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결혼 제시문 과연 그런 뜻인지..."
출제 의도는 좋았지만 부적절한 제시문에 '당혹감'
창의성보다 출제자 의도 끼워맞추는 고답적 논술은 곤란
연세대 2008년도 모의 논술 문제에 대해 우선 매우 당혹스럽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주제를 논증해 가야 하는 제시문들이 매우 부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서다.
물론 모의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실제 출제될 논술 문제의 유형만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완결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대하는 학생들의 당혹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문제의 출제자는 제시문들이 서로 대립적인 사회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떻게 읽더라도 출제자가 요구하는 상반된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제시문들로 짜여져 있다.
물론 문제는 문제일 뿐이므로 출제자의 의도를 찾아내 억지로라도 써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구차스러울지. 학생들의 창의성을 테스트하겠다는 논술 시험이 출제자의 의도에 끼워 맞추는 고답적 논술 시험이 되고 말았다.
연세대 모의 논술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자.
☞모의논술 문제는 생글생글i(www.sgsgi.com) 참조
◆ 이상한 제시문
제시문 (가)는 이기적 개인들이 아무런 생산적 협동 작업도 해내지 못하는 교착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서로 조금씩만 도와주면 될 일을 속 좁게도 자기 욕심만 부리다가 둘 모두에게 손해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학생들도 잘 아는 게임 이론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사회 구성원 서로는 자기의 이익만 좇을 뿐 상대를 위해,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보다 높은 총화를 달성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잘 조직된 현대 사회일수록 이런 퇴행적 이기주의를 잘 통제하고 있다.
제시문이 밝히고 있듯이 이곳은 자연 상태다.
이 같은 자연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논술문 출제자가 보기에는―두 가지다.
이것이 제시문 (나)와 (다)에 제시되고 있다.
제시문 (나)의 묘사에 따르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호혜적이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충만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장례를 치를 때도 이웃들이 서로 도와가며 어려움을 나누고 있다.
이 마을은 촌락 공동체적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 주민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익사회적인 면모보다는 혈연사회적 외양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연 상태와는 달리 서로에게 호의적인 행동이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동네를 방문하는 상인들조차 어느 집에 무슨 물건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래 비용도 거의 없다.
협동하고 상호 부조하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다.
출제자는 이 마을을 통해 제시문 (가)에 나타난 자연 상태를 극복하는 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제시문 (다)이다.
만일 이 제시문이 그토록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계약 결혼'의 발췌라는 것을 모른다면 제시된 문장만으로는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2년의 계약기간 동안'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구절을 가지고 '옳다구나 공동체 사회가 아닌 계약 사회다'라고 할 수 있겠는지. 어떻게 읽더라도 이 제시문은 '계약'이라는 단어만 빼놓는다면 제시문 (나)에서 묘사한 사회와 대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혈연적 공동체 사회와 계약에 근거한 이익 사회를 대립시키기로 한다면 이 제시문 (다)는 매우 부적절하다.
그런데 출제된 문제는 바로 그것을 묻고 있다.
제시문 (다)는 '두 사람이 인습에 속박당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내겠다는 약속'으로 읽힐 뿐, 시중의 반도덕적 매춘 계약처럼 이해타산적이거나 혹은 이해타산을 조절하는 한 방법으로 계약결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절대 읽혀서는 안 된다.
보부아르가 말하는 계약 결혼은 결코 상업적 사회적 계약과 비슷하게 읽혀야 할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은 결혼 제도가 또 하나의 속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잘 정비된 사회적 계약을 거부하고 있다.
계약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지만 이때의 계약이 계약 사회, 더구나 제시문 (라)에서 보여주듯이 변호사가 개입해야 하는 그런 계약적 이익사회의 질서를 추구한다고 본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랑을 주제로 논술 문제를 내면서 "나, 자기 깨물어 죽여 버릴 거야!"라는 제시문을 내고 이것을 살인 동기라고 해석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계약결혼'의 '계약'으로 계약사회 설명하나?
[문제 1]은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이 문제에 대해 제시문 (나)와 (다)가 각각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비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문 (나)와 (다)는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제시문 (나)에 대비되는 혹은 (나)와 상반된 해결책을 찾고 있는 제시문을 고른다면 차라리 현대 사회의 대기업 내부 풍경을 묘사하거나 실물 없이도 거액이 오가는 국제 신용무역거래에 대한 글을 내놓는 것이 맞다.
