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쟁이라도 프로라면 당당하다"

[한국의 CEO 나의 청춘 나의 삶] (34) 황두열 한국석유공사 사장
1978년 초 황두열 대한석유공사(약칭 유공, 현재는 SK㈜) 부장은 속이 따끔거려 병원을 찾았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위궤양. 의사는 "하시는 일이 뭡니까"라고 물었고 황 부장은 "영업맨입니다"라고 답했다. 의사가 "그럼 술 담배도 많이 하시겠네요"라고 건넸고, 황 부장이 "그렇습니다"라고 하자 지체 없이 수술에 들어갔다. 영업맨을 이대로 둬서는 큰 탈이 나겠다는 판단으로 위의 3분의 2가량을 절제했다. 그리곤 "앞으로 술을 끊으시고 식사를 소량씩 하루에 여섯 번 나눠 드십시요"라고 처방했다.

황 부장은 처음엔 의사 지시대로 했다. 하지만 석 달 정도 지나니 이렇게 해서는 회사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루종일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식사는 예전처럼 하루 세 끼로 돌아갔고 술잔도 다시 들었다. 그는 이후 회사에서 승승장구해 SK㈜대표이사 부회장까지 올라갔으며 현재 공기업인 한국석유공사 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다행히도 지금껏 위는 별 탈이 없다.

황 사장의 직장생활은 이렇듯 치열했다. 1968년 직장에 입사했으니 40년 가까이를 월급쟁이로 살았으며 그 중 30년 정도를 영업맨으로 지냈다. 황 사장의 영업맨 기틀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이미 다져지기 시작했다.

"아버지께서 경주와 울산에서 이런저런 사업을 하셨어요. 양화점도 하셨고 서점도 하셨죠. 제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울산에서 청과상을 하셨습니다. 과일가게죠. 도매도 하고 소매도 하고. 저는 학교 끝나고 장사하시는 것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때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부친을 도왔으니 한 5년되나요. 제 영업맨 30년은 사실 그 때 시작된 것입니다."

황 사장은 어릴 적부터 생각이 깊었고 효심이 강했다. 중학교에 입학할 때 사립학교를 지원했다. 울산중학교다. 당시 울산에선 울산제일중학교가 공립이며 남자학교였다. 울산중학교는 사립에다 여학생이 여섯 반,남학생이 두 반으로 여학교에 가까웠다. "입학시험 쳐서 1~3등까지는 입학금을 면제해 준다고 해서 지원했습니다. 그거라도 아끼면 집에 보탬이 될까 생각했습니다. 저희 집이 7남매여서 부친께서 다소 어려워하신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중학 동창회에 가보니 완전히 여학교(울산 학성여중)로 바뀌어 있더군요. 고등학교를 부산상고를 간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의 학창시절 꿈은 철학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 상고를 다니다보니 한 손에는 주판을 끼고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른 손엔 미학, 논리학, 인식론 등 철학 서적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그는 학군장교(ROTC)로 군 복무를 마친 뒤 대한석유공사에 입사했다. 석유를 독점판매하는 공기업이었다. 회사는 상고와 상대(부산대 경영학과 출신) 출신에다 군에서 경리장교를 지낸 그를 재무 부서로 보냈다. 하지만 그는 영업 쪽으로 보내달라고 요구했다. "영업으로 안 보내주면 사표 낼 거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회사 관두면 회사 손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른 직장에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영업부로 갔지만 길은 평탄치 않았다. 호남정유(현재 GS칼텍스)가 시장에 진입하면서 입사 1년도 채 못돼 독점구조가 깨진 것이다. "호남정유는 신생에다 민간이니 마케팅을 참 나긋나긋하게 잘 했습니다. 뻣뻣한 대한석유공사와는 달랐죠. 때문에 우리 회사 시장점유율이 계속 곤두박질치는 겁니다. 자고 일어나면 1%포인트씩 줄어드는 겁니다. 어떤 날엔 3%포인트가 떨어지기도 하더라구요. 1년 만에 점유율이 100%에서 65%로 추락했습니다. 그래서 밤낮으로 뛰어다녔죠. 주유소를 찾아가 우리가 달라지고 있다고 얘기하고요. 어떤 회사는 '대한석유공사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내걸기도 했지요. 거기를 무작정 찾아가 '이제 개과천선했습니다'라고 하소연하기도 했지요. 열심히 뛰어다닌 덕분인지 이후엔 점유율 하락을 막아냈습니다."

그 이후엔 승승장구였다. 입사 3년이 못 돼 과장으로 승진했으며 영업소장, 부장, 상무, 전무까지 달렸다. 사장을 거쳐 2001년엔 SK㈜ 부회장까지 올라갔으며 2005년 11월엔 한국석유공사 사장으로 발탁됐다. 직장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 선 것이다. 그는 비결에 대해 '운칠기삼(運七技三ㆍ운이 70% 재주는 30%)'이란 표현으로 겸손해 했다.

"그냥 묵묵히 일했어요. 외부 손님들과 만나기로 한 날엔 먼저 가고 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 자리를 정리하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직장 상사들의 일처리를 눈여겨 보고 장점을 배우려고 애썼습니다. 어떤 분께는 꼼꼼함을, 다른 분께는 투명하고 공정한 일처리를, 또다른 분께는 미래를 미리 대비하는 눈을 벤치마킹하려 노력했습니다."

황 사장은 40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을 조언했다.

"최고경영자(CEO)로 몇 년 지낸 뒤 나름대로 인재에 대한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우선 책임감이 강해야 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은 어떻게 해서라도 완수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거기다가 창의성이 있으면 금상첨화입니다. 기왕 하는 거 남들보다 다르게 더 좋게 하겠다는 의지지요.

월급쟁이라 하더라도 프로라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먹기 위해 사느냐, 살기 위해 먹느냐를 생각해보라는 얘기입니다. 하는 수 없이 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일을 함으로써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성취에 대해서 논하기보다 보수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답답합니다.

프로 월급쟁이라면 온갖 것을 다 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바람직합니다. 멋있게 살고 싶다는 맘을 계속 먹고 있으면 바람이 들어가서 오래 버티지 못합니다. 프로니까 굽신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맡은 업무를 당당하게 해 나간다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은 가급적 메인 스트림(main streamㆍ주류)에 있으라는 겁니다. 외곽에 있으면 성장에 한계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는 청소년들에게 '주도(酒道ㆍ술마시는 예절)'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직장생활을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상대방 얘기를 경청하려 애씁니다. 또 술을 잘 하지 못하는 사람에겐 절대 강권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즐기는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황 사장은 환갑을 훨씬 넘긴 나이(65)에도 불구하고 기업 경영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 한국석유공사를 10년 내 세계적 메이저 회사 반열로 올려놓을 주춧돌을 놓겠다는 각오다. 민간기업 CEO 출신답게 공기업의 체질을 바꿔놓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관리 및 지원부서를 줄이고 사업부서를 강화했다. 업무 결재 단계도 5단계에서 3단계로 축소했다.

"공기업도 기업입니다. 이익을 내지 못한다면 존재 이유가 없습니다. 자원개발 등의 분야에서 성과로 말하겠습니다."

박준동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jdpow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