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1월 실시된 한양대 2008학년도 대비 신입학전형 모의논술 문제는 인문계와 자연계열 학생들에게 짧은 공통 문항이 하나 제시되고, 나머지 부분은 계열별로 분리해 출제되었다.

모든 문제가 배경지식 없이 풀 수 있고, 교과 과정 범위 내에서 두 개 이상의 교과목에서 소재 및 주제를 취했으며, 조건·사례·질문에 의해 서술방향을 정해준 다음 이를 이행하는가에 따라 사고력과 체계적 표현력을 측정한다.

이런 특성은 모두 통합논술 문제로서의 특성에 해당한다.

공통 문항이었던 [논제 1]은 ‘집단의 속성과 구성원의 속성을 관련시켜 생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쓰라고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배경지식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 가운데는 부분과 전체, 개인과 공동체의 조화 문제를 떠올릴지 모르겠으나, 이는 통합교과 논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서 발생하는 해프닝이다.

교과서에서 자료와 문제의식을 얻어 출제된 문제라면, 고교 과정을 이수한 우수한 학생이 그 출제의도를 배경지식 없이 1시간 안에 정확히 포착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쪼록 올해 대학별 논·구술을 준비하는 학생들은 그런 강의를 듣느라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겠다.

재수생의 경우에는 특히 논술의 경향이 크게 변화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전형적인 통합논술 문제라는 점 외에도 한양대의 모의고사를 특별히 해설하는 이유가 또 있다.

2007학년도까지는 논술의 질문과 제시문 자체가 너무 어려워서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상위권 대학에서만 논술이 당락을 좌우했지만, 교과통합형으로 출제한다면 중위권 대학에서도 얼마든지 논술이 변별력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학생들도 한양대 모의고사 형태의 교과통합 논술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상기시키기 위해서이다.

한편 한양대의 이번 모의논술은 잘 쓴 답안과 잘못 쓴 답안까지 제시함으로써 문제의 의도와 채점 기준까지 간접적으로 밝혀주었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했다.

학생 답안에 대한 평가는 고려대 등도 발표한 적이 있는데, 새로운 유형의 문제를 제시할 때는 평가기준도 함께 밝히는 것이 기본이다.

서울대 등 다른 대학들도 보다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드러나야 한다고 본다.


◆[논제 1] 해설

계열공통으로 주어진 [문항 1]은 전형적인 통합교과 논술문제다.

질문 문장에 제시문을 읽는 방법이 지정되어 있다는 점, 지정된 방법으로 제시문을 읽고 나서야 질문의 나머지 부분이 요구하는 답안의 방향을 정확히 포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질문만 읽고도 무엇을 써야 할 것인가가 대충 생각난다면, 그 생각은 일단 접어두고 제시문들을 면밀히 읽으면서 출제의도를 다시 파악해야겠다.

질문에 ‘~을 관련시켜 생각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라고 되어 있는데, 제시문을 읽기 전에는 정확히 무엇을 묻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만약 그 일치 여부, 집단의 속성을 어떤 방법으로 표시하거나 알아낼 수 있는가를 묻고자 했다면 굳이 저렇게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점은 제시문 <가>에서 ‘어떤 경우든 집단의 대표값은 집단 구성원 각각이 가지고 있는 개별적 속성값과 구별되어야 한다.

’는 문장을 읽는 순간 명확해진다.

이미 두 속성값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은 주어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묻는 것인가? 산술평균, 최빈값, 중간값 등의 집단 속성 표시방법이 가지는 문제점, 그렇게 집단의 속성을 표시하면 어떤 문제가 왜 발생하는지를 묻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물론 답안을 쓰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배경지식 차원에서 이 문제의 함의는 있다.

구성원들이 모여 집단을 형성할 때 집단의 속성은 어떻게 결정되는지, 개별 구성원의 속성을 안다면 집단의 속성을 짐작할 수 있는지와 같은 의문, 즉 문제의식이 그것이다.

한 두 문장으로 그 의미를 밝혀주는 것은 좋다.

