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제정 의도는 좋지만 현실성은 '글쎄'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이자를 '연 몇%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자제한법이 국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998년 폐지됐던 이 법을 부활시키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다.
빈곤층 등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은행,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리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많은데,이때 적용되는 이자율에 상한선을 둠으로써 고리 대금업의 피해를 막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빈곤층도 싼값(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자는 선의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명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많은 경제 문제가 그렇듯이 이자제한법이 빈곤층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자율 상한선 40% 유력
국회에서 논의된 이자제한법은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출한 안(案)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제출한 안(案)이 있다.
이 의원은 △이자 상한선을 연 40%로 두고 △금융회사와 등록 대부업체 등 제도권 금융에는 이를 적용하지 말자는 안을 내놓은 반면 심 의원은 △연 25%의 이자상한선을 △모든 금융회사와 개인 간 거래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이 의원이 제출한 입법안이 금리수준 면에서 일단 심 의원의 안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통과되면 이자상한선은 연 40%로 정해지게 된다.
사금융 시장에서 이 정도의 이자율 상한선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까?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개인들의 신용도는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자상한선이 정해지면 신용도가 이보다 떨어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자율 상한선 밖에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시장에서는 쫓겨나게 된다.
이자율 상한선이 낮아질수록 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법 준수 현실성이 낮다
현행 대부업법에서는 이자율 상한선을 연 66%로 정해놓고 있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들은 은행 거래를 하는 사람에는 못 미치겠지만 어느 정도 신용도를 갖추고 있다.
반면 개인 간 거래 등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사람들은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대부업법에서 규정한 66% 상한선보다 낮은 이자만 받으라고 한다면 선뜻 돈을 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돼 있는 한 대부업체의 사장은 "처벌조항이 있는 대부업법의 이자상한선 66%도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은데,하물며 처벌조항도 없는 이자제한법상 금리상한선을 40% 또는 25%로 정한다고 해서 사채업체들이 지키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시장여건에서는 이자제한법을 준수할 수 있는 현실성이 상당히 낮다는 얘기다.
이자제한법과 비슷한 규제 제도로는 최저임금제와 상가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최저임금제는 올해 시간당 3480원(하루 8시간 기준 2만7840원)으로 돼 있는데,대부분의 고용주는 이 정도 이상의 급여를 주고 있다.
최저임금제를 충분히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급여 수준이 높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상가건물 보증금 및 월세 인상 상한율은 12%로 제약을 받고 있는데,계약 이듬해의 상승률만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상가 건물주들이 이를 지키고 있다.
반면 이자제한법에서 규정한 이자율 상한선은 지금의 사금융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돈을 떼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연간 40%의 이자만 받고 돈을 빌려줄 사금융 업자들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영대)는 "가격 제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기능만 보는데 실제로는 의도했던 정책 목표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서민들을 위한다는 따뜻한 마음이 실제로는 서민들이 돈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거나 지하자금화해 이들의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피스토 법칙에서 말하는 '좋은 의도에 나쁜 결과'는 이자제한법에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취지 좋아도 나쁜 결과 초래 더 많아
# '설계이론의 오류' 탈피해야
매우 바람직하고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고 해서 이 세상이 청사진대로 움직여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어 어떤 법률이나 제도를 설계했을 때 의도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나타나지 않고,오히려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예를 굳이 들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자체가 모순 덩어리여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불가예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됐을 것이다.
예컨대 법으로 이자율 상한선을 연 10%로 낮추고 이를 실제 사회에서 적용할 수만 있다면 불쌍한 서민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올리면 빈부격차가 줄어들고,주택 임대료를 제한하면 서민들의 삶이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제도에 대한 설계이론'(design theory of social institution)에 따르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인간 사회는 백지 상태가 아니고 자연과학이 적용되는 실험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상들은 현실 세상에서 모두 실패했다.
영국 속담에 '천사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 가설'(hypothesis of unintended consequences)이나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인용한 '메피스토 법칙'도 같은 얘기들이다.
인간 이성의 힘을 믿고 세상을 의도하는대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설계이론에 대해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고 비판했다.
현명하고 탁월한 인간이 설계하고 만들어낸 제도가,인간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회질서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시장경제는 자생적으로 생겨났음에도 그 어떤 철학자가 만들어낸 제도보다도 오랫동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는 이자를 '연 몇% 이하'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이자제한법이 국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1998년 폐지됐던 이 법을 부활시키기로 이미 합의한 상태다.
빈곤층 등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이 은행,저축은행 등 제도권 금융회사로부터 돈을 빌리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사례가 많은데,이때 적용되는 이자율에 상한선을 둠으로써 고리 대금업의 피해를 막아보자는 것이다.
물론 이 법의 취지에 대해서는 시비를 걸 이유가 없다.
빈곤층도 싼값(이자)에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하자는 선의로 추진되고 있기 때문에 도덕적인 명분도 있다.
그럼에도 이 법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많은 경제 문제가 그렇듯이 이자제한법이 빈곤층을 돕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어렵게 만들 수도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자율 상한선 40% 유력
국회에서 논의된 이자제한법은 이종걸 열린우리당 의원이 제출한 안(案)과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제출한 안(案)이 있다.
