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규 < 현대경제연구원 상무>

⇒한국경제신문 4월12일자 A38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타결 소식이 한국 경제의 큰 시름을 덜어주고 있다.

한·미 FTA가 성사됨에 따라 미국의 거대 시장과 선진 기술을 수월하게 활용할 수 있어 한국 경제가 일본과 중국의 압착 상태에서 헤어날 수 있는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한·미 FTA가 한국 경제의 장래를 저절로 보장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다.

경제 부문별로 FTA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수입 증가와 외화 유출과 같은 개방의 부작용만 커져서 한국 경제가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한·미 FTA의 실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시급히 해야 할 일은 철폐된 관세 장벽 효과를 바탕으로 국내 제품의 대미(對美) 수출을 확대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다.

미국 수입 시장은 규모가 1조7000억달러에 달해 세계 전체의 16%를 차지하는 세계 최대 시장으로 진출 매력이 매우 크다.

더욱이 미국 시장은 각 나라의 일류 상품들이 모여 치열한 경합을 벌이는 전 세계 상품 경쟁의 종착지다.

미국 시장에서의 승리는 한국 제품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첩경(捷徑)이 돼 미국 이외 시장을 개척하는 원동력이 된다.

한·미 FTA로 대미 무역수지의 적자 폭이 확대될 것이라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대미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려가야 한다.

아쉽게도 한국 제품은 그동안 미국 시장에서 갈수록 입지가 좁아져왔다.

한국의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대미 수출 비중은 1986년 40%에서 2006년에는 13%대로 낮아져 이전의 3분의 1로 축소됐다.

그 결과 미국 수입 시장에서 한국 제품이 점유하는 비율은 1980년대의 4%대에서 2000년대 들어서는 2%대로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한·미 FTA로 한국 상품에 대한 미국 관세가 낮아진 점은 국내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여줘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관세 효과만으로 국내 제품의 대미 수출이 크게 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국 현지 조사에서 한국 제품의 경쟁력이 가장 취약한 부문은 가격과 품질보다 현지 마케팅 능력인 것으로 지적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조사에서도 한국의 해외 마케팅 능력은 미국과 일본뿐만 아니라 홍콩,대만,싱가포르,말레이시아보다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미국 시장 내 경쟁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상황들을 정확히 파악해야 미국 시장의 문을 넓힐 수 있다.

이의 대표적 사례가 미국 시장에서의 경쟁이 각국이 생산한 개별 상품들의 단순한 가격과 품질 경쟁에서 상품의 제조 과정에 수반되는 자본, 부품, 기술 공급의 글로벌 네트워크에 바탕을 둔 비즈니스 모델 경쟁으로 변하고 있는 점이다.

세계 곳곳에 본거지를 마련한 미국 글로벌 기업들이 제품 생산 단계별로 연계한 각 현지 기업들과의 내부 거래,혹은 각국 기업 간 전략적 제휴에 의한 거래가 미국의 수출입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먼저 미국과 FTA를 맺은 캐나다, 호주, 싱가포르 등도 미국 기업과의 판매 및 기술 제휴와 같은 다양한 진출 전략을 수립해 미국 시장을 확대할 수 있었다.

미국 시장 확대의 관건은 결국 가격 조건의 개선을 토대로 마케팅 강화, 전략적 제휴와 같은 미국 현지에 적합한 진출 전략을 창출하는 데 있다.

일본은 미국과 FTA를 하지 않고서도 미국 자동차 시장의 30% 이상을 차지했다.

한·미 FTA는 단지 갈수록 하락하고 있는 한국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을 재반등시킬 수 있는 계기만 마련해 줄 뿐이다.

한·미 FTA를 통한 경제 선진화 기대 역시 정부 혁신 등을 통한 이전(以前)과 다른 차원의 경제 운영 방식을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이의 실현 여부는 매우 불투명하고 막연한 추측에 불과해진다.

그래서 일본의 세계적인 컨설턴트 오마에 겐이치는 한·미 FTA로 들떠 있는 한국에 "축배는 2주만 들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일침을 놓았다.

지금이 바로 현실로 돌아와 한·미 FTA의 기대 실익을 실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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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골 세리머니도 너무 길면 옐로 카드

이 칼럼을 읽다보면 10년 전 외환위기 당시 해외 언론들이 한국을 평가한 이야기가 자연스레 생각난다.

한국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렸다고….1995년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를 돌파하고, 이듬해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한국은 욱일승천의 기세로 마냥 뻗어갈 줄만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착각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소득 1만달러는 원화가치의 고평가가 빚어낸 착시였고, OECD 가입은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보증서가 아니라 그 문턱에 선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6·25 이래 최대 국난이라는 외환위기를 맞고서야 미몽에서 깨어났다.

지난 2일 타결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나라 현대 경제사에 분기점이 될 만큼 중요한 사건임에 틀림없다.

일본과 중국 사이에 끼어 허덕이는 '샌드위치 한국'으로선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피해를 보는 분야가 있겠지만 이득이 되는 분야도 많고, 국가 전체로는 세계 최고와 겨루면서 경쟁력을 높이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물론 경쟁력은 미국과 FTA를 한다고 그냥 높아지진 않는다.

그래서 FTA의 피해를 과장해도 안 되지만, 효과를 뻥튀기 하지도 말아야 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상무는 이 칼럼에서 한·미 FTA는 한국 경제의 장래를 저절로 보장해주는 보증수표가 아니라고 힘주어 말한다.

OCED 가입이 그랬듯이 한·미 FTA도 이제 커다란 변화의 시작일 뿐이다.

미국과의 교역에서 관세를 철폐한다고 해서 한국 상품의 없던 경쟁력이 살아나진 않는다.

고작해야 자동차의 경우 2.5% 가격인하 효과가 생길 뿐이다.

이는 일본,유럽 자동차 업체들이 미국 내 공장의 생산을 늘리거나 품질 개선을 통해 대미 수출 상품의 가격을 낮춰 만회할 수 있는 미미한 차이일 뿐이다.

일본의 자동차는 미국과 FTA를 하지 않고도 30% 이상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FTA는 뭔가 달라질 계기가 생기는 것이지, 그 자체가 결과는 아니란 이야기다.

이는 이득을 볼 것이라는 자동차 업종이나 손해를 볼 것이라는 농업이나 똑같다.

기회가 위기이고 위기가 기회인 셈이다.

따라서 FTA 불가론 못지않게 경계해야 하는 것이 FTA 만능론이다.

이미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 FTA를 맺었고, 무수한 다국적기업들이 미국 내 또는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들에 공장을 세워 관세를 피해 가고 있다.

한·미 FTA가 새로울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FTA를 안 맺었을 때 우리 수출 상품이 받게 될 불이익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지금이라도 맺었으니 다른 나라들보다 덜 손해보거나 사정이 나을 수 있는 선점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한·미 FTA와 관련해서 무수한 논란이 남아 있지만 좀 더 냉정해질 때가 됐다.

앞으로 국회 비준이라는 큰 산을 남겨놓고 있는데, 협상팀에 대한 과잉 칭송도 자제해야 한다.

협상을 얼마나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협정문이 공개되고 양국 간 비준이 완료된 뒤에 따져도 충분하다.

이제 한·미 FTA가 타결된 지 꼭 2주가 지났다.

축구의 골 세리머니도 그쯤 하면 됐다.

이제 어떻게 한 골을 더 넣을지, 어떻게 해야 골을 안 먹을지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