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탓'과 '~덕'은 천지차이

[돋보기 졸보기] 22. 탓과 덕
'유대인들은 다른 민족보다 언변이 뛰어난 편이다.

어려서부터 논리적인 사고와 토론법을 배우는 탓이다.'

이 문장에는 틀린 곳이 하나 있다.

무심코 쓰는 말이긴 하지만 '탓'이 잘못 쓰였다.

왜일까.

'탓'은 '일을 그르친 원인, 잘못된 까닭'을 뜻한다.

어떤 핑계나 구실을 대면서 남을 나무라거나 원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칭찬하는 마당에 '탓'을 쓰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처럼 단어가 갖는 고유의 의미 자질을 무시하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때는 문장 형식은 잘 갖춰져 있어도 '의미가 호응하지 않아' 비문이 된다.

좋은 것을 행하는 마음이나 짓, 보람 있는 일을 나타내는 말로는 '덕, 덕분, 덕택'이 적합하다.

문맥에 따라 중립적인 단어로 '까닭, 때문'을 쓸 수 있다.

여기서도 물론 '때문'을 쓸 수 있다.

다만 이 '때문'은 통상 인과관계성을 짙게 드러낸다.

그래서 아주 논리적인, 전후 맥락이 과학적 합리성을 드러내는 데에 쓰일 때 가장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까닭'을 쓸 수 있을까? 얼핏 보면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문장에선 불가능하다.

까닭의 쓰임새가 '탓'이나 '때문'과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탓'이나 '때문'은 보통 앞에 어떤 결과가 오고, 뒤에 이유(원인)가 오는 구조다.

즉 'A는 B이다.

(왜냐하면)C는 D이기 때문이다(또는 C는 D인 탓이다)'처럼 쓰인다.

그런데 '까닭'은 이와 다르다.

'까닭'은 먼저 이유가 오고, 뒤에 결과가 오는 구조에서 붙일 수 있다.

즉 'C는 D이다.

그것이 A가 B인 까닭이다'와 같이 구조가 달라진다.

따라서 앞 문장에서도 '까닭'을 쓰기 위해서는 어순을 바꿔야 한다.

'유대인은 어려서부터 논리적인 사고와 토론법을 배운다.

그것이 유대인이 다른 민족보다 언변이 뛰어난 까닭이다'와 같이 쓰여야 자연스럽다.

작은 차이인 것 같지만 정확한 용법을 알고 들여다보면 큰 차이가 있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