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훈 < 한양대 명예교수ㆍ토목공학 >
☞한국경제신문 5월10일 A38면
외국, 특히 유럽을 가보면 도시 곳곳에 동상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는 높은 기둥 꼭대기에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다.
이는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함대를 물리친 승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광장을 트라팔가 광장으로 명명하고 거기에 광장 너머까지 멀리 내려다 보는 넬슨 동상을 세운 것은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인의 긍지와 우월감을 과시하고 후대에 알리고자 하는 영국인의 속셈일 것이다.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에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기념탑이 있고 16대 대통령 링컨 기념관에는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는 링컨의 조각상이 있다.
인간과 대통령의 표상이라 여겨지는,높이가 거의 6m에 이르는 링컨 대통령의 좌상(坐像) 조각 앞에 서면 압도하는 외경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동상을 세우고 기념물을 건립하는 것은 훌륭한 업적을 부각시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이를 후대에 알려 위대한 업적을 계승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이런 위인들의 업적에는 가려진 어두운 면 역시 있다.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미국 남북전쟁을 이끈 당사자로 62만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97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5년간 전 미국 국민을 피폐와 고통의 소용돌이로 넣은 장본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고통의 감내를 이끈 링컨과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노예 해방과 오늘의 미합중국 탄생이 가능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철강왕' 록펠러 역시 당시 세계 제일의 부자로서 오늘의 미국을 건설하는 데 토대를 놓았지만 그가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기까지에는 독점 등 경쟁사를 파산에 이르게 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또한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를 설립해 미국 전역 기름사업의 90%를 지배하고 값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11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해체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현재의 엑슨모빌 등을 포함한 37개 회사로 분사(分社)되는 과정을 거쳤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내세운다면 훌륭한 사람이나 위인이 존재하거나 탄생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후대에도 동상이나 기념물이 헐리지 않고 남아 있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64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고 수출은 1억달러를 겨우 달성해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운 후진국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소득은 2만달러에 가까이 다가가고 수출은 3000억달러를 초과 달성해 세계 11대 교역국에 진입했다.
이에 힘입어 국가는 물론 개개인의 위상이 크게 높아져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140개가 넘는 신생국들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을 있게 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는 어떻게 해서 이뤄졌는가? 2차대전 이후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수출 주도의 산업화와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펴고 사학(私學)을 통한 교육진흥에 매진(邁進)한 결과라는 것에 이의를 달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인 사업을 성공리에 수행한 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훌륭한 업적이 어두운 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부정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고 귀중한 업적을 깎아내리고 과소평가해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후대(後代)에서 본받을 위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야 하는 길에는 목표가 있듯이 삶에도 지향하는 정신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때마침 최근 정부가 5만원과 10만원짜리 고액권 화폐를 2009년 상반기에 발행하겠다고 확정함에 따라 도안(圖案)에 담길 역사적 위인이 누가 될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위인은 받듦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어두운 면보다 훌륭한 업적을 내세우고 받드는 외국의 문화적 전통을 배우고 익히는 사회풍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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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보고 배울 위인 없는 나라는 불행하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36대 미국 대통령에 오른 린든 B 존슨(애칭 LBJ).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실패한 인물의 하나로 기록된다.
재임 중 '위대한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안으로 흑백 인종갈등, 달러가치 하락 등으로 몸살을 겪고, 대외적으론 베트남전 수렁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은 미국 역사상 첫 패전으로 기록되면서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텍사스주 오스틴의 텍사스대학교에는 도서관을 겸한 'LBJ 기념관'이 있다.
비록 존슨이 재임 중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그래도 나라를 이끈 지도자라면 기념하고 기억할 만하다는 이유에서 건립된 것이다.
텍사스주의 LBJ 기념관을 두고 다른 주 사람들이 시비 걸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이 칼럼에서 윤태훈 한양대 명예교수는 2차대전 이후 탄생한 140개가 넘는 신흥독립국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지도자들의 업적은 제쳐놓고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 깎아내리는 한국사회의 기이한 풍토를 비판한다.
해방 이후 9명의 대통령을 있지만 단 한 명도 기념관이 없다.
과(過)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문화이기 때문은 아닐까.
예컨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공로보다는 4·19혁명으로 강제 퇴임하기까지 말년의 권력욕만 부각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만큼 살 수 있게 한 경제개발의 크나큰 성과를 냈지만 민주화를 억압한 독재자로 더 비판받는다.
