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위, 허용하지만 '잔여 난자'로 한정

연구 재개 다행…실효성 있을지는 의문

⇒한국경제신문 3월24일자 A1면

8개월여를 끌어온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 연구' 허용 여부 문제가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쪽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 20명 중 생명윤리계 민간위원 7명이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기 위해 투표에 불참한 데다, 과학계와 산업계도 연구 활성화에는 턱없이 미흡한 결론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는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전체회의를 열어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의 '제한적 허용안'과 '한시적 금지안'을 놓고 심의한 끝에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의결했다.

체세포 연구기관들은 관련 법령 개정 등에 최소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할 때 이르면 오는 9월이나 10월께부터는 연구에 착수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위원회가 의결한 제한적 연구 허용안은 체세포 복제 배아연구를 허용하더라도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난자를 체외수정에 실패해 폐기 예정인 난자,적출 난소에서 채취한 난자 등 '잔여 난자'로 한정하자는 안이다.

박수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notwoman@hankyung.com

------------------------------------------------------------

[뉴스로 읽는 경제학]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해법은 없나
대통령 자문기구인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국가생명위)가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하기로 의결한 것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한적 허용이란 복제배아 연구를 허용하지만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난자를 체외수정할 때 수정되지 않아 폐기할 난자나 적출 난소에서 채취한 '잔여 난자'로 한정하는 것이다.

국가생명위 위원들은 생명윤리계와 과학계로 갈려 그동안 보건복지부가 마련한 '한시적 금지'와 '제한적 허용' 등 두 가지 방안을 놓고 팽팽하게 맞서 왔다.

생명윤리계 쪽에서는 우리의 연구기술 수준에 비춰볼 때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가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기초연구 실적을 더 쌓은 뒤에 이를 허용해도 늦지 않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과학계 쪽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들이 줄기세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연구를 규제한다면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반발해 왔다.

생명과학 분야의 황금시장을 잃더라고 생명윤리를 확보해야 할까, 아니면 윤리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경제적 측면을 중시해야 할까.

혹은 생명윤리를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서 시장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하는가.

논란의 초점은 줄기세포 연구의 경제성과 부작용 가운데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두느냐는 것이다.

◆생명윤리계, "배아 연구 실험은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

생명윤리계나 종교계에서는 배아 연구·실험은 생명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라며 국가생명위의 줄기세포 연구 허용에 반발하고 있다.

윤리계 위원들은 "생명윤리법 개정안 중에서 가장 핵심적 내용인 체세포 복제배아 줄기세포 연구의 경우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거쳐 전체 의견을 내야 했다"며 "이런 의견에 대해 윤리계 위원뿐 아니라 과학계 위원조차 공감했는데 위원장 대행이 서면 의결을 강행했다"고 지적했다.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과학기술 분야 학자들과 생명공학 육성 부처 등 이해 당사자의 의견에 좌지우지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서면 표결에 생명윤리계 민간위원 7명 전원이 불참한 바 있다.

종교계 관계자도 "배아를 이용하는 어떠한 실험이나 연구도 생명의 존엄성과 신성함을 침해한다"며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 합법화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또 '황우석 사태'에서 확인됐듯이 연구팀은 심각한 생명윤리 문제를 초래하면서 확보한 2000여개의 난자를 사용하고도 단 한 개의 줄기세포주도 확립하지 못했다는 점을 반대 논리로 내세우고 있다.

◆과학계, "난자 제한 등 규제로 연구 성과 거두기 어려워"

과학계와 산업계는 이번 결정으로 침체됐던 줄기세포 연구를 재개할 수 있는 법적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난자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하는 바람에 실효성 있는 연구가 이뤄질지는 의문이라며 불만을 감추지 않고 있다.

국내 최고 수준의 테크닉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았던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연구팀도 건강한 난자를 갖고 줄기세포를 만들지 못했는데 인공수정에 실패해 폐기할 예정인 '잔여 난자'나 질병으로 인해 난소를 들어냈을 때 그 안에 있는 '미성숙 난자'로 줄기세포를 추출하라는 것은 사실상 연구를 허용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이들은 또 우리가 주춤하는 사이 미국을 비롯해 영국 이스라엘 스웨덴 호주 일본 등이 체세포 복제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허용하는 등 국익 차원에서 규제 완화에 나서면서 괄목할 만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음을 새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자칫 글로벌 경쟁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연구 대상 난자 규제 완화 등 보완대책 마련해야

국가생명위가 체세포 복제배아 연구를 제한적으로 허용, 관련 연구가 가능해진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세포 복제 연구는 난치병 환자를 위해 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는 데다 다른 방식보다 개발 기간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차세대 성장엔진을 서둘러 확보해야 할 상황이고 보면 바이오산업 발전에 직결되는 체세포 복제 연구의 활성화는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국회가 생명윤리법을 개정하고,정부 또한 대통령령을 고쳐야 하는 만큼 이번 결정으로 곧바로 줄기세포 연구가 재개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종교계와 일부 학계를 중심으로 생명윤리 문제를 제기하는 등 입법 과정에서 논란이 일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뿐만 아니라 연구에 사용할 수 있는 난자의 종류를 엄격히 제한하는 바람에 실효성 있는 연구가 이뤄질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합리적인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

생명윤리의 중요성도 도외시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성장동력의 원천이라 할 수 있는 복제배아 연구 활성화를 위해 연구 대상 난자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는 등 보완 대책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용어풀이]

◆줄기세포(stem cell)=어떤 세포로 분화할지 정해지지 않은 세포.배아줄기세포는 배아에서 나오는 줄기세포로,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기 때문에 ‘전능세포’ 혹은 ‘만능세포’로 불린다.

이에 비해 성체에서 나오는 줄기세포는 일정 세포로만 분화할 수 있다.

◆체세포 복제배아=핵을 제거한 난자에 환자의 체세포를 융합시킨 것으로,부작용이 없는 장기를 만들고 환자맞춤형 치료제를 개발하는 데 쓰일 수 있지만 인간복제 등 윤리문제를 유발할 수도 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파문=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팀이 2004년 ‘사이언스’를 통해 발표한 배아줄기세포 1개 수립과 2005년에 발표한 11개의 ‘환자맞춤식 줄기세포’수립이 허위로 드러난 사건.관련 논문이 취소되고 연구진들이 징계를 받으면서 연구윤리 문제가 불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