개 더 들라고 했다.

별로 생각나는 논거가 없단다.

읽은 책 중에서 관련성이 있는 예를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럼 만화나 영화 중에서라도 찾아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조심스럽게 일본 만화인데 괜찮겠느냐고 한다.

데스노트(Death Note) (오바 쓰구미 글, 오바타 타케시 그림)라는 만화를 제시한다.

주인공이 저승에 데려갈 사람의 이름을 적으면 그 대상자는 이내 죽게 된다는 노트를 저승사자로부터 얻게 되어 주로 악인들을 제거한다는 내용이었다.

원더~풀! 이 얼마나 멋진 논거인가!

수험생들은 수많은 논술 교재나 강의에서 글쓰기는 '서론-본론-결론'이라는 형식을 강요받는다.

심지어 논술 지도교사 연수에서도 '서론 쓰는 법', '본론 쓰는 법', '결론 쓰는 법' 을 몇 시간에 걸쳐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니 더 이상 말씀해 무엇 하리오.물론 몇몇 대학의 논술고사에서는 이런 '서론-본론-결론'이라는 형식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글의 시작을 부드럽게 해주기 위해 짤막하게 도입 문구를 쓰는 것은 무방하겠지만, 틀에 얽매인 형식의 글쓰기 병은 이미 고황에 이르렀으니 이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지난 2월 서울대나 연세대에서 실시한 통합논술 형태의 모의 논술고사에서는 완결된 형태의 통글이 아니라,문제에 대한 서술식의 짧은 답안을 요구했다.

즉 문제에서 요구한 사항만 순서대로 쓰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슨 서론이 있고 결론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서론-본론-결론'의 고정된 형식의 답안을 고집한다면,대부분의 채점 교수님들은 학원 냄새가 솔솔 풍긴다면서 아주 싫어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2500자 정도의 긴 분량의 논술에서도 '서론-본론-결론'은 안 된단다.

이것은 2007년 서울교육청 주관 논술강사요원 연수와 부산논술동아리팀장 세미나 등에서 서울대 논술출제 교수님이나 채점 교수님들이 이미 수차례 지적해온 사항이다.

앞으로의 논술 형식은 통합논술이다.

여기서 통합논술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겠다.

그런데 통합논술에서 요구하는 답안의 형식은 완결성을 갖춘 글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핵심 중심의 글쓰기다.

여기서는 어쩌면 '정답'에 가까운 답안이 있다는 것이다.

대학 측에서는 애써 이를 부인해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출제한다고 하지만 한가로운 글쓰기를 할 여유는 없다.

요즘 논술고사가 자꾸 본고사 논란에 휘말리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통합논술의 가장 큰 승부처는 출제자들의 의도가 무엇인지 파악해 출제자의 마음에 쏙 들도록 쓰는 데 있다.

그러므로 답안도 '서론-본론-결론'의 완결된 형식의 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올해엔 논술고사에서 대부분의 대학들이 문항당 100~800자 정도의 짧은 글쓰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론-본론-결론'을 고집한다는 것은 競爭率만 높여주고 장렬하게 戰死하고, 불합격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명심해야 한다.

김재우 부산 사직고 선생님 ghibli58@hanmail.net

<한자읽기>

序論(서론), 結論(결론), 死刑制度(사형제도),競爭率(경쟁률), 戰死(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