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읽는 경제학] 이자제한법 되살려야 하나요?
→한국경제신문 2월22일자 A4면


권오규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21일 이자제한법 부활과 관련,"필요성에 동의하고 있다"고 찬성 의사를 밝혔다.

이는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이자제한법에 반대했던 것과는 상반되는 발언으로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총리가 정치 논리에 지나치게 휘둘리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권 부총리는 이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과도한 이자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만큼 (이자제한법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 부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해 7월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밝혔던 것과는 정반대되는 것이다.

그는 당시 "(이자제한법의 부활은) 규제의 실효성 확보는 어려운 반면 신용도가 낮은 서민들의 사채 이용이 증가해 오히려 서민 부담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현승윤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hyuns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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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통념을 넘어설 정도로 지나치게 높은 사채(私債) 이자는 무효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한발 더 나아가 "이미 낸 이자는 돌려받을 수 없다"는 과거 판례를 뒤집어 고리 사채 피해액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는 길도 터 놓았다.

여야 또한 "서민생활의 안정을 위해 고리 사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지난해 9월 의원들의 발의로 국회에 상정된 이자제한법 관련 두 개 법안을 통과시킬 움직임이다.

그동안 이자제한법 개정에 반대해 온 재정경제부도 찬성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 폐지됐던 이자제한법의 부활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자제한법 부활 추진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서민경제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는 고리 사채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외환위기 후 서민 가계를 옭아맸던 고리 사채가 한동안 잠잠한가 싶더니 근래 들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로 2002년 대부업법이 공포되면서 최고 이자율이 연 66%로 제한됐지만 사금융 시장의 평균 이자율은 연 223%에 이르고 있으며,이로 인해 사금융 이용자의 85%가 2년 안에 신용불량자로 추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정이 이런데도 이자제한법 부활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민단체,"대부업체 폭리 막고 경제적 약자 보호해야"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고리 사채가 뿌리뽑히지 않는 데는 무엇보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한다.

대부업체의 폭리를 막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이자제한법의 부활이 시급한 상황임에도 정부는 대부업체의 음성화로 인해 서민 돈줄이 오히려 막힐 것이라며 이를 반대해왔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4만여개에 이르는 등록·미등록 대부업체들이 지방자치단체의 관리를 받고 있어 관리·감독에도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정치권과 정부가 민생을 최우선으로 여긴다면 이자제한법을 서둘러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관련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악덕 사채업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이들에 대한 보다 강력하고 지속적인 단속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현행 대부업법상 최고 이자율(연 66%)로는 원금 상환이 사실상 쉽지 않은 만큼 이를 하향 조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대부업계 등,"서민을 사금융시장에서 퇴출시킬 수도"

이에 대해 대부업계 등은 이자제한법이 부활하면 서민들마저 사금융시장에서 밀려나는 역효과를 유발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업여건이 그래도 나은 대형 대부업체들도 높은 자금 조달비용과 대출 부실화로 정상적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마당에 이자제한법까지 시행되면 대부업계 전체가 부실화할 게 불 보듯 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업계는 조달 금리가 연 21.06%,대손상각률(대출금 떼인 것을 손실로 처리하는 비율)은 21.23%에 달하는 고비용 구조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련 업계는 또 우리의 실정을 감안하지 않은 이자제한법 시행은 그나마 양지로 이끌어낸 대부업계를 부실하게 만들어버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로 인해 사금융 대출시장이 위축되면서 급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의 자금 조달 창구가 막히고,서민들을 초고금리의 음성적 사채시장으로 몰리게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무담보 소액대출 활성화 등 서민지원책 강구해야

서민가계를 위협하는 과중한 금융 부담을 덜어줘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자율 상한을 법으로 정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고 본다.

우선 이자율 제한은 서민 보호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자칫하면 서민들에게 더 큰 부담을 지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민들은 금리가 싼 제도금융권을 이용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급한 돈을 구하자면 비싼 이자를 물고서라도 사채를 쓸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이자율을 법으로 묶는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이자율 상한을 모든 사금융에 강제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서민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금융서비스를 확대하고 그에 대한 접근 기회를 늘리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대책이 될 수 있다.

무담보 소액대출(마이크로크레디트)을 활성화하고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을 늘리는 것도 한 방법이다.

우리의 경제현실에 걸맞은 서민지원 대책 마련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 풀이 ]

◆대부업=사채업의 양성화를 목적으로 2002년 10월 제정된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는, 소비자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업체다.

최고 금리는 연 66% 규정돼 있으며 불법 채권추심 행위도 금지돼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 업체의 경우 일본계 대부업체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자제한법=금전대차에 관한 이자의 최고한도를 정함으로써 폭리행위를 방지하고 경제적 약자를 보호할 목적으로 1962년 제정됐다.

금전대차에 관한 계약상의 최고 이자율은 연 4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돼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와의 협의에 의해 1998년 1월 13일 폐지됐다.

마이크로크레디트(무담보 소액대출)은행=담보없이 창업대출을 해주는 곳으로, ‘신나는 조합’,‘아름다운 재단’,‘사회연대은행’ 등이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업 아이템은 있지만 자금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빈민층에 돈을 빌려줘 창업을 유도하는 기능을 한다.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지만 사회연대은행의 상환율은 97%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983년 방글라데시에 세워진 그라민은행이 그 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