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사고때마다 폐지 여론
미국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이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도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이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한국인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국내에서 과도하게 예민한 문제로 급작스레 부상해 올랐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한 젊은이의 사회에 대한 광적인 불만,거짓 정의감 따위가 뒤엉켜 발생한 것이다.
보편적 한국인과 관련지어 판단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이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시각은 이 문제가 마치 한국인의 문제인 것 처럼 다루고 있다.
한국 교민들의 피해를 걱정하거나 '범인은 한국인'이라는 식으로 일제히 큰 제목들을 뽑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저널리스트협회(AAJA)'에서 "이번 사건을 인종주의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그런 접근법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조문 사절단을 보낸다고 법석을 떨었던 것 역시 비슷한 배경에서 나온 섣부른 움직임이다.
모든 문제를 민족 문제인 것처럼 이해하려 해왔던 일부의 협애한 사고 경향이 이번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인이거나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었다면 국내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럴 줄 알았다"거나,"그 민족은 원래 잔인하다"거나, 이라크 전쟁 혹은 여중생 사망사건까지 거론하며 거친 비난의 목소리들을 내놓지 않았을까.
일부에서는 미국 내 여론이 이번 사건을 인종문제가 아니라 총기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안도한다.
어쨌건 단일 총기사건으로서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이 총기소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도대체 왜 미국은 과감하게 이 악의 도구를 불법화하지 못할까? 총기 소지 문제를 좀 더 들여다 보자.
◆ NRA와 음모론
총기 판매상들의 연합체인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막강한 로비력이 미국의 정계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매우 쉽게 결론이 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NRA도 물론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한다.
미국의 대부분 법률은 이해단체들 간 로비라는 용광로를 거친다.
로비가 한쪽 방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총기를 반대하는 로비도 만만치 않다.
음모론은 사회 현상을 사악한 세력의 주도면밀한 음모의 결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하지만 음모론은 과학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의도 자체는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만사가 의도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 총기소지가 미국 민주주의 정신?
극단적으로 말해 일반인의 총기소지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spirit)과 관련된 문제이다.
미국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2조에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받을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1790년 발효된 연방헌법이 지나치게 국가의 권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진보적인 대표자들의 요구에 따라 발의된 것이 1791년의 수정헌법이다.
(로버트 달,『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 계약에 대한 이해 필요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제도가 있다.
대통령을 뽑을 때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당선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총기 합법화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몇 개 도시국가를 빼고는 로마공화정 이후 왕 없이 건국된 최초의 국가다.
군주 없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헌법제정회의의 구성원들을 부르는 말)은 특별한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 창의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존 로크다.
로크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 '계약'에 기초한 정부를 생각했다.
연방정부는 독립된 각 주(州)들 간 계약의 산물이다.
총기소지권은 연방정부가 무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우려에 기초한다.
연방정부의 권한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유사시에는 각 주가 민병대를 조직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존 하트 일리,『민주주의와 불신』)
연방정부가 독립된 각 주들의 계약이라면 각 주는 개인들의 계약이다.
각 주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때 각 개인은 이에 맞서 대항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총기소지의 정신이다.
계약은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 주체를 전제한다.
그래서 미국 헌법은 '무장할 권리를 국민에게 허용한다'고 하지 않고 '무장할 권리를 연방정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또 실제 미국의 거친 시골에서 총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웃이라고 해도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 총기논란의 몇 가지 쟁점
총기논란을 둘러싼 흥미로운 쟁점들을 숙지하는 것은 과학과 성찰을 중시하는 논술시험에 도움이 된다.
1.정말 총기는 사회문제일까?
총기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참극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정말 총기는 사회적 쟁점이랄 수 있을까? 과연 총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질문은 그 자체가 함정이다.
총을 맞고 사망한 사람을 모두 총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부터 문제다.
결론부터 말해 총기가 없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우발적 범행이나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어떤 통계는 총기 사고로 아이가 목숨을 잃을 확률은 100만분의 1 미만이라고 한다.