노동계약 사례라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을 굳이 한 쪽의 제시문으로 낸다면 인습적 결혼에 희생당하는 시골 처녀에 대한 소설 대목이라도 찾아서 상대 제시문으로 내는 것이 맞다.
제시문 (다)의 계약 결혼이라는 글에서 오로지 '계약'이라는 단어에만 착안해 이를 제시문 (나)의 공동체적 사회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적절하고 정확한 제시문을 찾아내는 데는 물론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그것이 어렵다고 해서 부적절한 제시문을 덜컥 내놓고 몇 개 단어의 문면만을 좇아 억지춘향식으로 끼워 맞추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연세대 문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대 2007학년도 정시 논술의 제시문들도 그런 면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크다.
서울대 제시문은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 발췌문을 제시한 다음 한국 사회에서의 정부, 기업,개인의 변화 속도를 물었는데 제시문 중에는 아름답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서 역시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이번 연세대 2008학년도 모의논술 문제의 제시문 (라)의 도표들을 해석하는 데도 오해의 여지가 많다.
제시문 (라)에서 출제자는 표 (A) '각국의 인구 대비 법조인구 및 변호사 1인당 인구'와 표 (B) '한국의 인구 대비 변호사 수 및 법률 상담건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표 (A)에 따르면 한국의 법조 인구와 변호사 1인당 인구 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사회에 비해 매우 적다.
또 표 (B)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특히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법률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가지 표를 종합해 해석하자면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서구에 비해 여전히 법조 인구가 적지만 최근 들어 점차 서구형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제자가 이 문제에서 굳이 변호사 숫자와 법률상담 건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제시문 (나)의 사회에서 제시문 (다)와 같은 유형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결론을 요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제 3]이다.
학생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을 문제는 역시 [문제 2]다.
이 문제는 서로 다른 방식의 인간 관계를 제시한 두 제시문 가운데 본인은 어떤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를 '인간 관계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것부터가 오류에 가깝지만 제시문 (다)의 계약 결혼적 인간 관계를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을 계약 관계로 환원한다?"고 분개하라는 말인지.
계약 사회의 기초인 신뢰라는 주제와 계약 사회가 구축해 놓은 현대 문명의 시스템적 효율성에 대한 어떤 내용 제시도 없이 오로지 결혼까지도 계약으로 처리해 버리는(사실은 전혀 그렇지도 않지만), 일견 '매우 특별한 인간'을 사례로 내놓고 찬반을 말하라면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답안을 써야 하는지. 그렇다면 제시문 (라)는 한국은 지금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주 그릇된 서구적 계약사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인지.
◆ 아직 갈길 먼 논술문제
연세대 모의눈술 문제가 묻고 있는 핵심적 질문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매우 적절치 못한 제시문이 끼어들면서 줄거리가 크게 비틀어지고 말았다.
논술은 치열한 논리적 사고와 배경적 지식을 묻는 대학 입시 과정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 다음 눈치껏 주어진 틀 속에 자신의 생각을 구겨서 집어넣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학 측은 보다 좋은 제시문을 낼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시문은 시험의 소재이고 답안을 얻어내기 위한 화두로서의 성격을 갖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문장 속에 적절한 지식을 담아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읽을거리가 될 수 있도록 출제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대학 논술 문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계약 결혼→계약→변호사로 비약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규재 생글생글 편집인 jkj@hankyung.com
출제 의도는 좋았지만 부적절한 제시문에 '당혹감'
창의성보다 출제자 의도 끼워맞추는 고답적 논술은 곤란
연세대 2008년도 모의 논술 문제에 대해 우선 매우 당혹스럽다는 평가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난이도가 높아서가 아니라 주제를 논증해 가야 하는 제시문들이 매우 부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서다.
물론 모의 문제이기 때문에 앞으로 실제 출제될 논술 문제의 유형만 보여주었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완결성이 떨어지는 문제를 대하는 학생들의 당혹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문제의 출제자는 제시문들이 서로 대립적인 사회 구조를 표현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어떻게 읽더라도 출제자가 요구하는 상반된 입장을 정리할 수 없는 제시문들로 짜여져 있다.
