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심한 범죄를 저지른 자 이외에는, 소수의 나쁜 사람들을 (…) 제명하지말고, 그의 모든 정치적 세력을 박탈하고 고립시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마오쩌둥 어록에 나오는 말이다. (장진한, 『이젠 국어사전을 버려라』)

'반면교사(反面敎師)'란 말은 1960년대 중국 문화대혁명 때 마오쩌둥이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록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이 마오는 이 말을 '혁명에 위협이 되기는 하지만 반면에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는 계급·집단·개인'을 뜻하는 말로 썼다고 한다.

앞뒤가 상반되는 내용임을 나타내는 '반면'과 가르침을 주는 사람인 '교사'를 합성해 만든 말이다. 사전적 풀이로는 '따르거나 되풀이해서는 안 될 나쁜 본보기'이다. 지금은 흔히 쓰이지만 이 말이 사전에 오른 것은 불과 10여년도 채 안 된다. 1980년대 일부 언론에서 쓰기 시작하면서 널리 퍼졌는데 『표준 국어대사전』(1999년)에서 표제어로 올렸다.

반면교사가 우리말 속에서 익숙해지자 '정면교사(正面敎師)'라는 말도 생겨났다.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는 반면교사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정면교사는 될 수 없다.' (신동아, 2007년 2월)거나 '빼어난 시들을 남긴 미당이 우리의 정면교사가 아니라 반면교사로 영원히 남게 된 것이 한없이 아쉽고 슬프다.' (조정래, 실천문학, 2002년 여름호)처럼 쓰인다. 정면교사는 이를테면 모범사례와 같은 것으로서 소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될 만한 것을 가리킬 때 하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면교사에 대응해 쓰는 조어일 뿐 사전에 오른 단어는 아니다.

반면교사와 비슷한 말은 '타산지석(他山之石)'이다. 이는 '하찮은 남의 언행일지라도 자신을 수양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시경』의 '소아편(小雅篇)'에 나오는 '타산지석 가이위착(他山之石 可以爲錯:다른 산의 돌멩이라도 자신의 옥돌을 가는 데에 소용이 된다)'이란 구절에서 온 말이다.

반면교사와 타산지석은 엄밀하게 보면 쓰임새에 차이가 있으나 그 핵심은 모두 '부정적인 대상을 통해 교훈을 얻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반면교사와는 달리 타산지석은 이 쓰임새를 무시하고 엉뚱하게 잘못 사용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뉴코아의 새 경영진은 월마트의 성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현대차 노사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GM과 포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성공사례는 본받아야 할 대상이지 타산지석으로 삼을 게 아니라는 점에서 앞 문장의 '타산지석'은 잘못 쓰인 것이다. 뒷문장의 '타산지석'은 바른 쓰임새다.

'남이 훌륭한 점을 보고 얻는 것'을 가리킬 때는 '귀감(龜鑑)'을 쓴다. 귀감이란 '거울로 삼아 본받을 만한 모범'을 말한다. 어원적으로 귀(龜)는 거북의 등을 위에서 본 모습이고, 감(鑑)은 대야에 물을 떠놓고 자기 모습을 비춰보는 것을 형상화한 글자다. 옛날 중국에서 거북의 등을 통해 길흉을 점치고 감을 통해 미추를 살펴봤다는 데서 '자신을 돌아보고 바로잡는다'라는 뜻이 나왔고 나아가 모범, 본보기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