그 이후 국민들의 기억에 아직 생생한 대통령들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게 현실이다.
차라리 모든 대통령의 기념관을 만들면 어떨까.
좋은 면은 좋은 대로 부각시키고, 나쁜 면은 나쁜 대로 후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다른 분야에서도 진짜 위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각 분야 지도자로 부각되는 인물에게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등은 성인군자에 가까운 도덕률을 요구한다.
그러니 굴곡이 심했던 한국 근현대사 인물 가운데 위인으로 남아날 사람이 거의 없다.
과거 역사의 위인을 너무 신격화하는 것도 문제다.
성웅(聖雄)으로 받들어지던 이순신 장군도 실제론 계산이 빠른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복종하지 않는 부하를 매질하고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는 머리를 조아렸으며 정적들의 공격에 부심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후대가 기억한다고 해서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의 업적까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국민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현대사의 위인이 있다.
베트남인에게 호찌민, 중국인에게 저우언라이, 일본인에게 후쿠가와 유키치…. 우리는 누구를 꼽을 수 있나.
위인을 너무 신격화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폄훼해서도 곤란하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고 닮고 싶은 존재가 자꾸 나와야 한다.
그래서 윤 교수는 내후년 새로 발행할 5만원, 10만원권에 누구의 초상을 담을지 논의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위인관을 다시 숙고해보자고 권고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한국경제신문 5월10일 A38면
외국, 특히 유럽을 가보면 도시 곳곳에 동상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는 높은 기둥 꼭대기에 넬슨 제독의 동상이 있다.
이는 넬슨 제독이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나폴레옹 함대를 물리친 승리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광장을 트라팔가 광장으로 명명하고 거기에 광장 너머까지 멀리 내려다 보는 넬슨 동상을 세운 것은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인의 긍지와 우월감을 과시하고 후대에 알리고자 하는 영국인의 속셈일 것이다.
워싱턴 내셔널몰(National Mall)에는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미국 초대 대통령 워싱턴의 기념탑이 있고 16대 대통령 링컨 기념관에는 워싱턴 기념탑을 바라보는 링컨의 조각상이 있다.
인간과 대통령의 표상이라 여겨지는,높이가 거의 6m에 이르는 링컨 대통령의 좌상(坐像) 조각 앞에 서면 압도하는 외경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동상을 세우고 기념물을 건립하는 것은 훌륭한 업적을 부각시켜 감사와 존경을 표하고 이를 후대에 알려 위대한 업적을 계승시키기 위함일 것이다.
물론 이런 위인들의 업적에는 가려진 어두운 면 역시 있다.
링컨은 대통령으로서 미국 남북전쟁을 이끈 당사자로 62만명의 사망자를 포함해 97만명의 사상자를 내고 5년간 전 미국 국민을 피폐와 고통의 소용돌이로 넣은 장본인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고통의 감내를 이끈 링컨과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면 과연 노예 해방과 오늘의 미합중국 탄생이 가능했을지를 생각해야 한다.
'철강왕' 록펠러 역시 당시 세계 제일의 부자로서 오늘의 미국을 건설하는 데 토대를 놓았지만 그가 엄청난 부(富)를 축적하기까지에는 독점 등 경쟁사를 파산에 이르게 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일삼았다는 비난도 들어야 했다.
또한 록펠러는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Standard Oil Trust)를 설립해 미국 전역 기름사업의 90%를 지배하고 값을 임의로 결정할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911년 미 연방대법원에서 해체 판결을 내림으로써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는 현재의 엑슨모빌 등을 포함한 37개 회사로 분사(分社)되는 과정을 거쳤다.
역사적 인물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그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켜 내세운다면 훌륭한 사람이나 위인이 존재하거나 탄생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또한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후대에도 동상이나 기념물이 헐리지 않고 남아 있기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1964년 우리나라는 국민소득이 100달러가 채 되지 않았고 수출은 1억달러를 겨우 달성해 먹고 사는 것조차 어려운 후진국이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국민소득은 2만달러에 가까이 다가가고 수출은 3000억달러를 초과 달성해 세계 11대 교역국에 진입했다.