물론 문제는 문제일 뿐이므로 출제자의 의도를 찾아내 억지로라도 써야 하겠지만 그렇게 해야 하는 과정 자체가 얼마나 구차스러울지. 학생들의 창의성을 테스트하겠다는 논술 시험이 출제자의 의도에 끼워 맞추는 고답적 논술 시험이 되고 말았다.
연세대 모의 논술의 문제점을 검토해 보자.
☞모의논술 문제는 생글생글i(www.sgsgi.com) 참조
◆ 이상한 제시문
제시문 (가)는 이기적 개인들이 아무런 생산적 협동 작업도 해내지 못하는 교착 상황을 표현하고 있다.
서로 조금씩만 도와주면 될 일을 속 좁게도 자기 욕심만 부리다가 둘 모두에게 손해를 초래하는 상황이다.
학생들도 잘 아는 게임 이론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상황이다.
사회 구성원 서로는 자기의 이익만 좇을 뿐 상대를 위해,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보다 높은 총화를 달성하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잘 조직된 현대 사회일수록 이런 퇴행적 이기주의를 잘 통제하고 있다.
제시문이 밝히고 있듯이 이곳은 자연 상태다.
이 같은 자연 상태를 극복하는 방법은―논술문 출제자가 보기에는―두 가지다.
이것이 제시문 (나)와 (다)에 제시되고 있다.
제시문 (나)의 묘사에 따르면 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호혜적이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충만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
장례를 치를 때도 이웃들이 서로 도와가며 어려움을 나누고 있다.
이 마을은 촌락 공동체적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마을 주민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이익사회적인 면모보다는 혈연사회적 외양을 보여준다.
이들은 자연 상태와는 달리 서로에게 호의적인 행동이 서로에게 이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동네를 방문하는 상인들조차 어느 집에 무슨 물건이 얼마나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거래 비용도 거의 없다.
협동하고 상호 부조하는 공동체 사회에 대한 애정 어린 묘사다.
출제자는 이 마을을 통해 제시문 (가)에 나타난 자연 상태를 극복하는 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문제는 제시문 (다)이다.
만일 이 제시문이 그토록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계약 결혼'의 발췌라는 것을 모른다면 제시된 문장만으로는 전체 상황을 이해하기 어렵다.
'2년의 계약기간 동안'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이 구절을 가지고 '옳다구나 공동체 사회가 아닌 계약 사회다'라고 할 수 있겠는지. 어떻게 읽더라도 이 제시문은 '계약'이라는 단어만 빼놓는다면 제시문 (나)에서 묘사한 사회와 대립한다고 보기 어렵다.
혈연적 공동체 사회와 계약에 근거한 이익 사회를 대립시키기로 한다면 이 제시문 (다)는 매우 부적절하다.
그런데 출제된 문제는 바로 그것을 묻고 있다.
제시문 (다)는 '두 사람이 인습에 속박당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을 이루어내겠다는 약속'으로 읽힐 뿐, 시중의 반도덕적 매춘 계약처럼 이해타산적이거나 혹은 이해타산을 조절하는 한 방법으로 계약결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절대 읽혀서는 안 된다.
보부아르가 말하는 계약 결혼은 결코 상업적 사회적 계약과 비슷하게 읽혀야 할 이유가 없다.
두 사람은 결혼 제도가 또 하나의 속박으로 작용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자유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할 뿐이다.
오히려 결혼이라는 잘 정비된 사회적 계약을 거부하고 있다.
계약이라는 단어를 쓰고는 있지만 이때의 계약이 계약 사회, 더구나 제시문 (라)에서 보여주듯이 변호사가 개입해야 하는 그런 계약적 이익사회의 질서를 추구한다고 본다면 어불성설이다.
사랑을 주제로 논술 문제를 내면서 "나, 자기 깨물어 죽여 버릴 거야!"라는 제시문을 내고 이것을 살인 동기라고 해석할 수 없는 것과 같다.
◆ '계약결혼'의 '계약'으로 계약사회 설명하나?
[문제 1]은 제시문 (가)에서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무엇이며 이 문제에 대해 제시문 (나)와 (다)가 각각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지 비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문 (나)와 (다)는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사과와 오렌지를 비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제시문 (나)에 대비되는 혹은 (나)와 상반된 해결책을 찾고 있는 제시문을 고른다면 차라리 현대 사회의 대기업 내부 풍경을 묘사하거나 실물 없이도 거액이 오가는 국제 신용무역거래에 대한 글을 내놓는 것이 맞다.
