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호주에서 열린 세계 수영선수권대회에선 한국의 수영 신동 박태환 선수에게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가 400m 우승에 이어 200m에서도 한국신기록을 내며 동메달을 거머쥐자 외신들은 세계 수영계의 샛별로 떠오른 박태환을 집중 조명했다.

국내 언론 역시 한국을 넘어 세계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의 소식을 연일 각종 수식어를 동원해 전했다.

그는 한국 수영계의 '기린아'였다.

'기린아'는 '어떤 분야에서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 앞날이 촉망되는 젊은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재계의 기린아 ○○○' '문단의 기린아 △△△' '올해 코스닥시장의 기린아인 ×××'식으로 사람뿐 아니라 회사 등 단체에도 쓰인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회사를 가리켜 말할 땐 신생 기업임을 나타낸다.

주로 '~의 기린아'꼴로 쓰이는 이 말은 한자로는 '麒麟兒'이다.

'기린아'에 쓰인 '기린(麒麟)'은 우리가 익히 아는 동물원의 기린(麒麟·giraffe)과 같으면서도 다른 말이다.

거기에는 사연이 있다.

본래 기린은 중국 고대로부터 전해오는, 성왕(聖王)이나 현자(賢者)가 이 세상에 나올 징조로 나타난다고 하는 상상 속의 짐승이다.

수컷을 뜻하는 기(麒)와 암컷을 의미하는 린(麟)이 결합돼 만들어진 '기린'은 춘추전국시대 이전부터 쓰였다고 한다.

몸은 사슴 같고 꼬리는 소 같으며 발굽과 갈기는 말과 같고 머리에 뿔이 나 있는 기이한 형상에 빛깔은 오색이다.

상상 속의 동물인 '기린'이 백수(百獸)의 영장이라는 점에서 걸출한 인물에 비유되고, 여기에 '아이 아(兒)'를 붙여 재능 있는 뛰어난 젊은이를 가리킨 데서 '기린아'란 말이 생겨났을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기린아'의 '기린'은 동물원에서 보는 기린과는 거리가 먼, 상상 속의 영물인 셈이다.

그런데 동물원의 'giraffe'가 '기린'이란 이름을 얻게 된 것은 중국 위정자들의 아첨의 산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다.

목이 긴 짐승인 '기린'이 중국에 들어온 것은 1414년 명(明)의 제3대 황제인 영락제(永樂帝) 때인데, 누군가 영락제를 성군으로 받들기 위해 당시 처음 보는 이 짐승을 가리켜 전설 속의 '기린'이 나타났다고 했다는 것이다(장진한, 『이젠 국어사전을 버려라』). 또 다른 해석은 'giraffe(지라프)'의 발음이 상상의 동물인 '기린'의 음과 비슷해 가차(假借)했을 것이라는 설도 있다.

어쨌거나 '기린아'의 기린과 동물원의 기린은 같으면서도 서로 다른 대상인 것이다.

'기린아'는 물론 '기린'에 접미사 '-아(兒)'가 붙어 만들어진 것이다.

'-아'는 신생아, 미숙아라고 할 때는 어린 아이를 나타내지만 풍운아, 행운아, 열혈남아 같은 데서도 알 수 있듯이 '(일부 명사 뒤에 붙어)장정 또는 젊은 사나이'의 뜻을 더하는 말이다.

이런 '-아'의 쓰임새로는 총아(寵兒:많은 사람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 돈아(豚兒:어리석고 철이 없는 아이라는 뜻으로, 남에게 자기의 아들을 낮추어 이르는 말) 같은 것도 있다.

북한에서는 '기린아'란 말을 쓰긴 하지만 '낡은 시대의 한자말'이라 해서 정책적으로 '버려야 할 말'로 분류해 놨다.

같은 연장선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남한에서도 최근 들어 '기린아'보다는 '유망주'란 말을 더 많이 쓰는 것 같다.

기린아이든 유망주이든 샛별이든 적절한 비유어는 글에 생동감을 불어넣어 준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