그러나 500자 분량 안에 그런 내용을 자세히 적어 넣을 공간은 없다.

◆[논제 2] 해설

인문계에만 주어진 [논제 2]는 다른 대학의 수시 논제와 비슷하다.

2006학년도 이래 주요 대학들은 수시 논제에서 질문을 잘게 나누어 여러 개의 문항을 통해 제시해왔다.

하나의 문장으로 질문을 제시할 때에도 제시문들을 어떻게 읽고 가공할 것인가부터 답안의 단계적 구성 방법까지를 담고 있는 형태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백일장 분위기의 자유로운 글쓰기라기보다는 통제된 조건의 범위 안에서 사고를 펼치게 할 수 있다.

물론 채점 기준이 분명해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질문은 ①공통의 문제를 추출하고, ②이 문제의 원인을 분석한 다음, ③<다>의 문제를 해결하라는 세 가지 단계적 주문사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가로 ②에는 <라>가 제기하고 있는 개념을 참고할 것을 조건으로 주고 있다.

지난 주 생글생글에서 서울대 논제를 해설하면서 언급한 바 있지만, 논술문제의 조건은 울타리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정표와 같은 역할도 한다.

말하자면,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활동 과정에서 출제의도가 포착된다.

질문을 이렇게 정리했으면 제시문 전체를 한번 면밀히 읽고 나서 다음의 과정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보자.
<가>, <나>, <다>에서 각각 발견되는 문제를 본다.

<가>에서는 ‘모두가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하는 행위를 비난하고 있다.

즉, <가>의 문제상황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모두 다르다는 것이다.

<나>에서는 만적의 어미 장씨와 만적의 행위가 동시에 나온다.

장씨는 아들의 이익을 위해 살인행위를 불사하고 만적은 의를 위해 자신의 이익과 효의 의무를 포기한다.

둘 다 문제상황이 될 수 있다.

장씨의 아들을 향한 이타심의 정체가 그 하나고, 만적의 포기 행위가 그 둘이다.

<다>에서는 ‘윗사람’이 입법의 뜻을 거슬러 인욕을 부려 사회 질서가 흐트러지는 문제 상황을 보여준다.

세 가지 문제 상황이 내포하는 공통의 문제란 무엇일까? 내포란 ‘안에 감싸 안고 있는’이라는 뜻이므로, 세 가지 문제상황에 공통적으로 담겨 있는 문제를 찾아내면 될 것이다.

주의할 것은, 이 단계에서 공통의 문제를 확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점이다.

가능한 몇 가지를 염두에 두고 계속 읽어가자.

그렇다면, <라>가 제기하고 있는 개념이 무엇일까? <라>에 보면 ‘~우리를 낳아준 이기적 유전자에 반항하거나 우리를 교화시킨 이기적 밈(meme)에게도 반항할 힘이 있다’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으로 미루어 <라>가 제기하고 있는 개념은 이기심이고, <라>는 그 원인이 태생적(유전자)인지, 혹은 후천적 학습(meme)의 산물인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않고 있다.

이제 다시 ①을 해결하기 위해 생각해본다.

<가>, <나>, <다>의 공통문제를 도리를 저버리는 세태라고 규정하고 그 원인을 이기심이라고 할지, 아니면 이기심을 공통 문제라고 규정할지가 문제다.

우리는 이미 ②의 조건인 <라>를 통해 이기주의의 원인으로서 가능한 두 개의 논쟁적 후보를 발견했으므로 이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이제야 분명해진다.

공통문제는 이기적 행동이 사회 관계의 본래적 의미를 왜곡하는 것이고, 그 원인에 대하여는 천성과 학습으로 견해가 갈리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가능한 원인을 모두 개별적으로 검토하여 대책을 제시하면 되겠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논술 문항에 답할 때에는 질문의 순서나 조건, 혹은 다른 제시문의 내용이 출제 의도를 발견하게 해준다는 점을 충분히 이용하자. 이를 감지하고 이용하는 능력도 중요한 평가 대상이다.

윤대경 에듀한경 논술연구소장 ydkby@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