노동계약 사례라도 제시하는 것이 마땅하다.
보부아르의 계약 결혼을 굳이 한 쪽의 제시문으로 낸다면 인습적 결혼에 희생당하는 시골 처녀에 대한 소설 대목이라도 찾아서 상대 제시문으로 내는 것이 맞다.
제시문 (다)의 계약 결혼이라는 글에서 오로지 '계약'이라는 단어에만 착안해 이를 제시문 (나)의 공동체적 사회에 대한 대안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적절하고 정확한 제시문을 찾아내는 데는 물론 상당한 노력이 들어간다.
그것이 어렵다고 해서 부적절한 제시문을 덜컥 내놓고 몇 개 단어의 문면만을 좇아 억지춘향식으로 끼워 맞추라고 한다면 학생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연세대 문제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서울대 2007학년도 정시 논술의 제시문들도 그런 면에서는 비판의 여지가 크다.
서울대 제시문은 앨빈 토플러의 '부의 미래'에서 발췌문을 제시한 다음 한국 사회에서의 정부, 기업,개인의 변화 속도를 물었는데 제시문 중에는 아름답지도, 정확하지도 않은 내용이 일부 포함되어 있어서 역시 당혹감을 안겨 주었다.
이번 연세대 2008학년도 모의논술 문제의 제시문 (라)의 도표들을 해석하는 데도 오해의 여지가 많다.
제시문 (라)에서 출제자는 표 (A) '각국의 인구 대비 법조인구 및 변호사 1인당 인구'와 표 (B) '한국의 인구 대비 변호사 수 및 법률 상담건수 추이'를 보여주고 있다.
표 (A)에 따르면 한국의 법조 인구와 변호사 1인당 인구 수는 미국 영국 독일 등 서구 사회에 비해 매우 적다.
또 표 (B)는 최근 들어 한국에서도 변호사 수가 크게 늘어나고 있고,특히 변호사 숫자가 늘어나는 것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법률상담 건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두 가지 표를 종합해 해석하자면 한국은 일본과 더불어 서구에 비해 여전히 법조 인구가 적지만 최근 들어 점차 서구형으로 변해 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출제자가 이 문제에서 굳이 변호사 숫자와 법률상담 건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한국 사회가 빠른 속도로 제시문 (나)의 사회에서 제시문 (다)와 같은 유형으로 변해 가고 있다는 결론을 요구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문제 3]이다.
학생들이 가장 골머리를 앓을 문제는 역시 [문제 2]다.
이 문제는 서로 다른 방식의 인간 관계를 제시한 두 제시문 가운데 본인은 어떤 방식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의 문제'를 '인간 관계의 문제'로 규정하고 있는 것부터가 오류에 가깝지만 제시문 (다)의 계약 결혼적 인간 관계를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남녀간의 순수한 사랑을 계약 관계로 환원한다?"고 분개하라는 말인지.
계약 사회의 기초인 신뢰라는 주제와 계약 사회가 구축해 놓은 현대 문명의 시스템적 효율성에 대한 어떤 내용 제시도 없이 오로지 결혼까지도 계약으로 처리해 버리는(사실은 전혀 그렇지도 않지만), 일견 '매우 특별한 인간'을 사례로 내놓고 찬반을 말하라면 학생들은 도대체 어떤 답안을 써야 하는지. 그렇다면 제시문 (라)는 한국은 지금 변호사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아주 그릇된 서구적 계약사회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인지.
◆ 아직 갈길 먼 논술문제
연세대 모의눈술 문제가 묻고 있는 핵심적 질문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그러나 매우 적절치 못한 제시문이 끼어들면서 줄거리가 크게 비틀어지고 말았다.
논술은 치열한 논리적 사고와 배경적 지식을 묻는 대학 입시 과정이다.
출제자의 의도를 파악한 다음 눈치껏 주어진 틀 속에 자신의 생각을 구겨서 집어넣는 그런 과정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대학 측은 보다 좋은 제시문을 낼 수 있도록 배전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제시문은 시험의 소재이고 답안을 얻어내기 위한 화두로서의 성격을 갖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문장 속에 적절한 지식을 담아내야 하며 궁극적으로는 학생들에게 수준 높은 읽을거리가 될 수 있도록 출제되어야 마땅하다.
이런 점에서 대학 논술 문제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계약 결혼→계약→변호사로 비약해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규재 생글생글 편집인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