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신뢰·존경이 가족기업 성공 이끈다

작년 세계 2위 철강업체인 유럽의 아르셀로와 합병하면서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세계 철강업계 1인자가 된 미탈스틸에 세계 경영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올들어서는 한국 포스코에 대한 인수·합병(M&A) 가능성 때문에 더욱 주목받았다.

민감한 이슈가 조금 가라앉는 듯 하자 이번에는 미탈스틸의 가족경영,특히 부자(父子) 경영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사실 기업에서 가장 어려운 의사결정 중 하나는 최고경영자(CEO) 승계 문제다.

가족기업에서는 더욱 큰 고민거리다.

아버지는 권좌에서 물려나려 하지 않고 아들은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무리없이 경영권을 승계한 기업들도 적지 않다.

비즈니스위크 최신호(4월16일자)는 미탈스틸의 사례를 들며 철저한 승계 준비와 상호간 신뢰,존경 등이 가족기업의 안정성과 성공적 경영을 가능케 하는 요소라고 분석했다.

◆미탈과 아들의 협업

이제는 아르셀로미탈의 회장이 된 인도 출신 락시미 미탈(57)과 그의 아들 아디트야 미탈(31)은 M&A로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찰떡궁합을 자랑하고 있다.

현재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책임자(CFO)로 일하고 있는 아디트야는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을 졸업하고 아버지 회사에서 재무 관련 업무를 담당하며 M&A에 깊숙히 개입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숫자에 밝았던 아디트야는 지난 2001년 경기침체 국면에서 철강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하자 헐값에 이들 회사를 인수하면서 국제기구나 정부의 자금지원까지 받아냈다.

특히 미탈을 세계 1위로 도약하게 만든 아르셀로(룩셈부르크 철강업체)의 인수도 아디트야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비즈니스위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철강업체 인수 과정에서 아르셀로와 경쟁을 벌이다 인수가격이 40%나 높아진 경험을 한 아디트야는 앞으로 다른 M&A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아버지 락시미를 설득했다.

락시미는 아디트야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결국 아르셀로에 대한 적대적 M&A를 성공시켰다.

비즈니스위크는 락시미와 아디트야의 관계가 상호 존경과 권력 분점에 성공한 대표적 사례라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성공의 기반은 두 사람의 신뢰다.

아디트야는 "아버지와 하루 두차례 이상 전화 통화를 하는데 서로 이야기 하지 못하는 사안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락시미는 "아들의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그의 아이디어와 지적인 능력,새로운 제안,확신을 존중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관계가 이어지면서 아디트야가 락시미의 후계자가 될 것이란 전망에 의문을 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자 승계의 이점과 위험 요인

부자 승계의 이점 가운데 하나는 기업의 핵심 경쟁력이 잘 계승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이통통신 칩을 만드는 미국 퀄컴의 경우 창업자 어윈 제이콥스의 아들 폴 제이콥스가 경영권을 승계했는데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엔지니어인 폴은 기술 혁신에 매진해 비교적 좋은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다.

멕시코 재벌로 세계 3위 부자인 카를로스 슬림도 아버지의 성공 방정식을 이어받아 대박을 터뜨렸다.

그의 아버지는 멕시코 혁명 때 "절대 멕시코는 망하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멕시코시티 중심부의 땅을 사 큰 돈을 벌었다.

카를로스 슬림도 멕시코 정국 혼란과 내전 등 주요 고비 때마다 헐값에 기업을 사들였는데 어떤 기업은 매입가격 대비 3000배의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가족간 우애가 깊은 것으로 알려진 카를로스는 세 아들에게 회사 주요 직책을 맡기며 승계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미국 최대 케이블TV 사업자인 컴캐스트의 창업자 랄프 로버츠는 아들 브라이언에게 충분한 경영수업 기회를 준 뒤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넘겨줬다.

미국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는 두 딸과 아들에게 부동산 개발이나 관리 업무를 맡겨 승계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가족간 불화다.

호주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전처 소생의 장남 래클런을 매우 아꼈다.

그러나 래클런은 계모와의 알력으로 뉴스코퍼레이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존 데이비스 교수는 "가족 기업에서 통상 부모와 자식간에는 미묘한 긴장이 생길 수 있다"며 "개인적,감정적 이슈를 뛰어넘어 서로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자세를 가져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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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경영 기업이 오히려 수익성 더 높아

부자(父子) 등 가족이 경영하는 기업에 세계 투자자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단기적인 기업실적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전문경영인이 운영하는 회사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투자 등의 의사결정을 내리는 가족경영 기업이 더 높은 수익을 올린다는 조사 결과들이 많기 때문이다.

2005년 모건스탠리 조사에 따르면 S&P 500지수(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대기업 주가를 나타내는 지수)에 포함된 기업 중 가족경영 기업들의 2000~2004년 연평균 주가상승률은 4.4%로 집계돼 S&P 500 지수의 상승률을 앞질렀다.

2003년 발표된 한 연구자료에 따르면 이자와 세금,감가상각비를 빼기 전 이익인 EBITDA도 가족경영 기업이 일반 기업에 비해 6.65% 더 높게 나왔다.

애널리스트나 대학 연구원들이 연구 차원에서 주목했던 가족경영 기업에 사모펀드들의 투자도 늘어나고 있다.

엘리베이션 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가 작년 8월 세계적 경영잡지 포브스를 운영하는 포브스 가문의 보유 주식을 일부 인수키로 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프랑스 비즈니스스쿨인 인시아드의 랜들 카록 교수는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기업은 주당순이익 같은 요소에 주목하는 반면,가족경영 기업들은 다음 세대에 해야 할 사업,가문에 대한 주변의 평가,훌륭한 성과를 낸 투자사례 등 여러 가치들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가족경영 기업은 또 후손들을 통해 이어지고 기업 전략과 조율되면서 발전한다며 이는 일반 기업에선 찾아볼 수 없는 경쟁력이라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가족경영 기업으로는 월마트,매리어트호텔,뉴욕타임스,BMW,포르쉐,까르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