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형 초다수결의제·황금낙하산 도입 늘어

일부에서는 "소액주주 권기 경시될 가능성" 우려도

[Make Money] 상장기업들의 다양한 M&A 방어장치
기업들의 정기주주총회가 막바지를 항해 치닫고 있다.

12월 결산법인들은 3월말까지 주주총회를 모두 마치게 된다.

경영진은 지난해 1년 동안 기업의 실적을 주주들에게 보고해 승인을 받게 된다.

임원 임명과 해임, 승진, 연봉 책정 등 다양한 사안들이 주주총회를 통해 통과된다.

그밖에 정관변경을 요하는 중요 사안들이 주주총회 안건으로 오른다.

특히 올해 주주총회는 여느 때보다 경영권 분쟁이나 이를 막으려는 다양한 경영권 방어 제도가 채택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기업들이 앞다퉈 이 같은 제도를 도입하면서 소액주주들의 권리가 무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생겨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업 경영권 안정'이 먼저냐, '주주가치 보호'가 우선이냐를 놓고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상장사 잇따라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

올 들어 상장사들은 잇따라 초다수결의제와 황금낙하산을 도입하고 있다.

코스닥 상장사 옴니텔은 지난달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총 결의는 출석 주주 의결권의 과반수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동시에 2인 이상의 이사 해임을 결의하는 경우에는 출석한 주주 의결권의 90% 이상으로 한다'는 정관 변경안을 통과시켰다.

또 이 조항 변경을 결의하는 경우에도 출석 주주의 90% 이상 찬성이 요구되도록 하는 규정을 신설했다.

이사나 감사의 해임 등 경영권 변동과 관련된 안건에 대한 결의 요건을 까다롭게 하는 '초다수결의제'다.

이 회사는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전 경영진에 막대한 혜택을 줄 수 있게 하는 황금낙하산 제도도 도입했다.

이사가 임기 만료전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해임되는 경우 해임 이사에게 규정된 퇴직금 이외에 30억원의 퇴직금을 별도로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이들 기업 외에 유가증권시장 상장기업인 고제가 최근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 두 가지 제도를 도입키로 했으며,더베이직하우스는 초다수결의제를 정관에 명시했다.

이화전기공업과 오스템임플란트 나라엠앤디는 주총에서 초다수결의제를 도입했다.

또 케이피티 라이브플레스 팝콘필름 등도 올해 초다수결의제나 황금낙하산을 도입키로 했다.

현대모비스는 사외이사를 포함한 이사회 구성원들의 임기 만료 시기를 분산시키는 '시차임기제'를 도입해 경영권 방어를 시도하고 있다.

시차임기제는 통상 3년인 이사회 구성원들의 임기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이사진의 3분의 1은 올해, 또 다른 3분의 1은 내년,나머지 3분의 1은 내후년에 임기가 끝나도록 한다.

현대모비스 측은 경영의 단절을 막기 위한 목적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적대적 M&A(인수합병) 세력에 의한 경영진 전원 교체를 막는 효과도 있다.

◆경영안정 VS 소액주주 권리 훼손

이 같은 경영권 방어 제도는 외부세력에 의한 경영권 탈취를 미연에 방지해 경영진에 기업 경영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다.

이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우리나라보다 더욱 다양한 경영권 방어제도를 갖출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차등의결권주, 포이즌 필, 황금주, 의무공개매수제, 외국인투자자 사전 승인 등 M&A 방어망을 갖추고 있다.

일본 역시 이사 정원을 줄이거나 정원수 상한을 설정해 사전 협의 없이 회사를 인수하려는 시도를 막을 수 있도록 한 새로운 회사법을 최근 시행했다.

따라서 이같이 강화된 적대적 M&A 방어기법이 국내에도 도입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대한상공회의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간판기업들 중 절반 이상인 50.3%가 적대적 M&A에 대한 적절한 방어 장치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비가 되어 있다'고 응답한 기업들도 대다수(95.4%)가 '대주주 지분율'(80.5%)과 '자사주 매입'(14.9%) 등 지분율 확보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초다수결의제, 황금낙하산 같은 제도적 방어 장치에 의존하는 기업은 2.2%에 그쳤다.

하지만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우선 이 같은 경영권 방어수단들이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황금낙하산 등 경영권 방어 제도를 도입한 기업 중 상당수는 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들의 반발에 부딪치기도 했다.

또 일부 기업의 불합리한 지배구조를 유지하는 도구로 악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일부 기업은 오히려 기존에 있던 황금낙하산 제도나 초다수결의제를 주주총회에서 없애기도 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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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밖의 방어수단

세계적으로 적대적 M&A(인수·합병) 분쟁이 부쩍 늘어나면서 각종 경영권 방어제도 도입에 관한 찬반 논란도 뜨겁다.

경영권 방어제도는 경영권 방어 범위와 효과에 따라 다양하게 나뉜다.

국내에서도 기업들이 가장 많이 도입하는 제도가 황금낙하산과 초다수결의제다.

국내에서 허용된 경영권 방어제도 중 가장 효과적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자주 이용된다.

차등의결권이란 보통주보다 적게는 10배에서 최고 1000배 많은 의결권을 가진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포드와 벅셔헤서웨이 등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대표적인 기업이다.

포이즌필 역시 M&A 분쟁 가능성이 높은 기업에 심심찮게 등장하다.

포이즌필은 적대적 M&A 상황이 벌어지면 기존 주주에게 할인된 가격으로 신주를 발행해 M&A 세력의 지분율을 낮추는 제도다.

미국의 경우 S&P 500대 기업의 대다수(93.6%)가 포이즌필 등의 경영권 방어수단을 도입해 놓고 있다.

유럽에서는 스웨덴(55.0%) 핀란드(36.0%) 등의 국가에서 상당수 기업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1998년까지 국내에서 운용됐던 제도로 의무공개매수 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M&A 공격자 측이 25% 이상의 지분을 취득할 경우 일정 지분(50%+1주) 이상을 반드시 시장에서 공개적으로 매수하도록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