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래어표기법도 법

[돋보기 졸보기] 25. 슈퍼와 게놈‥수퍼맨은 없다
2004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미국의 영화배우 크리스토퍼 리브가 주연한 '슈퍼맨' 시리즈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끈 영화다.

만화를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1978년에 1탄이 나온 이후 2006년 5탄(슈퍼맨 리턴즈)이 나올 때까지 30여년간 변함없이 사랑받아왔다.

불사불멸인 이 슈퍼맨(superman)은 우리 말로 하면 초인(超人)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슈퍼맨뿐만 아니라 수퍼맨도 있다.

이는 물론 외래어 표기의 차이일 뿐 동일한 대상을 가리킨다.

이외에도 우리 주변엔 슈퍼마켓이 있는가 하면 수퍼마켓도 있고, 슈퍼스타와 수퍼스타, 슈퍼볼과 수퍼볼도 있다.

요즘 한창 인기 있는 신세대 스타 슈퍼주니어도 사람들은 수퍼주니어인지 헷갈려 하기도 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영어의 super를 어떻게 우리 글자로 옮기느냐에서 비롯된다.

super의 'u'는 사전적으로 발음이 '유'도 되고 '우'도 가능하다.

'슈퍼'는 영국식 발음이고 '수퍼'라고 하면 미국식 발음을 따르는 것이다.

사전에 앞뒤로 나란히 두 개의 발음을 보인 경우 앞의 것이 영국식, 뒤의 것이 미국식 발음이다.

우리 외래어 표기는 (최근에는 미국식 발음을 많이 채택하긴 하지만) 전통적으로 영국식 발음을 취해왔다.

그래서 지금도 '슈퍼'만이 바른 표기이다.

'슈퍼'를 단독으로 쓰든 합성어로 쓰든 마찬가지다.

한 단어로 '슈퍼'라고 할 때는 특히 '슈퍼마켓'의 준말로 쓰이기도 한다.

이 말이 다른 말에 비해 유달리 두 가지로 많이 표기되는 데는 언론의 잘못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일부 언론에서 규범을 따르지 않고, 미국식 발음이 실제 영어 발음에 가깝다는 이유로 자의적으로 '수퍼'를 고집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수퍼'를 쓰는 이들 신문은 사전에 오른 '슈퍼'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사사로운 관점을 자신의 독자들에게 주입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옳은 태도라 할 수 없다.

그 부작용이 너무 크다.

'게놈(Genom)'을 '지놈'으로 표기하는 것도 사적 신념을 미디어 언어에 투영시킨 사례다.

염색체 또는 유전자를 뜻하는 '게놈'은 1920년 독일의 식물학자인 윙클러가 처음 사용한 이후 국내에서도 사전이나 교과서 등에 게놈으로 써왔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 2002년 여름 '새삼스레' 지놈으로 표기하고 나섬으로써 언중에게 혼란을 가져왔다.

이유는 게놈 연구가 미국 주도로 진행되고 있고, 영어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말인 만큼 '지놈'을 쓰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정부 언론외래어심의위에서 이미 관용적으로 굳어져 사용되는 '게놈'으로 통일해 적기로 거듭 확인한 사안이다.

슈퍼를 쓰든 수퍼를 쓰든,또는 게놈이든 지놈이든 이는 가치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 표기상의,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다.

그렇다면 더욱 약속(규범)을 따라주는 것이 대의에 맞는다.

외래어표기법도 지켜야 할 법이기 때문이다.

다만 'law'가 아니라 'rule'이란 게 다를 뿐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