이 의원은 △이자 상한선을 연 40%로 두고 △금융회사와 등록 대부업체 등 제도권 금융에는 이를 적용하지 말자는 안을 내놓은 반면 심 의원은 △연 25%의 이자상한선을 △모든 금융회사와 개인 간 거래에 적용하자고 제안했다.
정부는 이 의원이 제출한 입법안이 금리수준 면에서 일단 심 의원의 안보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 의원이 제출한 법안이 통과되면 이자상한선은 연 40%로 정해지게 된다.
사금융 시장에서 이 정도의 이자율 상한선을 충분히 지킬 수 있을까?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개인들의 신용도는 워낙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이자상한선이 정해지면 신용도가 이보다 떨어지는 사람들이 반드시 생겨날 수밖에 없다.
이들은 이자율 상한선 밖에 있기 때문에 합법적인 시장에서는 쫓겨나게 된다.
이자율 상한선이 낮아질수록 시장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법 준수 현실성이 낮다
현행 대부업법에서는 이자율 상한선을 연 66%로 정해놓고 있다.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들은 은행 거래를 하는 사람에는 못 미치겠지만 어느 정도 신용도를 갖추고 있다.
반면 개인 간 거래 등 사금융 시장에서 돈을 구하는 사람들은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에게 대부업법에서 규정한 66% 상한선보다 낮은 이자만 받으라고 한다면 선뜻 돈을 내주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돼 있는 한 대부업체의 사장은 "처벌조항이 있는 대부업법의 이자상한선 66%도 지키지 않는 업체들이 많은데,하물며 처벌조항도 없는 이자제한법상 금리상한선을 40% 또는 25%로 정한다고 해서 사채업체들이 지키겠느냐"고 되물었다.
현재 시장여건에서는 이자제한법을 준수할 수 있는 현실성이 상당히 낮다는 얘기다.
이자제한법과 비슷한 규제 제도로는 최저임금제와 상가임대료 인상률 제한 등과 같은 것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최저임금제는 올해 시간당 3480원(하루 8시간 기준 2만7840원)으로 돼 있는데,대부분의 고용주는 이 정도 이상의 급여를 주고 있다.
최저임금제를 충분히 지킬 수 있을 정도로 급여 수준이 높다는 얘기다.
말 그대로 최저임금이다.
상가건물 보증금 및 월세 인상 상한율은 12%로 제약을 받고 있는데,계약 이듬해의 상승률만 제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거의 모든 상가 건물주들이 이를 지키고 있다.
반면 이자제한법에서 규정한 이자율 상한선은 지금의 사금융 실태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돈을 떼일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연간 40%의 이자만 받고 돈을 빌려줄 사금융 업자들은 이 세상에 그리 많지 않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경영대)는 "가격 제한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순기능만 보는데 실제로는 의도했던 정책 목표보다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며 "서민들을 위한다는 따뜻한 마음이 실제로는 서민들이 돈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거나 지하자금화해 이들의 피해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메피스토 법칙에서 말하는 '좋은 의도에 나쁜 결과'는 이자제한법에도 적용된다는 얘기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취지 좋아도 나쁜 결과 초래 더 많아
# '설계이론의 오류' 탈피해야
매우 바람직하고 좋은 청사진을 내놓는다고 해서 이 세상이 청사진대로 움직여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하게도 이 세상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어 어떤 법률이나 제도를 설계했을 때 의도했던 것들이 실제로는 나타나지 않고,오히려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하는 경우가 더 많다.
다른 예를 굳이 들 필요도 없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인간 자체가 모순 덩어리여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불가예측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법을 제정하고 제도를 만듦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아마도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 됐을 것이다.
예컨대 법으로 이자율 상한선을 연 10%로 낮추고 이를 실제 사회에서 적용할 수만 있다면 불쌍한 서민들의 생활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아질 것이다.
최저임금을 시간당 1만원으로 올리면 빈부격차가 줄어들고,주택 임대료를 제한하면 서민들의 삶이 훨씬 윤택해질 것이다.
하지만 '사회제도에 대한 설계이론'(design theory of social institution)에 따르면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나쁜 결과를 초래한 경우가 더 많았다.
인간 사회는 백지 상태가 아니고 자연과학이 적용되는 실험실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상들은 현실 세상에서 모두 실패했다.
영국 속담에 '천사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얘기가 있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 가설'(hypothesis of unintended consequences)이나 괴테의 소설 파우스트에 나오는 메피스토펠레스를 인용한 '메피스토 법칙'도 같은 얘기들이다.
인간 이성의 힘을 믿고 세상을 의도하는대로 바꿔나갈 수 있다는 설계이론에 대해 하이에크는 치명적 자만(fatal conceit)이라고 비판했다.
현명하고 탁월한 인간이 설계하고 만들어낸 제도가,인간 사회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사회질서보다 훨씬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표적으로 시장경제는 자생적으로 생겨났음에도 그 어떤 철학자가 만들어낸 제도보다도 오랫동안 훌륭하게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