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교과서 모형 둘러싼 논쟁으로 교육계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교육인적자원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공동으로 경제수업의 참고자료로 사용될 '경제교과서 모형'을 내놓자,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등 노동계에서 거세게 반발하고 있는 것.민주노총은 전경련에 맞대응을 해 노동 부문을 강화한 새 경제교과서를 개발하겠다는 뜻까지 밝힌 상태다.

새 경제교과서 모형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일까.

◆새 교과서 모형은 '실 사례' 중심의 교과서 참고자료

경제교과서 모형은 '기존의 경제 교과서가 지나치게 어렵고 자본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는 지적이 일자,전경련과 교육부가 공동으로 투자해 만든 교사용 참고자료다.

실제 집필은 한국경제교육학회에 속한 경제분야 대학 교수들이 담당했다.

새 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실제 사례 중심이라는 것.이를 테면 △영화관은 왜 아침 첫회에 요금을 할인해 줄까 △남미국가들은 왜 미국보다 가난하게 사는가 △유명 브랜드의 운동화는 왜 유명하지 않은 브랜드의 운동화보다 비싼가 등 실제 우리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사례나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경제 현상에 대해 알 수 있게 하고 있다.

논란이 된 부분은 교과서 전체 내용이 아닌 노동 문제를 기술한 일부분이다.

교과서에는 노동조합과 관련해 "노동조합이 있는 기업은 높은 임금을 받아 들이는 대신 근로자를 적게 고용하는 쪽으로 기업을 경영한다.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은 절대적인 권한이 아니므로 필요에 따라 정부가 제한할 수 있다"고 씌여져 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노사화합에 힘쓰는 사회분위기와 달리 노동자들의 운동을 폄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제계는 노동계의 주장과 관련,"있는 사실을 기술했을 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소득분배와 관련된 대목도 논란거리다.

교과서에는 "작은 떡에서 30%를 가지는 것보다 큰 떡에서 20%를 가지는 것이 더 클 수 있다"고 나와 있는데,이를 두고 노동계는 "분배와 성장을 균형있게 하려는 사회적 노력을 가볍게 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경제계는 "경제학의 극히 기본적인 원칙을 설명한 것"이라고 맞받아 치고 있다.

◆가치기준의 옳고 그름 판단은 학생의 몫

실제 교과서를 집필한 한국경제교육학회 교수들은 경제의 기본원리를 설명하고 경제 현실을 이해시키는 것이 경제교과서의 목적이 되어야지,가치 기준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 편'이냐,'기업 편'이냐만 따지다 보면 경제교과서가 비과학적인 것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뜻을 밝힘과 동시에 가치 기준에만 집착하는 노동계에 대해 못마땅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는 것.

이 논쟁과 관련,최근 방한한 미국 경제학회 경제교육분과위원장인 마이클 와츠 미국 퍼듀대 교수(57)는 "경제 문제에서 자유와 평등,성장과 분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는 다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논쟁인 만큼 교과서가 어느 쪽이 옳다고 손을 들어주는 방식의 교육을 시켜서는 안된다"며 "원리와 개념을 쉽게 설명하는데 주력하는 교육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갈팡질팡하는 교육부

경제교과서에 대한 교육부의 애매한 태도도 '교과서 갈등'을 조장한 원인이 됐다.

처음 교과서 모형이 나올 때만 해도 교육부는 "향후 개정될 새 경제교과서의 원형이 될 것"이라며 교과서 모형에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교과서와 관련해 노동계 반발이 잇따르자,"교육부와 전경련은 실제 집필자가 아니기 때문에 저자명에 교육부와 전경련을 넣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뒤늦게 발표했다.

교육부의 교과서 저자표기와 관련된 갑작스런 입장 변경과 관련해 교육 전문가들은 지난 11일 새 경제교과서 모형이 공개된 후 민주노총,전교조 등 노동 관련 단체들이 잇따라 비난 성명을 내자 '정치적인 고려'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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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몰라도 대학 가는데 왜 배워요" … 학생들에겐 '강 건너 불'

"경제요. 그래프 많고 복잡해서 공부 하기 싫어요.

경제 안 배워도 대학 가는데 지장이 없는데 뭐하러 배우나요."(서울 A고교 2학년 김영모 군)

경제교과서가 교육계의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대입 수험생들에겐 '강 건너 불'이다.

교과서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던간에 자신과 별 상관이 없다고 여긴다.

고등학생의 경제과목 이수율이 50%에 육박하고 상당한 주(洲)가 졸업을 위해 경제를 배우도록 하는 미국 등과는 달리 한국은 경제과목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다.

중학교 때 사회시간에 한 달 정도 배우고 고등학교 때도 1학년 때 한 단원 정도만 공통적으로 경제교육을 받는다.

고등학교 2,3학년이 되면 경제는 선택과목으로 분류되는데 대부분 학생들은 어렵고 진학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로 선택을 기피하는 실정이다.

실제로 2007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 응시자 중 경제선택자는 27.8%로 전체 8과목 중 6위에 그쳤다.

경제를 제대로 가르칠 교사들도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사회교육과를 졸업한 교사들이 경제를 가르치는데 이들이 대학에서 배운 것은 경제학개론 수준이다.

국사나 지리를 전공한 교사들이 경제를 가르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 교사들은 우리나라의 경제교육이 매우 미흡한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대한상공회의소(www.korcham.net)가 최근 중·고교 교사 1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경제와 경제교육에 대한 인식'에 따르면 응답교사의 89.3%가 현행 학교 교육과정에서 경제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부족하다'고 답변했다.

'적당하다(8.0%)'거나 '충분하다(2.7%)'는 의견은 10.7%에 그쳤다.

"현 교과과정이 기업과 시장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가"를 묻는 질문에는 '도움되지 않는다(55.3%)'가 '도움된다(44.7%)'는 응답보다 높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