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택 <중앙대 정경대학장 · 경제학>

⇒한국경제신문 3월9일자 A39면

최근 서민들을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시장가격을 직접 제한하는 반(反)시장적 정책들이 별 저항없이 연이어 입법화되고 있다.

이번 주에 국회를 통과한 이자제한법이 대표적인 예다.

악덕 고리사채업자로부터 불쌍한 서민들이 착취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등록 대부업체들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금리를 연 40%로 제한했다.

그리고 이를 초과한 이자지급분에 대해서는 반환청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제도권 등록 대부업체가 받을 수 있는 이자상한은 현행대로 연 66%로 유지하기로 했다.

미등록 대부업체를 이용하는 차입자는 신용이 불투명하기 때문에 등록 대부업체로부터 외면당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다시 말해 연 66%의 이자를 내더라도 제도권 업체로부터는 돈을 빌릴 수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어떻게 더 싼 이자로 제도권 밖의 대부업체로부터 급전(急錢)을 융통할 수 있는가? 물론 불가능하다.

새로 도입된 법이 엄격히 집행되면,미등록 대부업체와 함께 이들이 제공하는 급전 융통시장도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급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법 상한을 초과하는 고금리 대부거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등록 대부업자 입장에서 보면 새로운 법 때문에 대부 위험이 커졌으므로 이에 상응해 이자를 더 받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자제한법은 서민들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이들의 부담만 늘리게 된다.

비슷한 일이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를 놓고 벌어지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의 가맹점 수수료가 대형 마트 같은 대형업체보다 훨씬 높아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여신전문금융법을 개정해 신용카드가맹점 수수료의 최고율을 제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언뜻 보기에는 영세 자영업자들이 신용카드사들로부터 착취당하는 것을 보호하는 정당한 조치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자제한법과 마찬가지로 가맹점 수수료를 제한하는 정책은 오히려 영세 자영업자들의 부담만 크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영세 자영업자들의 수수료가 높은 이유는 판매단가가 소액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마다,신용카드사에는 사용금액과 상관없이 거래승인 비용 등 일정한 고정비용이 발생한다.

그러므로 신용카드사 입장에서는 건당(件當) 결제금액이 적을수록 금액당 소요되는 비용은 커지게 된다.

따라서 영세 자영업자들의 가맹점 수수료는 건당 결제금액이 큰 대형업체에 비해 높을 수밖에 없다.

지금의 가맹점 수수료율로도 건당 3만원 미만의 소액결제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아 신용카드사에 도움이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세업자에 대한 신용카드 수수료를 인위적으로 대폭 낮추는 조치를 취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신용카드사들은 영세 자영업자들과의 가맹점 계약에서는 이익이 발생하지 않으므로 가맹점 계약을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영세 자영업자들은 현금거래밖에 할 수밖에 없게 돼,고객의 불편이 야기되므로 매상이 떨어지게 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외상거래를 하게 되면 이에 대한 대손(貸損) 부담을 자신들이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또한 고객에게 신용카드로 판매할 때 받는 세제혜택도 받을 수 없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

이를 모두 종합해 볼 때 신용카드 가맹점 계약이 해제되면 자영업자들은 가맹점 수수료보다 훨씬 큰 손해를 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자제한법이든,가맹점 수수료 제한이든,또는 아파트 분양가 상한제이든 시장가격에 직접 간여하는 정책들은 그 선의의 의도와는 달리 보호하려는 대상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시장가격기구에 대한 직접적 개입은 단편적인 사고(思考)에 입각해 즉흥적으로 행해서는 안 된다.

장기간에 걸친 엄격한 연구 조사를 바탕으로 필요시에만 일시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국가들의 역사에서 보듯이 우리 경제는 누더기 짜깁기 시장경제가 돼 효율성이 떨어지고 활력을 잃게 돼 선진국 진입이 요원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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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윤리적 명제로 안 풀린다

'뜨거운 가슴,찬 이성!'(Warm heart,cool head) 케인스의 스승인 영국의 경제학자 알프레드 마샬(1842~1924년)의 말이다.

현대 경제학을 정립한 마샬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런던 빈민가의 실상을 모르고 경제 현실을 연구하는 학자는 죽은 경제학자이다.

경제학은 인간을 위한 학문이다." 경제학자는 사회 현실에 대한 분석이나 생각은 매우 냉정하고 정확해야 하지만,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에 대해선 따듯한 마음으로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윤리학이 우리가 원하는 이상적인 세상(그래야 하는 세상)을 제시한다면,경제학은 실재하는 현실 세상(그런 세상)을 보여주고 개선하려는 학문이다.

이는 경제 문제를 철저히 경제 원리로 풀어야지,윤리의 범주로 풀려고 해선 해법이 나올 수 없다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지난 6일 폐회된 임시국회에선 유독 논란을 불러일으킨 경제 법안들이 많이 올라갔다.

국회를 통과한 이자제한법이나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위한 주택법이 그렇다.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수수료율을 낮춰주어야 한다는 여론도 일고 있다.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기피해 끝내 고리 사채업자를 찾아가야 하는 막다른 골목의 사람들, 내집 마련이 절실한 서민들, 카드 수수료가 부담스러운 영세 자영업주들 모두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다.

우리가 함께 고민하는 것은 이들의 경제적 고통을 덜어주는데 최선의 해법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공감하는 문제다.

하지만 해결책을 찾아가는 과정에선 따뜻한 가슴에서 받아들인 문제를 '냉철한 이성'에 담아 분석하고,해법이 나오면 의심하고 또 의심해 더 이상 '합리적 의심'이 들지 않도록 다듬은 뒤 결정해야 옳다.

홍기택 교수는 이 칼럼에서 이자제한법, 분양원가 공개, 영세 자영업자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논의의 출발이 '더운 가슴'인 것은 좋은데, 해법까지 '뜨거운 머리'로 가고 있음을 지적한다.

칼럼 내용을 천천히, 꼼꼼하게 읽어보면 같은 문제를 놓고 다르게 고민해온 경제학자의 고언(苦言)을 들을 수 있다.

홍 교수의 칼럼에 대한 반론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대부업체들의 과도한 이자 챙기기에 어느 정도 제한을 가할 필요가 있고,건설업체들의 분양가 거품은 빼야 한다.

그리고 영세 가맹점 수수료율도 합리적인 수준에서 내릴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윤리학자나 종교인처럼 "그래서야 되겠느냐!"는 식의 꾸지람이나,행정기관의 단속만으론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그동안 아무도 몰라서 고리 사채가 활개를 쳤겠는가?

경제 주체들이 합리적이면서 사회적으로 유용한(또는 선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다.

쉽게 말해 사회가 원하는 방향으로 경제 주체들을 끌고가는 것이 아니라,스스로 움직이도록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 최선의 해법이란 이야기다.

하지만 다수의 대중은 이런 경제적 사고에 익숙해 있지 않다.

그래서 더운 가슴,더운 머리에다 큰 목소리까지 가진 웅변가(정치가)들이 문제를 더욱 꼬아 놓기 일쑤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