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좌파정권의 선봉장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좇아 국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다른 중남미 국가들이 정치·경제적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근 1~2년 동안 중남미 지역에 열풍을 몰고온 차베스식 좌파 모델이 자원이 풍부한 베네수엘라에선 어느 정도 적용되고 있지만 인근 다른 국가들에선 사실상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차베스식 좌파 정책을 모델로 삼고 있는 인근 중남미 국가들이 자금 부족과 반대 세력의 움직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베네수엘라는 풍부한 석유 자원을 갖고 있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 실현에 어려움이 없지만 다른 좌파 중남미 국가들은 자원 부족과 취약한 정치 기반 등으로 정책 실현에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에콰도르의 경우 반미 좌파 이념을 내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이 지난 1월 취임한 이후 '빈민을 위한 국가 설립'이란 목표 아래 의회 해산을 추진하고 100억달러에 달하는 대외 채무를 당분간 갚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최근 그는 정치인들의 반대로 의회를 해산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 할 처지에 놓여 있다.

또 정책 추진에 실용적 접근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몰리면서 코레아 대통령은 대외 채무 가운데 1억3500만달러를 갚겠다고 발표했다.

WSJ는 "코레아 대통령이 최근 겪고 있는 이 같은 상황은 혁명적 포퓰리즘이 현실적으로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제2의 차베스'라 불리며 볼리비아의 급진 좌파 정책을 이끌고 있는 에보 모랄레스 대통령도 정책 실현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그동안 차베스식 천연가스전 국유화와 경제 통제력 강화를 위한 새 헌법 제정을 강력히 추진해 왔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최근 스위스 회사가 소유 중이던 미네랄 광산을 국유화했다고 발표하면서 이 같은 정책 추진을 가속화하기도 했다.

하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이곳 저곳에 장애물이 많이 놓여 있는 상태다.

먼저 국유화 정책은 자금과 전문가의 부족으로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헌법 개정도 지방 정부의 반발로 더 이상 이끌어 나가기 어려운 상태다.

지리적으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사이에 있는 페루에서도 비슷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알란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이 과거의 급진 좌파적 성향을 버리고 자유 무역과 시장 개방 공약을 내세우며 온건 정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는 것.

가르시아 대통령은 1985~1990년 첫 집권 때 은행 국유화 정책을 추진하고 대외 부채 상환 비율을 국내총생산(GDP)의 10% 내로 제한하는 등 급진적 정책을 추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경제를 거덜낸 '실패한 리더'에서 최근에는 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온건 좌파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베네수엘라의 경우 막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서구 자본에 의존하지 않고도 좌파 정책을 추진해 나갈 수 있지만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 다른 중남미 좌파 국가들은 그만큼 경제적 기반이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정책 수행에 부작용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례로 차베스 대통령은 전력 통신 등 국내 주요 산업 국유화를 추진하면서 관련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미국 기업의 주식을 전부 사들이겠다는 배짱을 보일 수 있지만 자원이 풍부하지 않은 인근 좌파 국가들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국제문제 연구소인 인터아메리칸다이얼로그의 마이클 시프터 부소장은 "중남미 일부 지도자들이 차베스식 모델에 열광하고 있지만 차베스식 모델을 자국 내에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 어려움이 따르는 또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WSJ는 또 "차베스 대통령은 군부의 지지를 포함한 정치적 기반이 탄탄하지만 다른 중남미 국가들은 좌파적 이념을 뒷받침해 줄 만한 지지 기반이 취약한 것도 문제점"이라고 덧붙였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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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베스는 전략.전술가" 다른 모습 ]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보통 혁명적이고 급진적 이미지로 묘사되지만 실상 그는 고도의 전략을 갖춘 전술가라는 분석이 나왔다.

영국의 로이터 통신은 최근 "차베스는 자신의 좌파 정책을 밀어붙이며 중남미 영웅 체 게바라와 같은 이미지를 만들면서도 동시에 국제 자본시장과 상대적인 평화를 유지, 다른 과격 혁명가들의 오류를 피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주변의 다른 중남미 좌파 정부들과도 정책 추진에서 차별화를 보이고 있다.

그의 분신으로 평가되는 급진 좌파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이 대외 채무를 갚지 않겠다는 급진적 발언을 자주 내세우지만 차베스는 그러한 돌출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또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경우 국유화 정책 강행을 위해 유전 지대에 군 병력을 파견하는 과격한 성향을 보이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최소한의 법적 장치를 제공해 베네수엘라에 진출해 있는 에너지 대기업들과의 즉각적인 충돌을 피하고 있다.

그 대신 차베스는 이른바 '대통령령 입법권'과 중앙은행 통제를 통해 권력을 공고화하고 베네수엘라 선거 지도를 바꾸기 위한 선거구 재획정에 나서는 등 정치적 노련함을 보이고 있다.

베네수엘라 메트로폴리타나대학 정치학과 움베르토 은하임 교수는 "차베스는 지금이 특수한 상황으로 1960년대 쿠바와는 다르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차베스 대통령은 또한 2002년 4월 '반(反)차베스 쿠데타'도 물리쳤고 같은 해 말 두 달에 걸친 석유산업 파업도 무위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지금은 단원제 의회가 대부분 친(親)차베스 계열 의원들로 채워져 있다.

베네수엘라 야당은 차베스의 1인 권력 집중을 비난하지만 총선에도 불참할 정도로 지지 기반이 약한 상태다.

미국 포모나대학의 중남미 전문가인 미팅커 살라스 교수는 "차베스는 허세 부리는 독재자쯤으로만 생각하거나 과소 평가해선 절대 안 될 인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