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좀 힘들지만 국가경쟁력 키우는 최선의 방책은 '경쟁'

[Focus] 왜 시장을 개방해야 하나‥"메기 함께 풀어놓은 논의 미꾸라지가 더 통통하더라"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은 평소 미꾸라지를 기르던 경험을 부하 직원들에게 자주 들려줬다고 한다.

"봄에 한 쪽 논에는 미꾸라지만 풀어놓고 다른 논에는 메기도 몇 마리 섞어놨다.

가을 추수 전에 미꾸라지를 잡아보면 메기를 함께 풀어놓은 논의 미꾸라지가 더 통통하고 건강하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도망다니면서 자란 미꾸라지들은 아주 씽씽했던 반면 별 위험없이 저희들끼리만 편안하게 자란 미꾸라지들은 시들시들했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미꾸라지는 기업, 개인 등 국내 경제주체들로 비유되고, 메기는 경쟁 개방 또는 국내에 진출한 유수의 외국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메기와 같은 자극이 없다면 개인도, 기업도, 나아가 국가도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 시장개방이 왜 필수적인지, 그럼에도 왜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자.

◆FTA는 싫으면 안해도 되나?

경제성장의 70%를 무역에 의존하고, 연간 수출이 3000억달러가 넘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남의 나라에 3000억달러어치나 내다 팔려면 엇비슷한 만큼 사줘야(수입해야) 한다.

무역에서 놀부 심보는 통하지 않는다.

자기 시장은 닫고 남의 시장만 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FTA는 선택 여지가 없는 생존전략이다.

노무현 대통령도 "중국과의 FTA를 완전히 피할 수 있으면 한·미 FTA를 안할 수 있다"며 FTA의 불가피성을 호소했다.

세계 곳곳에서 FTA 체결이 봇물처럼 터져, 이제는 FTA에 소극적인 나라가 큰 불이익을 받게 생겼다.

예컨대 남보다 앞서 미국과 FTA를 맺은 나라는 관세를 면제받고 미국에 수출할 수 있어 이익이지만, 홀로 버티는 나라는 가장 큰 시장인 미국장에서 왕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국산품 애용 식은 북한 꼴 난다"

과거 국내 산업이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던 시절엔 '국산품 애용=애국'이었다.

일제 치하에서 물산장려 운동이 그랬고, 1960~1980년대 산업화 시기에도 국민들은 품질이 떨어져도 국산품을 써줘야 도리를 다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경제의 개방화·세계화가 이뤄지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개도국이라도 자국 시장을 꽁꽁 닫고 사는 게 용납되지 않는 시대다.

그래서 국산품이라고 무작정 애용하는 것은 국내 기업들의 혁신 의지를 약화시켜 국가 경쟁력을 좀먹는 지름길이 된 것이다.

시장개방은 당장 국내 기업들에 큰 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세계 수준의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작용했다.

위기로만 여긴 기업은 도태했고,기회로 여긴 기업은 더욱 튼튼해져 누구와도 맞설 수 있게 됐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세계로 열린 국가들이 언제나 세계사를 이끌어갔다.

◆개방의 이익은 '어음', 피해는 '현찰'

이처럼 시장개방의 이익이 많지만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는 반면, 피해를 보는 쪽에선 그 결과가 바로 눈에 보이니 아우성을 칠 수밖에 없다.

그래서 FTA 등 개방의 이익은 몇 달 뒤에 받는 '어음'이고, 피해는 당장 손에서 빠져나가는 '현찰'인 셈이다.

FTA가 가져올 이익은 당장 내손에 쥐어지는 게 아니므로 이성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지만 FTA로 피해보는 사람들에 대해선 감성적으로 측은지심이 들게 마련이다.

농사를 짓고도 팔 곳이 없는 사람들, 경쟁력이 떨어져 문을 닫아야 하는 공장 등의 모습이 TV의 화면 가득 비쳐지고 있으니…. 주름진 얼굴, 곱은 손으로 농사짓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추면 고향 부모님 생각이 나서 반대론에 더욱 기울 것이다.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영화배우들이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를 벌이면서 많은 팬들이 반대운동에 동참할 수도 있다.

