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그 낯섦과 낯익음의 사이

[돋보기 졸보기] 21. '몇 월'과 '며칠'
'몇월,몇일,몇시. '우리가 하루에도 몇 번씩 쓰는 말 가운데 하나가 '몇'일 게다.

그만큼 흔하게 쓰는 말이지만 그 용법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우선 바른 표기부터 보면 '몇 월,며칠,몇 시'라고 적어야 한다.

'며칠'은 한 단어이므로 붙여 쓰고 나머지는 띄어 쓴다.

또 '몇 월'이나 '몇 시' 등에 이끌려 '며칠'까지 '몇일'로 적는 경우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몇'과 어울려 이뤄지는 말은 형태적 측면과 의미적 측면 두 방향으로 나눠 살펴보는 게 편하다.

우선 형태적 차이에서 '몇 월'은 우리말 적기의 두 가지 대원칙 중 하나인 '형태 밝혀 적기'에 따른 것이고 '며칠'은 다른 하나인 '소리대로 적기'의 전형적인 사례다.

'몇 월'은 관형사 '몇'이 명사 '월'을 수식하고 있는 구조(몇+월)라는 게 쉽게 드러난다.

하지만 '며칠'은 어원이 분명치 않다.

이 말은 '몇+일'의 결합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형태를 밝혀 '몇일'로 적는 게 허용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우리 맞춤법은 발음 나는 대로 '며칠'로 적도록 하고 있다.

'몇 월'의 발음은 [며둴 ]이다.

'몇'과 '월(月)'이란 실사(實辭)끼리 만나면 받침 'ㅊ'이 대표음인 'ㄷ'으로 바뀌어 발음되는 게 우리말 구조다.

가령 '옷 안'이 [오단]으로,'낱알'이 [나달]로 발음되는 것이다.

(참고로 '맛있다'의 경우 역시 실사와 실사의 결합이므로 [ 맏있다→마디따]로 발음되지만 사람들이 [마시따]로도 많이 쓰는 점을 감안해 두 가지 발음을 모두 허용했다.

) 마찬가지로 '며칠'이 '몇+일(日)'의 구조라면 [ 멷일→며딜]로 발음돼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냥 받침 'ㅊ'이 흘러내려 '며칠'로 발음된다.

이는 마치 '옷'에 조사 '-이,-을,-에' 따위가 붙을 때 발음이 [오시,오슬,오세]처럼 받침이 흘러내리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것이 바로 '며칠'을 실사인 '몇'과 '일'의 결합으로 보기 어렵게 하는 근거다.

따라서 이 말은 어원이 분명치 않으므로 원형을 밝히지 않고 소리 나는 대로 '며칠'로 적는 것이다.

의미 측면에서 본 '몇'은 좀 복잡하다.

그 쓰임새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이는 사전적 풀이가 실제 용법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형사 '몇'은 '친구 몇 명' '귤 몇 개' 따위가 전형적인 쓰임새다.

이때 공통점은 항상 '몇'과 결합하는 말이 수량을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이다.

다음과 같은 질문과 답은 아주 자연스럽다.

'몇 개? 두 개. ' '몇 명? 세 명. ' '몇 살? 다섯 살. '그런데 '몇'의 이 같은 사전적 쓰임새는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몇 월'이나 '몇 반이냐'라고 말할 때의 '몇'과는 좀 다르다.

우리가 '몇 월이냐'라고 할 때는 수량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특정 월(2월,3월 따위)을 묻는 말이다.

'너 몇 반이야?' 할 때의 답은 '2반' 또는 '3반'인 것이다.

유독 여기서는 '몇 개 반',즉 수량의 의미가 아니라 특정 반을 답하도록 묻는 말로 쓰인다.

물론 수량의 의미로 해석될 때도 있다.

'이번 대회에는 몇 반이(나) 참가했나?' 이 문장에서는 '몇'이 양적인 개념으로 쓰였다.

하지만 '너 몇 반?'에서의 '몇'은 특정 개념이다.

이것은 사전적 풀이로는 설명되지 않는 쓰임새다.

그런 점에서 이런 경우를 '어느'의 잘못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너 어느 반이야?'라고 물어야 바른 표현이라는 얘기다.

'몇 년'이란 말도 중의적이다.

'몇 년 동안'이라 할 때의 '몇 년'은 수량을 뜻한다.

그런데 우리는 '6.25전쟁이 일어난 게 몇 년이지?'라는 말도 쓴다.

이때의 '몇 년'은 수량이 아니라 특정 해를 염두에 둔 표현이다.

물론 '몇 월 몇 시','몇 학년 몇 반'같이 특정 대상을 유도하는 '몇'의 용법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현실적으로 광범위하게,매우 자연스럽게 쓰이는 말이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이런 표현을 질의응답 코너를 통해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특정 개념을 이끄는 말로서의 이 같은 '몇'의 쓰임새도 사전에 포함시켜야 할 때가 됐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