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부터 시행된 7차 교육과정은 문·이과 구분 철폐와 학생들의 자율적인 선택권을 강조했다.

당시 교육부는 학생들이 인문·자연계열 중 어느 한쪽으로 흐르는 것을 막고,균형적인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다른 계열의 과목 중에서 하나 이상을 필수과목으로 이수하게 했다.

인문계열 학생들이 '생활과 과학''가정과 과학' 등의 자연계열 과목을 배우고,이공계열의 학생들은 '시민윤리''경제' 등 인문계열 과목을 배우는 식이다.

하지만 교육과정 개편 이후 7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7차 교육과정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서울 S고교는 7차 교육과정에 따라 2005년까진 인문계열 2학년 학생의 교과 과정에 '생활과 과학'을 필수과목으로 배정했다.

하지만 작년부터 인문계열 2학년 학생 대다수의 시간표에서 '생활과 과학' 등 자연계열 과목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학교측은 교육과정 규정에 명백히 반하는 것임에도 불구,전과목을 학생부 성적에 반영하는 대학에 지망하는 일부 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 모두에게 사회탐구 과목인 '경제'를 선택하게 했다.

이 학교 2학년 조모양은 "3학년 선배들은 시간표상으로는 '생활과 과학'을 배운다고 되어 있었지만 실제로는 일주일에 한 시간만 과학수업을 받고 나머지 시간에는 '경제'를 공부했다"며 "상당수 대학에서 학생부 성적을 산출할 때 다른 계열의 과목 성적은 거의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측에서 대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 같아 고맙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필수과목 규정을 준수해 학생들에게 다른 계열 과목도 공부시키는 학교가 오히려 이상한 꼴이 되어 버렸다.

서울 J고교에 재학 중인 김모군은 "다른 학교에서는 인문계열 학생들에게 과학 과목의 부담이 없도록 해주는데,우리 학교는 공립이라 그런지 필요 이상으로 엄격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이 같은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은 고등학교들이 처한 현실과 거리가 먼 교육부의 탁상공론에서 시작됐다는 지적이 많다.

'대입 실적'이 고등학교의 존재 이유가 되어가는 세태 속에서 수능시험에 여전히 존재하는 문·이과 계열 구분을 포기할 학교는 어디에도 없다.

게다가 학생들의 선택이 아니라 학교의 과목별 교사 수급에 따라 과목이 개설되는 상황에서 학생들은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지난 7년간 학교는 학교대로 주체성을 잃은 채 대입 준비기관의 성격이 짙어졌고,학생들은 학생들대로 정작 배우고 싶은 과목이 아니라 배우고 싶지 않은 과목들도 억지로 배우며 입시과목에만 집착해왔다.

최근 교육부는 이 같은 7차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개정안을 내놨다.

개정안의 골자를 보면 '그동안 많은 선택과목들이 학생들에게 무시를 받았으니 필수과목을 더 늘려 균형적인 교육을 제공하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7차 교육과정 파행이 된 원인을 오히려 더 늘려 해결하겠다는 것이어서 학생들 입장에선 더욱 이해할 수 없다.

교육부의 개정안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가 근본적으로 구조가 왜곡됐다는 자성이나 근본적인 구조 개선을 위한 대안은 어디에도 없다.

7차 교육과정의 중심이라던 '교육 수요자'는 외면당하고,'교육 공급자'들은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위한 경쟁은 뒤로 하고,자기 과목의 수업시간 수를 늘리기 위한 경쟁에만 골몰해 있다.

이런 행태를 바로잡아야 할 교육 당국은 현실은 외면한 채 오히려 공급자들을 위한 개정안을 검토하고 있으니,대한민국의 학생들은 고달플 따름이다.

최우석 생글기자(서울 잠실고 2년) dearws@hanmail.net