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2월11일자


[뉴스로 읽는 경제학] 의료법 개정안이 논란을 빚는 까닭은?
전국의 의사들이 11일 대규모 집회를 갖고 정부에 의료법 개정안을 전면 철회하고 원점에서 다시 논의할 것을 요구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오후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의료법 개정 저지 궐기대회를 열었다.

행사에는 개원의들과 병원의사,전공의,의대생 등 2만여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또 치과의사협회와 한의사협회,간호조무사협회 회원들도 동참했다.

일부 시·도 의사회에서는 여러 대의 버스를 빌려 집단 상경한 것으로 전해졌다.

의사들은 결의문을 통해 "보건복지부는 의료법 개악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국민건강과 한국 의료의 백년대계를 위해 백지 상태에서 심도 있게 논의할 것"을 촉구했다.

또 "만일 정부가 의료계의 의견을 무시하고 의료법 개정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모든 의료인들이 연대해 저지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의료법은 환자 편의 증진과 의료산업 육성·발전을 위해 꼭 추진해야 한다"면서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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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법 개정안을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의사협회는 "의료법 개정안은 의사의 진료권을 훼손한 개악"이라며 집단 휴진에 들어가고 궐기대회를 개최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의료 행위를 규정하면서 의사의 고유 권한인 '투약'이라는 문구를 개정 법안에서 빼고,간호사의 업무에 '간호 진단'이라는 용어를 넣어 의사의 권한을 침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의사들의 이러한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34년 만에 이뤄지는 의료법의 전면 개정 문제를 놓고 정부와 의료계가 정면 충돌하고 있는 양상이다.

이에 따라 2000년 의약분업 때처럼 의사들의 전면 파업 사태가 재연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번 사태 때 진료 공백으로 인해 환자들이 골탕 먹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 사회 지도층의 하나인 의사들이 '악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가운을 벗고 거리로 나설 만큼 개정 의료법 규정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일까?


◆의사 진료권 침해 여부 놓고 정부와 의협 간 공방전

의사협회에서는 "투약은 의사의 고유 권한으로 약사법상 약사의 조제 행위는 임시로 위임된 것"이라며 '투약'을 의료 행위로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복지부에서는 "조제권은 원칙적으로 약사의 권한이며,의사는 제한된 범위에서 조제권이 있는 것"이라며 '통상 행위'에 투약이 당연히 포함된다고 반박한다.

간호사 업무에 '간호 진단'을 포함시킨 데 대해서도 의협은 "의사의 업무 영역 침해"라고 주장하는 반면 복지부는 "간호사가 환자를 간호하는 과정에서 취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판단을 의미하는 것일 뿐"이라고 맞서고 있다.

'표준 진료 지침'에 대해서도 의협은 "의료 행위를 규격화할 우려가 있으며 의료 행위에 대한 국가 통제 수단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지만,복지부는 "자율적 권고사항으로 의료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장치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유사 의료 행위의 제도화와 관련해서도 의협은 "국민 피해가 우려된다"는 입장인 데 비해 복지부는 "통제할 법적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의료법 개정안 반대는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

물론 의료법 개정으로 관련 집단 간 이해관계가 엇갈리고,이로 인해 갈등과 충돌이 빚어질 수도 있다.

문제는 이러한 사태가 의료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의사와 약사,의사와 간호사 집단 간 '밥그릇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협회에서 제기한 몇몇 쟁점들이 의사의 권익을 침해할 만큼 심각한 사안인지는 의문이다.

더욱이 의협은 그동안 의료법 개정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밝혀왔음에도 뒤늦게 다른 단체들과의 합의 내용을 뒤엎고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정안에는 많은 국민이 요구해온 의사면허 갱신에 관한 사항은 빠졌고,의료계에 유리한 양방·한방 협진 및 공동 개원,프리랜서 의사제 도입,의사면허 정지 대상 범위 축소 등이 대거 포함돼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의사들이 실력행사를 하고 나선다면 누가 선뜻 납득할 수 있겠는가.

한마디로 약사 간호사 등에 비해 우월적이고 독점적인 지위를 고수하기 위한 의사들의 집단 이기주의적 행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 건강과 환자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개정돼야

첨단기술 개발을 비롯해 환자 욕구의 다양화 등 의료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맞춰 낡은 법을 개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를 정비하고,의료체계의 틀을 달라진 상황에 부합하도록 새롭게 짜는 것은 시대적 요구라는 얘기다.

이 때문에 정부는 앞으로 개정안을 법제화하는 과정에서 의료계를 협상의 테이블로 이끌어내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의료계 또한 명분도,실리도 없는 주장을 펴기 위해 집단 휴진 등을 통해 또다시 환자를 볼모로 끌어들여서는 결코 안 된다.

정부와 의료계는 더 이상 힘겨루기나 밀어붙이기 식으로 이번 사태를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되며,정당한 절차와 경로를 통해 의견을 제시하고 합의점을 도출해 나가야 한다.

국민 건강과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 풀이 ]

◆의료법=적정한 의료서비스를 유도해 국민건강을 보호·증진한다는 뜻에서 1951년 9월 ‘국민의료법’으로 제정됐으며, 1973년 2월 의료법으로 전면 개정됐다.

이후 28차례에 걸쳐 부분적으로 고쳐짐으로써 누더기법이 되고 말았다.

의료계의 이해관계 등이 얽히고설켜 헌법처럼 좀체 손대기 어렵다는 의미에서 ‘의료헌법’으로 불리기도 한다.

◆의약분업=의사·약사 사이에 환자 치료를 위한 역할을 분담해 처방 및 조제 내용을 서로 점검·협력함으로써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투약을 방지하고, 약의 오·남용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 의사는 환자에게 처방전만 교부하고, 약사는 처방전에 따라 약을 조제·투약하는 것을 말한다.

1999년 12월 7일 약사법 개정 법률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에 들어갔다.

◆유사 의료행위=문신,안마,카이로프랙틱(척추조정요법) 등 의료행위의 경계선에 있는 서비스를 말한다.

의료법 개정안은 의료인이 아닌 사람에게도 보건위생상 위해(危害)가 생길 우려가 없는 경우 유사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