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취업정보 사이트가 지난달 20~30대 직장인 1108명을 대상으로 '소득이 다소 낮아지더라도 좀 더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를 물었더니 절반 이상인 52.5%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답했다.

각박한 회사 생활에서 '다운 시프트'를 원하는 직장인이 늘고 있는 것이다.

다운 시프트는 자동차의 기어를 저속으로 변화시켜 넣는 것에서 유래한 말로 고소득을 버리고 여유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농림부 조사에 따르면 각박한 도시 생활을 피해 '귀농(歸農)'하는 이가 해마다 30%씩 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한 달에 325만원(2006년 도시근로자 평균 월소득)을 벌 것이 기대되는 도시에서의 생활을 버리고,254만원(지난해 월평균 농가 소득)밖에 안 되는 농촌 생활을 택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국민 개개인이 삶의 질을 판단함에 있어 월급 봉투에 찍혀 있는 숫자 외에 여가 시간처럼 숨어 있는 가치가 점점 중요성을 더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실질적인 소득 수준의 향상 말고도 국민 개개인이 '더 잘살고 있다'고 느끼게 하기 위한 전제 조건들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선 '제대로 된' 일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똑같이 하루 8시간 일하고 한 달에 300만원을 벌더라도 근무 시간이 수시로 바뀌고 고용 불안에 시달리는 파트타임 근로자와 규칙적인 출·퇴근 및 적어도 10년 이상은 미래 소득을 예상할 수 있는 정규직 근로자의 삶이 같다고 할 수는 없다.

정부도 이를 깨닫고 늘어나는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으로 비정규직 보호법을 만들었다.

올 7월부터는 2년 이상 상시 고용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도록 한 것.하지만 이 법안으로 인해 오히려 그나마 일자리를 갖고 있는 비정규직마저 실업으로 내몰릴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안정적인 물가도 중요한 요소다.

설령 명목상의 소득이 올랐다고 할지라도 물가가 그보다 가파르게 오르면 실질적인 삶의 질은 오히려 저하된 것으로 봐야 한다.

최근 유력 대선 주자들이 너도 나도 7%대의 경제성장률 달성을 약속하고 있다.

하지만 대선 주자들이 이와 함께 물가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복안을 내놓고 있는지 살펴 봐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동산 시장의 안정도 필수적이다.

지난 1년간 서울 수도권 아파트 한 채당 평균 가격 상승폭은 56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봉 5000만원인 사람이 1년 내내 벌어 봐야 집값은 고사하고 아파트값 상승분도 따라가지 못했다는 얘기다.

중산층인 월급 생활자가 아무리 아껴 모아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는 나라를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같은 경제적인 측면 이외에 정치·사회적인 질서와 안정도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반드시 갖춰져야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7.64를 기록했다.

이는 소득 상위 20%의 평균 소득이 하위 20%보다 7배 이상 많다는 의미다.

2003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격차다.

이처럼 상·하위 계층 간의 소득차가 점차 커지는 한편 외환위기 이후 중산층에 해당하는 국민의 수는 점점 줄고 있다.

중산층이 엷어지는 '모래시계형(形)' 사회의 등장은 한 나라에 '두 개의 국민'을 만드는 꼴이다.

사회가 계층 간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치달을 때 그 속에서 구성원이 행복했던 역사는 없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부자들의 배려가 필요한 이유다.

'신뢰가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도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한 방법이다.

사회 구성원들 간에 '무규칙 이종격투기'와 같은 경쟁을 벌여야 하는 속에서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공정한 룰을 만들고 이를 누구나 따를 것이라는 전제하에서만 시장 경제는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할 수 있다.

이름 높은 고승에게 '잘산다는 게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 삶'과 같은 현학적인 답변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문명 사회의 업적을 모두 포기하고 다 같이 구도의 길을 걸을 수는 없는 일이다.

적어도 현대 사회의 기본 질서인 민주주의와 시장 경제하에서의 정상적인 삶을 버리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국민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정치의 바른 길이다.

차기현 한국경제신문 생활경제부 기자 khc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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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들 '행복지수' 49점… 낙제

지난해 LG경제연구소가 한국갤럽에 의뢰하여 20~40대 직장인 556명을 대상으로 생활에서 느끼는 행복감을 조사한 결과 2006년 우리나라 직장인의 행복 지수는 100점 만점에서 49.7점으로 '낙제' 점수를 기록했다.

지난해 영국 신경제재단(NEF)이 발표한 행복지수(HPl)에서 우리나라가 178개국 중 102위에 머무른 것을 감안하면 크게 예상을 벗어난 수치는 아니다.

이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나라는 의외로 인구 21만명에 불과한 남태평양의 섬나라 바누아투였다.

경제 규모(GDP)로만 따지면 세계 233개국 중 207위인 가난한 나라다.

'행복 지수'란 영국의 심리학자 로스웰이 고안한 것으로 80가지 상황 속에서 사람들이 행복함을 느끼는 5가지 상황을 고르게 하는 실험을 반복한 끝에 도출된 지표들로 측정하는 주관적인 행복 지수다.

따라서 바누아투 국민들이 객관적으로도 높은 삶의 질을 누린다고 보긴 어렵다.

모두들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못하거나,국민성이 낙천적이어서 행복 지수가 높게 나올 수 있다.

종합적인 삶의 질을 평가하는 객관적 지표로는 유엔의 인간개발 지수(HDI)가 있다.

이 조사에선 노르웨이가 지난해를 포함해 6년 연속 정상을 지켰다.

인간개발 지수는 평균 수명,교육 수준,부(富),남녀 평등 등 인간적인 삶의 수준에 대해 객관적인 점수를 매긴다.

노르웨이는 평균 수명 79.6세, 초·중등학교 등록률 100%, 장기 실업률 0.4% 등을 기록해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한국은 26위를 기록했다.

앞서 행복 지수가 높았던 상위 5개국 중 인간개발 지수에서 한국을 앞선 나라는 단 한 곳도 없다.

다만 한국의 문제는 객관적인 삶의 질이 크게 나쁘지 않은데도 국민들이 주관적인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져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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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과서 읽기

◆커버스토리 관련

▷'경제'(두산) 172쪽:GDI와 GNI

▷'경제'(천재교육) 191쪽:국내총생산 개념의 유용성과 한계

▷2006년 9월 모의고사 15번 문제:경제성장률과 고용 탄성치

(탐구 과제)

1. 명목소득과 실질소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설명하고 명목소득이 오르는데 실질소득이 오르지 못하는 요인을 토론해 보자.

2. 경제 발전과 소득 증가 이외에 국민들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요소들에 대해 토론해 보자.

*도움말 주신 분=육근록 선생님(서울 청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