(스티븐 레빗 등,『괴짜 경제학』) 공사판 웅덩이에 빠져 죽는 경우도 이보다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러나 웅덩이를 사회문제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2."총기가 범죄를 억제할 수도"
총기옹호론자들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권총은 한때 평등자(equalizer)로 불렸다.
총기는 약자들의 열세(劣勢)를 한순간에 만회시켜 주는 고마운 도구로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 총기가 없더라도 총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남의 집 담을 넘을 수 없다.
총기 반대론자들은 총기 때문에 오히려 흉악범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은행에 걸려 있는 '무장경관 상주'라는 푯말이 좀도둑을 은행강도로 만들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을까.
3.반문명과 총기 반대
총기 반대론은 암묵적으로 총이라는 도구를 문제의 원인으로 단정한다.
총기 옹호론자들의 반격이 흥미롭다. '그럼 자동차를 불법화하라'는 것이다.
우습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자동차와 살인기계인 총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동차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도 초기에는 위험한 기계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규제된 경력이 있다.
영국에서는 한동안 기차도 거부의 대상이었다.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인간 두뇌에 이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꼬리를 물었다.
또 총이 아닌 식칼이라면 어떨까? 총기반대를 이런 반문명적인 주장과 구별하고 싶다면 비용과 효익을 따져봐야 한다.
비극적 사건일수록 더욱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eduhankyung.com
▶자세한 강의는 생글생글i(www.sgsgi.com)동영상으로
미국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이민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국도 큰 충격을 받는 모습이다.
사건 자체가 아니라 한국인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국내에서 과도하게 예민한 문제로 급작스레 부상해 올랐다.
이 사건은 처음부터 한 젊은이의 사회에 대한 광적인 불만,거짓 정의감 따위가 뒤엉켜 발생한 것이다.
보편적 한국인과 관련지어 판단하거나 비난할 이유는 전혀 없는 문제였다.
그럼에도 이 소식을 전하는 한국 언론의 시각은 이 문제가 마치 한국인의 문제인 것 처럼 다루고 있다.
한국 교민들의 피해를 걱정하거나 '범인은 한국인'이라는 식으로 일제히 큰 제목들을 뽑고 있다.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시아아프리카 저널리스트협회(AAJA)'에서 "이번 사건을 인종주의적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그런 접근법이다.
일부 정치인들이 조문 사절단을 보낸다고 법석을 떨었던 것 역시 비슷한 배경에서 나온 섣부른 움직임이다.
모든 문제를 민족 문제인 것처럼 이해하려 해왔던 일부의 협애한 사고 경향이 이번 사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인이거나 중국인 혹은 일본인이었다면 국내 여론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럴 줄 알았다"거나,"그 민족은 원래 잔인하다"거나, 이라크 전쟁 혹은 여중생 사망사건까지 거론하며 거친 비난의 목소리들을 내놓지 않았을까.
일부에서는 미국 내 여론이 이번 사건을 인종문제가 아니라 총기문제로 바라보고 있다고 안도한다.
어쨌건 단일 총기사건으로서도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이번 사건이 총기소지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을 촉발할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도대체 왜 미국은 과감하게 이 악의 도구를 불법화하지 못할까? 총기 소지 문제를 좀 더 들여다 보자.
◆ NRA와 음모론
총기 판매상들의 연합체인 NRA(National Rifle Association)의 막강한 로비력이 미국의 정계를 좌우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면 매우 쉽게 결론이 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NRA도 물론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로비를 한다.
미국의 대부분 법률은 이해단체들 간 로비라는 용광로를 거친다.
로비가 한쪽 방향으로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총기를 반대하는 로비도 만만치 않다.
음모론은 사회 현상을 사악한 세력의 주도면밀한 음모의 결과로 설명한다.
사람들은 음모론을 좋아하지만 음모론은 과학적 사고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의도 자체는 과학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세상만사가 의도대로 되어지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 총기소지가 미국 민주주의 정신?
극단적으로 말해 일반인의 총기소지는 미국의 민주주의 정신(spirit)과 관련된 문제이다.
미국은 권리장전(Bill of Rights)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수정헌법 2조에서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받을 수 없다'고 천명하고 있다.
