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사 속 출발했지만 현실 맞지 않아 폐지

대한민국의 대다수 고등학생은 미국 학생들처럼 자신이 듣고 싶은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서 듣는 수업을 꿈의 수업으로 생각할 것이다. 부산의 한 고교는 2005년 학생들이 보충학습을 선택할 수 있는 선택형 이동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은 예체능 과목도 선택할 수 있었고 방학에는 기체조, 다도교육, 천연 염색 등 다채로운 과목을 접할 수 있었다. 지역 교육을 선도한다는 찬사와 칭찬을 한몸에 받아 온 이 학교는 올해 초 2년간 진행해 온 선택형 보충수업을 중단했다. 왜 이 학교가 일반 보충수업 체제로 발길을 돌렸을까?

첫째,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1학년도 2, 3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고 2, 3학년도 1학년 수업을 들을 수 있지만 예를 들어 1학년 수학 수업은 상, 중, 하로 나눠져 있지 않았다. 따라서 실력이 다른 학생들끼리 섞여 수업을 받게 돼 가르치는 선생님이나 수업을 받는 학생 모두 힘들 수밖에 없었다. 부산 모고교 2학년 J양은 "수학 기초를 쌓으려고 1학년 수업에 들어갔으나 잘 알아듣지 못해 결국 별도의 사교육을 받았다"고 털어 놓았다. 둘째, 각종 분실 사건이다. 선택형 보충수업은 대부분 이동수업이어서 소지품을 잘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책상에 있는 책, 신발장에 있는 신발의 도난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고교 2학년 K양은 1학년 때 자습서 5권을 몽땅 잃어버려 정말 속상했다고 한다. 물론 책을 서랍에 넣지 않고 책상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잘못이 크지만 책을 잃어버리고 나니 모든 아이들이 도둑처럼 보여 힘들었다고 말했다.

셋째, 인기 있는 선생님, 인기 있는 강좌에만 학생이 몰리는 문제다. 아무리 실력이 있어도 학생들의 구미에 맞지 않는 선생님은 수업을 할 수 없게 된다. 2학년 O양은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선생님의 강좌를 듣고 싶었는데 신청 시간을 놓쳐 들을 수 없었다면서 결국 다른 수업에서 시간만 헛되게 보냈다고 말했다. 같은 학교 L양은 '배운 내용이 시험에 출제되지 않아 아이들이 대충대충 듣기 일쑤였다"며 "일반형 보충수업으로 전환한 게 더 나은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학생은 "그래도 과목을 선택할 수 있고 또 공부가 지루할 땐 예체능 과목을 들으며 스트레스도 풀고 평소 배울 수 없는 다도교육도 배울 수 있었는데 그런 기회가 없어져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모처럼 시도한 선택형 보충수업이 비체계적인 시스템으로 결국 1년여 만에 막을 내렸다. 학교는 이제 학생들의 자율권을 넓혀 줄 수 있는 새로운 보충수업의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다.

배수지 생글기자(부산서여고 2년) mint378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