이에 힘입어 국가는 물론 개개인의 위상이 크게 높아져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탄생한 140개가 넘는 신생국들 중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낸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오늘을 있게 한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는 어떻게 해서 이뤄졌는가? 2차대전 이후 한국의 공산화를 막고 수출 주도의 산업화와 과학기술 진흥정책을 펴고 사학(私學)을 통한 교육진흥에 매진(邁進)한 결과라는 것에 이의를 달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러한 국가적인 사업을 성공리에 수행한 많은 지도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이들의 훌륭한 업적이 어두운 면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부정적인 것보다 더 중요하고 귀중한 업적을 깎아내리고 과소평가해 가치관의 혼란을 야기함으로써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 그리고 후대(後代)에서 본받을 위인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가야 하는 길에는 목표가 있듯이 삶에도 지향하는 정신적인 목표가 있어야 한다.
때마침 최근 정부가 5만원과 10만원짜리 고액권 화폐를 2009년 상반기에 발행하겠다고 확정함에 따라 도안(圖案)에 담길 역사적 위인이 누가 될지가 화두로 떠올랐다.
위인은 받듦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어두운 면보다 훌륭한 업적을 내세우고 받드는 외국의 문화적 전통을 배우고 익히는 사회풍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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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
보고 배울 위인 없는 나라는 불행하다
1963년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된 뒤 36대 미국 대통령에 오른 린든 B 존슨(애칭 LBJ).그는 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실패한 인물의 하나로 기록된다.
재임 중 '위대한 사회'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지만 안으로 흑백 인종갈등, 달러가치 하락 등으로 몸살을 겪고, 대외적으론 베트남전 수렁에 빠져들게 했기 때문이다.
베트남전은 미국 역사상 첫 패전으로 기록되면서 미국인들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혔다.
그러나 텍사스주 오스틴의 텍사스대학교에는 도서관을 겸한 'LBJ 기념관'이 있다.
비록 존슨이 재임 중 여러가지 문제점을 노출했지만 그래도 나라를 이끈 지도자라면 기념하고 기억할 만하다는 이유에서 건립된 것이다.
텍사스주의 LBJ 기념관을 두고 다른 주 사람들이 시비 걸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이 칼럼에서 윤태훈 한양대 명예교수는 2차대전 이후 탄생한 140개가 넘는 신흥독립국 중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룬 지도자들의 업적은 제쳐놓고 어두운 면만 부각시켜 깎아내리는 한국사회의 기이한 풍토를 비판한다.
해방 이후 9명의 대통령을 있지만 단 한 명도 기념관이 없다.
과(過)만 지나치게 강조되는 문화이기 때문은 아닐까.
예컨대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공로보다는 4·19혁명으로 강제 퇴임하기까지 말년의 권력욕만 부각됐다.
박정희 대통령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이만큼 살 수 있게 한 경제개발의 크나큰 성과를 냈지만 민주화를 억압한 독재자로 더 비판받는다.
그 이후 국민들의 기억에 아직 생생한 대통령들은 장점보다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이는 게 현실이다.
차라리 모든 대통령의 기념관을 만들면 어떨까.
좋은 면은 좋은 대로 부각시키고, 나쁜 면은 나쁜 대로 후대가 기억할 수 있도록.
다른 분야에서도 진짜 위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각 분야 지도자로 부각되는 인물에게 정치권, 언론, 시민단체 등은 성인군자에 가까운 도덕률을 요구한다.
그러니 굴곡이 심했던 한국 근현대사 인물 가운데 위인으로 남아날 사람이 거의 없다.
과거 역사의 위인을 너무 신격화하는 것도 문제다.
성웅(聖雄)으로 받들어지던 이순신 장군도 실제론 계산이 빠른 철저한 현실주의자였다.
복종하지 않는 부하를 매질하고 명나라 장수 진린에게는 머리를 조아렸으며 정적들의 공격에 부심하기도 했다.
그런 사실을 후대가 기억한다고 해서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의 업적까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나라마다 국민이면 누구나 인정하는 현대사의 위인이 있다.
베트남인에게 호찌민, 중국인에게 저우언라이, 일본인에게 후쿠가와 유키치…. 우리는 누구를 꼽을 수 있나.
위인을 너무 신격화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폄훼해서도 곤란하다.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보고 배우고 닮고 싶은 존재가 자꾸 나와야 한다.
그래서 윤 교수는 내후년 새로 발행할 5만원, 10만원권에 누구의 초상을 담을지 논의하는 것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위인관을 다시 숙고해보자고 권고한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