◆정부도, 반대론자들도 정직해야

정부는 한·미 FTA의 유리한 쪽만 홍보하고, 반대론자들은 불리한 쪽만 부각시킨다.

국민들은 헷갈린다.

정부가 FTA로 피해보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이런 설명은 사실 따분하고 잘 들리지도 않는다.

게다가 정부는 FTA에 따른 경제성장 효과 등의 수치를 '조작'했다는 의혹까지 사고 있으니….

그러나 반대론자들의 외침은 학생들의 귀에도 쏙쏙 들어올 정도다.

(본래 새로 만드는 것보다 만들어 놓은 것을 비판하는 것이 쉽다) 예컨대 '미국소=미친소'라는 같은 구호를 들으면 마음 속에선 은근히 반대쪽으로 기울 것이다.

만약 이런 구호가 사실이라면 3억명의 미국인들이나,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는 나라 국민들은 모두 바보들인가? 이런 구호 덕에 우리는 세계에서 제일 비싼 쇠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말이다.

조금만 찬찬히 생각해봐도 터무니없고 정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감성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잘못 느낀다.

바로 이것이 대통령이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한·미 FTA의 불가피함을 역설해도 잘 안먹히는 이유다.

한·미 FTA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여러분들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냉철한 이성으로 생각해 보시길….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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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마트·까르푸 들어오면 국내 할인점 다 망할줄 알았지!

■ '메기효과' 누린 국내 산업들

시장개방을 통해 '메기 효과'를 누린 대표적인 분야는 바로 국내 할인점이다.

1990년대 초 유통시장 3단계 개방조치에 따라 세계 최대기업인 미국 월마트와 프랑스 까르푸 등 해외 공룡 할인점들이 국내 시장에 진출했다.

당시 걸음마 단계였던 이마트 등 토종업체들에는 다윗과 골리앗 싸움만큼이나 힘겨워 보였다.

10여년이 지난 지금은?

비상이 걸린 국내 할인점들은 제품 품질을 높이고, 고객들에게 친근감을 주는 서비스에 만전을 기했다.

그 결과 할인점 시장 1~3위는 모두 이마트, 홈플러스, 롯데마트 등 국내 업체들이 독식했다.

다른 나라에선 맹위를 떨치던 월마트와 까르푸는 결국 두 손 들고 철수했다.

반면 이마트는 국내시장 성공 노하우로 중국까지 진출해 현지에서 월마트, 까르푸 등과 경합하고 있다.

1978년 국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자동차, 컬러TV, 전기밥솥 등 261개 품목에 대해 일본산 제품 수입금지 조치가 취해졌다.

이 조치는 모두 1999년에야 폐지돼 일본산 제품과 본격 경쟁에 들어갔다.

하지만 국산 자동차는 미국시장에서 제값을 받고 팔리는 주력 수출품목이 됐고, 국산 디지털TV는 개도국은 물론 선진국에서도 일본산보다 더 잘 팔리는 최고 인기품목으로 떠올랐다.

국산 전기밥솥은 한때 우리나라 주부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던 일제 코끼리밥솥과 정면승부를 벌인 끝에 국내 시장에서 일제 밥솥을 밀어냈고, 이젠 일본에까지 수출되고 있다.

이 밖에 1980년대 후반 할리우드 영화 직접 배급이 허용될 당시 반대론자들은 한국 영화가 완전히 무너질 것이라며 극장에 방화하거나 뱀을 풀어놓기까지 했다.

1998년에는 일본 영화까지 단계적으로 상영이 허용됐다.

한국 영화는 다 망했을까? 현재 영화 배급시장은 국내 4개 영화사 중심으로 재편됐고, 예전에는 시간이 아깝다던 한국 영화에 관객이 몰려 지난해 시장점유율은 60%를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