1790년 발효된 연방헌법이 지나치게 국가의 권력을 강화했기 때문에 민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 진보적인 대표자들의 요구에 따라 발의된 것이 1791년의 수정헌법이다.
(로버트 달,『미국 헌법과 민주주의』)
◆ 계약에 대한 이해 필요
미국의 민주주의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몇 가지 제도가 있다.
대통령을 뽑을 때 더 적은 표를 얻고도 당선되는 것이 대표적이다.
총기 합법화도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은 몇 개 도시국가를 빼고는 로마공화정 이후 왕 없이 건국된 최초의 국가다.
군주 없는 새로운 정부를 만들면서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헌법제정회의의 구성원들을 부르는 말)은 특별한 창의력을 발휘해야만 했다.
그 창의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가는 존 로크다.
로크는 자유로운 개인들 간 '계약'에 기초한 정부를 생각했다.
연방정부는 독립된 각 주(州)들 간 계약의 산물이다.
총기소지권은 연방정부가 무력을 독점하는 것에 대한 우려에 기초한다.
연방정부의 권한이 국민의 자유를 침해하는 유사시에는 각 주가 민병대를 조직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돼 있다.
(존 하트 일리,『민주주의와 불신』)
연방정부가 독립된 각 주들의 계약이라면 각 주는 개인들의 계약이다.
각 주정부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때 각 개인은 이에 맞서 대항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총기소지의 정신이다.
계약은 스스로를 보호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 주체를 전제한다.
그래서 미국 헌법은 '무장할 권리를 국민에게 허용한다'고 하지 않고 '무장할 권리를 연방정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다'고 쓰고 있다.
또 실제 미국의 거친 시골에서 총 없이 하룻밤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이웃이라고 해도 몇 시간을 달려가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 총기논란의 몇 가지 쟁점
총기논란을 둘러싼 흥미로운 쟁점들을 숙지하는 것은 과학과 성찰을 중시하는 논술시험에 도움이 된다.
1.정말 총기는 사회문제일까?
총기는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참극을 만들어낸다.
그런데 정말 총기는 사회적 쟁점이랄 수 있을까? 과연 총기 때문에 사망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이 질문은 그 자체가 함정이다.
총을 맞고 사망한 사람을 모두 총기 때문에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부터 문제다.
결론부터 말해 총기가 없었더라면 피할 수 있는 우발적 범행이나 총기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그다지 많지 않다.
어떤 통계는 총기 사고로 아이가 목숨을 잃을 확률은 100만분의 1 미만이라고 한다.
(스티븐 레빗 등,『괴짜 경제학』) 공사판 웅덩이에 빠져 죽는 경우도 이보다 확률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러나 웅덩이를 사회문제로 삼는 사람은 많지 않다.
2."총기가 범죄를 억제할 수도"
총기옹호론자들의 주장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 역사적 뿌리가 깊다.
권총은 한때 평등자(equalizer)로 불렸다.
총기는 약자들의 열세(劣勢)를 한순간에 만회시켜 주는 고마운 도구로 여겨졌던 것이다.
실제 총기가 없더라도 총기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때문에 함부로 남의 집 담을 넘을 수 없다.
총기 반대론자들은 총기 때문에 오히려 흉악범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은행에 걸려 있는 '무장경관 상주'라는 푯말이 좀도둑을 은행강도로 만들었다고 말 할 수는 없지 않을까.
3.반문명과 총기 반대
총기 반대론은 암묵적으로 총이라는 도구를 문제의 원인으로 단정한다.
총기 옹호론자들의 반격이 흥미롭다. '그럼 자동차를 불법화하라'는 것이다.
우습다.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자동차와 살인기계인 총을 비교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자동차로 죽는 사람이 훨씬 더 많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동차도 초기에는 위험한 기계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규제된 경력이 있다.
영국에서는 한동안 기차도 거부의 대상이었다. 너무 빨리 달리기 때문에 인간 두뇌에 이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이 꼬리를 물었다.
또 총이 아닌 식칼이라면 어떨까? 총기반대를 이런 반문명적인 주장과 구별하고 싶다면 비용과 효익을 따져봐야 한다.
비극적 사건일수록 더욱 냉정하게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오태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slowforest@ed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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